국내외 유적·유해 보수·관리 등 시급… 협력 필요
국가보훈부 “복구 위해 노력 중”… 공개는 시기상조

안중근 의사 디지털. [뉴시스]
안중근 의사 디지털.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광복절 78주년을 맞아 국내외 독립운동가 유적과 유해와 관련 염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 작업은 15년째 정체돼 있으며, 기존 국내 독립운동가 유적들의 관리 부실도 잇따라 지적받고 있다. 해외 유적의 경우 다른 국가와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라 원활한 진행이 어려운 상황. 국가보훈처는 현재 비공식적으로 다방면의 노력을 펼치고 있으나, 아직 공식적으로 진행 상황을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2008년 4월 남북 합의와 중국의 협조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 작업이 진행된 이후로 15년이 지났다. 당시 발굴 작업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국가보훈부(당시 국가보훈처)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발행한 신문과 간행물을 확인해 안중근 의사 유해가 안치된 곳에 대한 근거를 찾았다.

찾은 기사 자료에 따르면 “하얼빈산 소나무로 만든 관에 안중근 의사 유해를 안치했다”라는 내용이 서술돼 있다. ‘소나무 관’이라는 물질적 단서를 토대로 발굴 작업이 진행된다면,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아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2008년 발굴 작업 실패 이후 정부 차원의 추가 발굴 시도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남북 공동 유해발굴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일요서울 취재진에게 “우선 답변하기 굉장히 제한적이다”라며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는 일본과 중국 측과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다. (봉환 관련 사안이) 구체화 됐을 때 공개가 가능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안중근·윤동주 시설 폐쇄한 中… 여론전?

2009년 당시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 광복회 등은 뤼순감옥 측과 오랜 협의를 거쳐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아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기릴 수 있는 별도의 전시관을 설립했다. ‘안중근 전시실’로 불리는 이곳은 안 의사의 흉상과 옥중 글씨 등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현재 안중근 전시실은 폐쇄 상태다. 뤼순감옥 박물관 내 다른 전시실과 달리 유일하게 관람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8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안중근 전시실은 누수 문제로 보수를 위해 문을 닫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어느 박물관에서나 통상적으로 하는 수리를 의도적으로 양국 관계로 연결해 중국에 대한 분노를 유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폐쇄 시점으로 추정되는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해협에서의 일방적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라고 언급하며, 한중 갈등이 최고조인 시점을 미루어 보아, 단순 ‘내부 수리’를 위한 폐쇄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방치된 독립운동가, 국내외 유적 현황

충북 옥천, 독립운동가 범재 김규흥 선생의 생가는 군 향토 유적에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관리 없이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김규흥 선생의 생가 문향헌은 우거진 수풀과 관리되지 않은 길을 지나야 나온다.

김규흥 선생은 1919년 임시정부 파견원으로 김규식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서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이후에도 의열투쟁, 언론사 설립 등 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서산시 성연면과 운산면 김상정 선생과 유흥수 선생의 생가 두 곳도 마찬가지다. 김상정 선생은 서산지역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정부는 공훈을 기려 1982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애족장을 추서했다.

유흥수 선생은 1940년 국제정세를 파악해 1941년 항일학생비밀결사 단체 다혁당을 결성해 조직적 항일투쟁을 계획하고 나섰다. 정부는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정근 선생이 1926년부터 10년 간 거주한 곳이다. 안정근 선생은 안중근 의사 유해 수습에 실패한 뒤 1918년 무오 독립선언서에 참여하고, 상해 임시정부 활동과 간도지역 독립군 자금을 모았다.

1936년 주 칭다오 일본 영사관 기밀문서를 통해서도 지역 주택에서 거주하며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웨이하이 시는 2019년 5월, 안정근 옛 거주지라고 쓴 표지석을 세웠다. 중국 정부가 안중근 의사 가족 거주지를 처음으로 항일 유적지로 인정한 사례였다.

하지만 현재 안정근 선생이 10년간 거주한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은 사라졌다. 독립군 본거지가 있던 헤이룽장성도 마찬가지다. 헤이그특사였던 이상설 선생 항일 기념비는 기단에서 뜯겨져 4년째 방치돼 있다.

조심스러운 국가보훈부 “현재 공개하기 어렵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독립운동가 유적지와 관련해 “국외 묘소는 미국에 115개 위를 포함해 192개 위가 있는 것으로 실태조사를 통해 파악됐다”라며 “관련해 추진하고 있는 사안들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유족들과 협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밝히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도 두 지사 분을 모셨고, 생존해 계시거나 돌아가신 분 관련해서는 그분들이 고국에서 영면할 수 있도록 관련된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지만, 유족분들의 의사가 가장 1순위이기 때문에 언급하는데 제한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충시설 지정·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5조에 따르면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가유공자와의 관련성’, ‘독립운동 또는 국가 수호 활동과의 관련성’, ‘보존 상태’ 등 현재의 활용실태 및 향후 활용 가능성 등을 고려해 현충시설로 지정할 수 있다. 

항간에서는 국내외 독립운동가 유해, 유적과 관련해 국가보훈부와 더불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협력해 국가적인 노력을 더욱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호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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