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아 헤맸지만, “사람은 많아도 쓸만한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사람다운 사람을 찾는 일의 간고(艱苦)함이 고금(古今)이 어찌 다를 것인가 마는 지도자 한 사람이 때로는 나라를 안정시킬 수도 있다(一人定國·일인정국).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번천문집(樊川文集)>에서 신라의 장보고를 찬양한 말을 음미해 보자. “옛말에 이르기를 ‘나라에 한 사람만 있어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저 나라가 망하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녕 그 나라가 망할 즈음에 어진 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니, 만일 그런 이를 쓸 수만 있다면 한 사람만으로도 넉넉한 것이다.”

우리 역사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 인물들의 보고(寶庫)이다.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다.”며 분사(憤死)한 박제상은 신라의 자존을 지킨 수호신이다. 고구려의 신하였던 대조영은 조국이 망하자 발해를 건국하여 대제국을 형성, 15대 230년간 지속했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단심(丹心)으로 선죽교에서 격살되어 ‘충절의 전범’이 된 정몽주는 고려의 자부심이다. ‘경술국치’를 당하자 “세상에서 지식인 노릇 하기 어렵기만 하구나”라며 절명한 황현은 조선의 대표 선비이다.

백제의 의자왕(義慈王)은 즉위 이후 유교정치 이념을 신봉하였고, 용맹스럽고 효심이 깊어 ‘해동증자’라고 칭송받았다. 그는 642년에 신라의 미후성(獼猴城, 고령)을 비롯한 40여 성을 빼앗았고, 윤충 장군이 신라의 옛 가야지역에 두었던 대야성(大耶城, 합천)을 함락시킬 만큼 활발한 정복사업을 펼쳤다.

이후 자만과 사치와 주색에 빠진 의자왕은 ‘3충신’(성충, 흥수, 계백)을 가지고도 망국의 군주로 전락하고 말았다. 700년 왕업을 목적(牧笛, 목동이 부는 피리)에 부쳤으니, “나라가 망하는 것은 어진 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두목의 말이 증험(證驗) 된 것이라 하겠다.

계백(階伯, ?~ 660)은 황산벌 싸움의 영웅으로 망한 나라 백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고려의 최영 장군, 조선의 남이 장군과 함께 대표적인 ‘비운의 장군’이기도 하다. 충신 성충(成忠)과 흥수(興首)는 “육로로 적이 오면 탄현(炭峴·옥천)을 넘지 못하게, 수군이면 기벌포(伎伐浦·금강하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의자왕에게 간언하였지만, 의자왕은 국론 분열과 오판으로 이를 듣지 않았다. 나당연합 군사가 백강(기벌포)과 탄현을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의자왕은 달솔(達率·2품 관직) 계백을 불렀다.

계백은 출정하기 전에 처자(妻子)를 모두 죽여 대의멸친(大義滅親)의 비장한 결의를 보였으며, 황산벌에 ‘5천 결사대’를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배수진(背水陣)의 결의를 밝혔다. “옛날 월(越)왕 구천(句踐)은 5천 명의 군사로 오(吳)나라 70만 대군을 격파하였다. 오늘 우리는 마땅히 각자 분발하여 싸우고, 반드시 승리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660년 음력 7월 9일~10일. 계백은 3개의 군영을 설치하고 10배나 되는 신라군과 4번 접전해 승리했지만, 결국은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처자를 죽이고 절개를 지킨 그를 ‘충절의 표본’으로 여기고 부여 의열사, 연산 충곡서원에 제향했다.

조선의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계백 장군을 “삼국 때에 충신과 의사가 필시 많았지만, 역사서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마땅히 계백을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백제의 최후는 너무나 허망했다. ‘의자왕의 실패’에서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살신구국(殺身救國)의 자세로 산화한 만고의 영웅. 계백 장군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若無當世大干城(약무당세대간성) 만약 그 시대(백제)에 큰 인물(계백)이 없었더라면

古國扶餘寂寞京(고국부여적막경) 백제의 수도(부여)는 적막하게 느껴졌을 것이네

聯合羅唐精銳隊(연합나당정예대) 5만의 나당연합군은 정예 대오를 형성했고

五千決死最强兵(오천결사최강병) 5천의 백제 결사대는 최강병으로 구성했네

黃山節士無時泣(황산절사무시읍) 황산벌의 목숨을 바친 병사는 때가 없이 곡하고

白馬宮人悽絶聲(백마궁인처절성) 백마강에 몸 던진 삼천 궁녀는 처절하게 우네

欲把殘杯魂魄酹(욕파잔배혼백뢰) 술잔을 잡아 계백 혼백에게 제사 지내고 싶은데

興亡悔恨我悲鳴(흥망회한아비명) 백제 흥망에 대한 회한에 슬피 울고 싶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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