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진단을 잘못해서 엉뚱한 처방을 하면 환자가 생목숨을 잃기도 한다. 한의사가 진단을 잘못해 엉뚱한 약재를 보약이라고 끓여주면 환자가 소리 없이 죽어갈 수도 있다. 원인을 제대로 모르면, 대책도 엉뚱한 것을 내 놓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 정권에서 부역한 자들이 그랬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진단을 잘못해 엉뚱한 대책을 남발하다 정권을 내줬고, 에너지 정책을 잘못해 한전이 천문학적 빚에 신음하고 국민이 전기료 부담에 고통받게 만들었다.

과거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들이 아동을 괴롭히는 사건이 더러 생겼다. 그러자 내놓은 대책이 전국 어린이집 안에 CCTV를 촘촘히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그때 어떤 이가 복지부 공무원에게 만약 화장실에 데려가서 괴롭히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CCTV 설치는 의무가 됐고 결국 설치됐다. 그런 논리라면 국회의원들과 공무원들이 뭘 하는지 국회의원실과 정부부처 사무실에도 CCTV를 설치했어야 한다. 한때 경찰은 자동차에 진한 틴팅(tinting)을 금지했다. 지금도 관련 규정들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당시에 이런 말이 나왔다. “그럼 가정폭력 문제가 심각하니 집집마다 커튼을 달지 말라고 법으로 강제해야 겠네요?”

뿐만아니다. 2013년까지는 150(45) 이상인 음식점에서 실내 흡연이 금지였다. 2014년에는 100(33) 이상인 음식점에서 실내 흡연이 금지됐다. 전면 금지는 2015년부터 시행됐다. 문제는 식당의 면적을 가지고 실내 금연의 기준을 정했던 당시 공무원들의 인식수준이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 각 부처별로 살펴보면, 이런 해괴한 행태의 정책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지금도 정부나 공무원, 정치권이 어떤 문제를 대할 때의 대응이 대부분 이 모양이다.

흉악범죄가 증가하고 민생치안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것이 의무경찰 부활이다. 그것도 한 8천 명가량 필요하단다. 국방부는 줄어드는 병력자원 때문에 국방 4.0이니 2.0이니 하며 AI 국방을 이야기하는 판국이다. 지금도 밤낮으로 한적한 거리 곳곳, 후미진 골목 곳곳에 순찰차에 타고 자고 있는 경찰이 부지기수다. 수사 경찰은 일손이 모자라 허덕인다는데, 어떤 분야는 놀고먹는 이도 많다. 비효율을 개선하는 노력이 먼저라는 말이다.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은 문제에 대한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는 노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의경 부활도 마찬가지다. 흉악범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면,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대략 최근 10년간 흉악범죄가 연도별로 어느 정도 증감했으며, 그 유형은 어떤 변화와 의미가 있는가? 둘째, 흉악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나를 살피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선결과제에 대한 정부의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래 놓고 불쑥 의무경찰부활을 내건 것은, 본말(本末)이 뒤바뀐 것이다. 진단도 없이 처방전을 내는 것과 같이 무책임한 행정이다.

흉악범죄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해마다 어떻게 증감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와 데이터를 먼저 조사해야 한다. 흉악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면, 그것이 사람에게 있는지, 경제문제에 있는지, 제도와 시스템에 있는지, 사회환경에 있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있은 뒤라야 올바른 해법이 가능하다. 발가락에 균이 가득하고 더러워서 가려우니 긁는 도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이나 당할 것이다.

더 웃기는 사실은, 10년 전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살인범죄가 점점 줄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1년 살인범죄율(인구 10만 명당 살인범죄 피해자 비율)0.52명으로 20100.99명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2021년현재 살인범죄율 전 세계 평균이 5.79명이라고 하니, 우리나라는 전 세계 평균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셈이다. 대검찰청 자료도 20231분기 살인 범죄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5% 감소했다고 한다. 결국 진단 자체가 아예 없었거나 엉터리란 말이다. 그런데도 의무경찰 인력을 새로 늘려 국민 부담만 증가시키자는 것을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마구잡이로 법안을 발의하고, 정부가 깊은 고민과 사실조사 없이 내놓는 법과 제도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부작용, 국민 고통이 생겨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국가와 국민은 저절로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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