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탐방은 청계산 산행이다. 청계산근린광장 공영주차장을 향했다. 지난번 탐방지였던 헌인릉 주변이다. 헌인릉로를 지나자 곧 청계산 등산로 입구인 원터골에 도착했다. 청계산은 몇 차례 오른 경험이 있다. 단순한 산행이었다. 오랜만에 청계산에 왔다. 원터골 굴다리 노점, 버스정류장, 원터골 식당가와 아웃도어 매장이 기억난다. 정작 청계산의 상징은 낯설다. 청계산 등산로로 가는 초입에 원지동 미륵당이 있다. 처음 보는 듯 생소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찾는 만큼 보인 게 아닐까.

청계산 등산로.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청계산 등산로.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청계산 등산로 풍경.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청계산 등산로 풍경.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서초구, 과천, 의왕, 성남 잇는 커다란 문어가 사지 펼친 모양
- 종교화된 돌문바위 세 번 지나가면 소원 성취 인기

미륵당은 석불(미륵불)을 모시는 당집이다. 즉 미륵 석불입상의 거처다. 맞배지붕을 이고 있다. 1칸짜리 기와집이다. 빨간색 문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강렬한 느낌을 준다. 미륵당의 문은 닫혀 있다. 미륵불을 뵙지는 못했다. 아쉽다.

일본이 두려워했던 미륵당 입상 석불

미륵당 입상 석불은 원터골 수호신이다. 사연이 있다. 미륵불에 기도를 올리면 배꼽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단다. 그 소리로 길흉화복을 점쳤다. 영험했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때는 일제 강점기. 일제는 조선 사람이 모이는 것을 몹시 경계했다. 일제는 3·1독립만세운동 이후엔 더 그랬다. 혹시라도 만세운동이라고 재현될까 두려워했다. 미륵불을 빼돌리려고 우마차를 동원했다. 멀쩡한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쳤다.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일제는 집요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미륵불의 배꼽을 정으로 쪼아냈다. 배꼽에서 소리가 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게 1926년 일이다. 원터골 주민이 미륵불을 더 각별하고 신성하게 여기는 이유다. 원터마을을 1년에 한 번씩 미륵불을 모시는 동제를 지낸다.

미륵당 앞마당에는 아주 작은 3층 석탑이 서 있다. 어린아이 허리춤 높이다. 탑신과 옥개석(지붕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석탑은 고려 초기 양식이란다. 옥개석(지붕돌)은 심하게 마모되어 있다. 그 모서리의 윤곽이 또렷하지는 않다. 기단에도 이끼가 끼어 있다. 세월의 흔적이다. 미륵불과 3층 석탑이 한곳에 있다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곳이 절터였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미륵불과 3층 석탑에 관한 연원도, 사찰의 내력도 알 길이 없다.

원터골 굴다리를 지났다. 굴다리 위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이 굴다리는 유명한 등산로 장터다. 원터골 어르신들이 등산객을 상대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원터골굴다리를 벗어났다. 화려한 차림의 등산객이 산을 오르내린다. 청계산은 서울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명산이다. 청계산은 서울(서초구), 과천, 의왕, 성남을 넓게 펴져 있다. 마치 커다란 문어가 사지를 펼치고 앉은 모양이다. 그만큼 입산이 수월하다. 등산코스도 다양하다. ‘등린이(등산+어린이)’도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가 있다. 반면 산 좀 탄다는 사람도 힘든 구간이 있다. 청계산에 대한 사랑이 뜨거운 이유다. 연간 등산객이 500만 명을 넘는다. 휴일에는 6만 명 이상이 청계산을 찾는다.

미륵당.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미륵당.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3층석탑.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3층석탑.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청계산 연간 등산객 500만명..주말 6만이상 등산

청계산 등산코스 안내판을 향해갔다. 그 앞에 거대한 나무 하나가 있다. 275년 된 굴참나무다. 보호수다. 키가 27m, 둘레가 380cm. 굴참나무가 보호수인 것은 처음 본다. 매우 건강해 보여 더욱 기특하다. 줄기의 핏줄이 또렷하다. 상처도 없다. 나뭇잎도 싱싱하다. 나뭇가지는 활개를 펴고 있다. 아랫도리에 시멘트 접골은 고사하고 영양제도 꽂지 않았다.

굴참나무는 흔히 참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다. 하지만 틀린 말이다. 세상에 참나무는 없다. ‘참나무류가 있을 뿐이다. 굴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를 총칭해서 참나무류라고 한다. 어떻든 참나무류 보호수는 전국에 불과 80그루 밖에 없다. 이는 2023년 현재 산림청 지정 보호수(12,000그루)0.06%에 불과하다. 그만큼 귀한 것이다. 온돌이 보급되면서 참나무류가 땔감으로 인기가 높았던 결과다. 하지만 청계산 원터골에서 청계골로 넘어가는 북쪽 사면에는 참나무류 낙엽활엽수림이 잘 발달하여 있다. 서울시는 이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보호수는 원터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축척하고 있다. ‘원터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한 원이 있던 데서 유래했다. 이곳은 무수히 많은 조선의 관리와 민초가 지나다니던 삼남대로의 한 길목이다. 남태령~양재~과천으로 넘어가는 역말중 한 곳이었을 것이다. 굴참나무 옆 쉼터 정자 바로 옆에 있는 원터 표지석이 서 있다. 보호수와 정자가 있는 곳은 사람이 모여 휴식과 놀이, 회합과 동제를 지낸 곳이다. 아마 이곳은 한양을 오르내리던 관원과 백성도 이 마을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동안 가보지 않은 등산로를 택했다. 일명 원터골~천개사~매봉을 잇는 효리코스. 가수인 이효리가 제주도로 이사 가기 전 청계산을 자주 올랐다. 그중 이 코스를 애용했다고 한다. 그의 아름다운 몸매를 만들어 준 코스라고 이같이 부른단다.

등산로로 접어들자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계곡에는 물소리가 가득하다. 깨끗한 돌이 정연하다. 청계산(淸溪山)은 짐작하겠지만 계곡물이 맑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주봉인 망경대(618m)에서 흐르는 물줄기 하나가 서쪽 막계동 골짜기를 이뤘다. 이 골짜기를 막계청계(莫溪淸溪)’라고 했단다. ‘맑은 내맑내(막내)’맑개로 다시 막계로 변했단다.

천개사.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천개사.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마애석불.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마애석불.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일주문도 사대천왕문도 없는 천개사

계곡을 벗어나 천개사로 발길을 돌렸다. 불과 200m를 가자 천개사가 나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일주문도 사대천왕문도 없다. 절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자 숨어있어야 할거대한 마애석불이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석불이란다. 그것도 통석으로 빚은 부처님이란다.

이상한 게 그만이 아니다. 사찰의 전각이 하나도 없다. 아름다운 한옥의 정원처럼 꾸민 마당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대웅전 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깊은 역사를 가진 사찰은 아닌 듯하다. 천개사 사찰에 연역을 소개하는 안내판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천개사를 벗어나자 본격적으로 등산로다. 시작부터 불길하다.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2.2km 코스 거의 전체가 계단이다. 입추를 앞둔 늦여름에 이렇게 많은 땀을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 숨이 턱에 오를 즈음 돌문바위가 나왔다. 돌이 자처럼 서로 기대어 있다. 마치 솟을대문 같이 생겼다. 돌문바위를 세 번 지나가면 소원이 성취된단다. 돌문바위를 지나는 거의 모든 등산객이 돌문바위에서 의식을 행했다. 돌문바위는 하나의 종교였다. 나도 돌문바위를 돌며 소원을 빌었다.

돌문바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돌문바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다시 계단이다. 안전난간의 줄을 의지하며 계단을 올랐다. 어느 만큼 올랐을까. ‘특전용사 충혼비 가는 길이라는 안내표시가 안전난간 기둥에 붙어있다. 자세히 보니 공수부대원 이름이 적혀 있다. 1982년 공수부대 대원 53(교관 5명 포함)이 탔던 공군수송기(C-123)가 훈련 도중 청계산 상공에서 추락했다. 전 대원이 사망했다. 그들의 이름이었다. 매봉 정상을 코앞에 두고 좁은 길이 하나 나왔다. 청계산 충혼비로 가는 길이다. 충혼비는 소박했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떠난 53명의 충혼을 기리기에는 너무 빈약했다. 그저 비석 하나에 충혼의 숨소리라는 제목의 시가 쓰여 있다. 비석 위에 공수부대 마크가, 비석 옆에 공수부대원 모형을 놓여있다. 제단에 누군가 올린, 타다남은 담배 한 개비가 있다.

1982년 공수부대 53명 사망...특전용사 충혼비

충혼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충혼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다시 길을 재촉했다. 매바위에 도착했다. 100m만 더 가면 목적지이다. 매봉이다. 통쾌하다. 고생 끝에 행복감, 바로 그 맛이다. 흘린 땀이 아깝지 않다. 헌데 구름이 청계산 정상의 풍경을 가리고 있다. 구름이 원망스럽다. ‘창공의 꽃을 삼켜버린 것도 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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