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 광역시는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과 북한 군가인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 추모 사업을 벌여 국민들로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정은 1914년 혹은 1918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중국으로 들어가 1939년 공산당에 가입,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그 후 중공 당국은 이 곡명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고쳐 공식 군가로 불렀다. 정은 사망한 뒤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선정되었고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묘에 묻혔다. 또한 정은 8.15 해방 후 북한으로 들어가 황해도 당 선전부장을 맡았고 조선인민군 협주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지었다. 북한의 2.8예술영화촬영소는 1991년 ’음악가 정율성‘이라는 영화까지 제작 그를 찬양했다.

정율성은 음악성이 뛰어나긴 했어도 뼛속까지 빨간 공산주의자였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자였다. 그런데도 광주시는 그런 자를 기리기 위해 무려 48억 원을 들여 기념공원 조성에 나섰다. 10년 전부터 ‘정율성로(路), 기념관, 동상, 음악제 등을 했다. 광주시는 동구 불로동에 정율성 역사공원을 연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6•25 남침을 자행, 수백만 명을 살상한 북한군의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기리기는 이적행위와 다르지 않다. 마치 광주가 대한민국의 통치에서 벗어난 ‘정율성 해방구’로 전락된 느낌을 금할 수 없게 한다.

광주 토박이인 5•18 민주화운동 단체들을 비롯한 시민 조직체들은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8월28일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4•19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 등 공법 단체들은 중앙 일간 신문에 반대 광고를 냈다. 그들은 “‘조선인민군 행진곡’과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공산주의자 정율성 역사공원 건립을 강력히 반대 한다”고 했다. 이어 “민주화 운동을 훼손하는 일이자 우롱하는 처사”라며 “자유민주주의 헌법가치를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고 선언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정율성은 공산당 나팔수” 였다고 규정했다. 박 장관은 그러므로 정이 아닌 “호남 학도병 등 수많은 애국지사를 기리는 현충시설이 건립돼야 한다”고 반대했다.

북한의 6•25 남침 때 자유대한을 지키기 위해 투신한 호남 출신 학도병은 732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혈서 입대 지원서까지 제출했다. 97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그들을 추모하는 현충 시설이나 사업은 초라하다. 고작 매년 300만 원을 들여 7월25일 학도병 위령비를 설치하고 추모하는 행사에 그치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냉전은 이미 30년 전에 끝났는데 철 지난 이념 공세가 광주를 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냉전’은 절대 끝나지 않았다. 김정은은 지금도 핵무기로 남한을 공격하는 군사연습을 진두지휘하며 적화 기회만 노린다. 강 시장은 또 “정율성의 업적 덕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돈만 되면 김일성의 동상도 광주에 세우겠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밖에도 그는 독일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이 있다며 정율성 동상이 문제 될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율성을 마르크스 경지로 끌어올렸다는데서 견강부회다.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자본주의를 비판, 공산주의 계급혁명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고 독일 침략군을 선동하는 군가를 작곡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율성은 남한을 침탈한 북한군과 중공군의 군가를 작곡한 남한 5000만의 적이다. 강 시장은 무지해서 그런 역사적 사실들도 모르며 정율성 사업을 강행하는 건지, 알면서도 친북적이어서 그런지 의심된다. 광주시는 “공산당의 나팔수” 정율성 기념사업을 즉각 폐기, “정율성 해방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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