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조민성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조민성 변호사]

#A 씨는 분통이 터지는 일을 겪었다. B 씨에게 빌려준 1억 원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B 씨에게 재산이 하나도 남지 않아 이를 갚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B 씨는 C 씨에게 받을 돈이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정작 돈을 갚으라고 하자 C 씨로부터 일부러 돈을 받지 않고 있다. B 씨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한 후 강제집행하려고 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에 B 씨가 C 씨에 대한 채권을 처분해버릴 수도 있다. A 씨는 어떻게 자신의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
 
이때 A 씨는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민법에는 수많은 권리와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그 속에는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권처럼 다 아는 것도 있지만, 채권자취소권이나 자연유수의 승수의무처럼 대부분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다. 채권자대위권 역시 다수에게 낯선 이름이다. 채권자대위권은 채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채무자가 행사하지 않고 있는 권리를 대신해서(대위해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A 씨는 B 씨를 대위하여 C 씨에게 권리를 행사하고, 만일 그것이 금전채권이라면 B 씨를 건너뛰어 자신이 직접 받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내가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니, 마법 같지 않은가.

채권자대위권은 채권이 자신의 범위를 넘어서 외부로까지 영향을 미치는 예외적인 권리로서 채권자취소권과 더불어 채권의 대외적 효력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채권자대위권은 프랑스 민법에서 유래한다. 프랑스법에는 강제집행에 관한 규정이 불비하여, 그 흠결을 보완하기 위해 채권자대위권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 민사소송법은 독일 민사소송법을 모태로 하는 만큼 다양한 강제집행 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채권자대위권의 존재가치가 프랑스법처럼 크지는 않다.

그럼에도, 강제집행을 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집행권원을 마련해야 하지만 채권자대위권을 통하면 빠르고 간단히 진행할 수 있고, 형성권도 그 객체가 되며, 재산 명의의 환원이나 시효를 중단시키는 효력 등이 있다는 점에서 채권자대위권은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채권자대위권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만큼 예외적으로 인정되므로, 다양한 요건을 갖춰야만 한다. ①피보전채권의 존재 ②피보전채권의 변제기 도래 ③보전의 필요성(무자력) ④대위할 채권에 대한 채무자 스스로의 권리 불행사까지 네 가지의 소송요건과 ⑤대위할 채권의 존재라는 본안요건까지 총 다섯 가지 요건이 그것이다. 요건만 들으면 어려워 보이지만 이를 풀어보면 쉽게 이해된다.
 
①피보전채권이란, 쉽게 말해서 자신이 채무자에게 받아야 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애초에 채권자대위권이 채권자의 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권리인 만큼 이는 당연한 말이다.
②피보전채권의 변제기 도래란, 위 채권을 채무자에게 갚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돈을 빌려주면서 1년 후 갚기로 약속했는데, 당장 내일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도록 허용해준다면, 채무자는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지 않겠는가.
③보전의 필요성이란, 통상 특정채권에는 필요로 하지 않는 요건으로, 간단히 말하면 돈을 갚아야 하는데 채무자에게 이를 갚을 능력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역시 채권자대위권의 성질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채무자가 갚을 돈이 있다면 바로 채무자에게 청구하면 되므로, 굳이 예외적인 방법까지 허용하며 제3자에게 권리를 행사하게 해줄 이유가 없다.
④채무자의 권리 불행사란, 채무자가 권리가 있음에도 이를 행사하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채무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여 채권자에게 채무를 이행하고자 하는데, 법원이 이를 강제할 필요가 없다.
⑤ 마지막으로 대위할 채권의 존재란, 채무자가 제3자에게 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있지도 않은 채권을 행사할 수는 없지 않나.
 
이렇듯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요건은 다양하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너무 당연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민법의 대부분 권리가 그러하듯 사적 자치를 존중하기 위해 상식적인 선에서 최소한만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A 씨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A 씨의 경우는 비교적 간단하다. A 씨는 B 씨에게 받을 돈이 있고, B 씨는 C 씨에게 받을 돈이 있다. B 씨는 A 씨에게 갚을 여력이 없으면서도 C 씨에게 돈을 받지 않고 있다. 즉, A 씨는 C 씨에게 바로 대위소송을 제기하여 C 씨로부터 ‘직접’ 돈을 받으면 된다.

만약 A 씨가 채권자대위권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면, B 씨에게 대여금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승소한 다음, C 씨에 대한 채권에 압류 및 추심(또는 전부)명령을 받아 집행 절차로 나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채권자로부터 제3자이의의 소나 C 씨로부터 청구이의의 소가 제기되면 그 절차와 시간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 외에도 B 씨가 자신의 채권을 처분해버릴 위험이 존재함은 물론이다.

좋은 결과만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형사소송과 달리, 민사소송은 소송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뒤에 판결에 따른 결과를 얻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리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상황에서 청구할 수 있는 수많은 권리 중 가장 적절한 청구를 해야 한다. A 씨가 B 씨에게 직접 대여금반환청구를 했다면 돈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마지막 단추의 자리도 잘 잡힌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참조 판례
대법원 2006. 1. 27. 선고 2005다39013 판결, 대법원 2007. 5. 10. 선고 2006다82700,82717 판결, 대법원 1963. 4. 25. 선고 63다122 판결, 대법원 1952. 11. 4. 선고 4289민상89 판결,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1다483 판결, 대법원 1970. 4. 28. 선고 69다1311 판결, 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다40204 판결.

< 조민성 변호사 ▲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 변호사시험 합격 ▲ 인천지방검찰청 국가소송 및 행정소송 담당 공익법무관 ▲ 인천지방검찰청 세월호 국가소송 전담 ▲ 인천지방검찰청 국가배상심의회 인천지구심 간사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공익법무관 ▲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소송 담당 공익법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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