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토사붕괴 우려되는 매장유산 점검 나서
예비비, 긴급보수비로 전환하기 위해 협의 중

봉화 송석헌 고택 피해현장점검. [문화재청]
봉화 송석헌 고택 피해현장점검. [문화재청]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장마 동안 전국을 휩쓴 집중호우로 국가유산이 대거 훼손됐다. 폭우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유산은 69곳, 주변지는 9곳으로 총 78개소다. 문화재청은 국가유산 복구에 나선 가운데, 긴급보수 예산이 37억 원임과 동시에 이마저도 전부 소진된 상황인 게 밝혀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78개소 복구를 위해 예비비를 긴급보수비로 전환하기 위한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올여름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국가유산이 대거 훼손됐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3년 장마철 국가유산 피해·조치현황자료’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국가유산은 총 69곳이며, 9곳의 주변지가 파손됐다.

총 78곳에서 풍수해로 인한 국가유산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현황은 경상북도가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라남도가 13건, 충청남도가 11건, 경상남도·충청북도가 각각 7건, 전라북도가 6건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국가유산 지정등급별로 확인하면 국보가 2건, 보물 4건, 사적 26건, 천기 13건, 명승 10건, 국민 13건, 등록 10건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특히 국보로 지정된 금산사 미륵전은 막새기와가 떨어져 나갔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한계산성은 산성 천제단 석축의 일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보물인 전남 영광 신천리 삼층석탑도 주변 피해를 입었다.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은 다행히 직접적인 피해를 비껴갔지만, 석탑과 2m 가량 떨어져 있는 석축 10m가 무너졌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예방관리센터에 상황을 통보하고, 임시조치로 가림막을 설치했다.

가장 크게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경상북도에서는 명승지역에서 설치된 시설물이 유실됐다. 경북 문경새재에서는 1관문 배수로 일부가,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에는 하천범람에 가로등, 조명, 난간, 수목 등 시설물이 물에 쓸려갔다. 문화재청은 추가 피해 예방을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안전테이프를 설치했다.

충청북도에서는 사적 진천 김유신 탄생지, 태실에서는 법면과 소나무가 유실됐다. 문화재청은 도로 쪽 토사를 제거하고 배수로를 정비했다. 전북 익산 나바위성당은 나무가 쓰러지면서 출입을 통제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와 충남 공주와 부여 국가유산도 피해가 발생했다. ‘백제역사지구’ 중 한 곳이자 사적인 공주 공산성은 누각인 만하루가 침수됐다가 강물이 빠지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는 발굴지가 물에 잠겼다. 부여 왕릉원에서는 서고분군 2호분 사면이 유실돼 우장막이 부소산성에서는 군창지 경계 펜스와 탐방로가 훼손됐다. 

문화재청, ‘토사붕괴 우려’, 매장유산 33곳 점검 나서

문화재청은 지난 8월3일 집중호우로 토사 붕괴가 우려되는 매장유산 발굴현장 33곳에 대한 긴급점검에 나섰다. 

강원도 원주 법천사지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을 비롯해 춘천 상중도 고산의 조선문학유산 복원사업부지 내 유적, 여주 혜목산 추정 취암사지 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 경주 대릉원 일원추정 황남동 120호분 주면이 있다.

이어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화순 고인돌정원 조성사업부지 내 유적, 태안읍성 남동성벽 내 유적, 옥천 이성산성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도 포함됐다.

문화재청은 위 지역에 대해 “오랜 기간 지속된 장마가 끝남에 따라 지반약화로 토사붕괴 등의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고위험 매장유산 발굴현장”이라며 “긴급 안전점검을 한다”라고 밝혔다.

긴급점검은 장마철 후 약해진 지반을 굴착하는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현장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제거해 토사붕괴 등으로 인한 인명 사고 예방과 유적의 안전보호를 위한 것이다.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지역별 담당자가 직접 현장에 서 안전조치 사항을 점검했다.

국가유산 긴급보수 예산, 턱없이 부족?

피해를 입은 국가유산의 빠른 조치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상황은 부정적이다. 훼손된 국가유산을 신속하게 복구해야 할 사업비가 부족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8월7일 김승수 의원에 따르면 문화재긴급보수비 예산은 총 37억1000만 원이지만, 26억1400만 원이 이미 사용됐고 밝혔다.

남은 예산은 10억9600만 원에 불과하다. 문화재청은 11억여 원으로 발생한 풍수해 피해를 긴급보수비로 모두 복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으로부터 ‘2023년 장마철 국가유산 피해·조치현황자료’를 제출받은 김승수 의원은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피해도 매년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풍수해·산불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필요하다”라며 “국가유산의 위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난안전관리 사업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한편, 피해 발생 시 신속하게 문화재를 복구해 2차, 3차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문화재긴급보수비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태풍 카눈 긴급 복구대책 점검. [문화재청]
태풍 카눈 긴급 복구대책 점검. [문화재청]

문화재청 긴급보수비 확보 위해 협의 중

문화재청 관계자는 일요서울 취재진에게 “지난 8월 당시에는 11억 정도가 남아 있었는데, 피해를 입은 국가유산 보수비로 전부 지급된 상황”이라며 “현재 남아있는 잔액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취재진의 ‘11억여 원으로 전부 복구가 힘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향후 대안이 있는가’ 질의에 “기금 사업을 통해 ‘기금운용계획변경’이라는 걸 통해서 남아 있는 예비비를 긴급보수비로 전환하려고 협의 중에 있다”라고 답변했다.

지난해 10월11일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는 국가유산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대한 허술한 관리가 지적받은 바 있다. 2022년 기준 5년간 무단 현상변경 사례가 337건에 달했고, 관련 소송도 25건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화재보존구역을 지정하면 해당 지자체에 2주 전 통보가 이뤄져야 함에도 문화재청이 대부분 사후통보하면서 김포 장릉 아파트 건설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라며 부실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관리실태를 지적했다.

지난 20년(2002~2021)간 풍수해로 인한 문화유산의 피해건수는 총 979건(태풍 522건, 호우 447건, 강풍 10건)으로 나타났다. 향후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유형이 다양화되고, 강풍, 태풍, 호우, 산불 등의 영향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흰개미 등으로 인한 해충 피해도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이 최근 10년(2011~2022)간 전국 927건의 목조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중 236건(25.4%)에서 생물피해도 확인했다.

이에 기후변화에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문화재청은 ‘선제적 기후위기 대응역량 강화’, ‘국가유산 보존관리의 기후탄력 체계 구현’, ‘국가유산의 촘촘한 기후위기 안전망 구축’ 등 세 가지 전략을 내놓았다.

지난해부터 문화재청의 국가유산 관리 행보에 대해 의구심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국가유산 관련 철저한 관리와 훼손 복구를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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