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로 전락한 여의도 '말말말'  

김진표 국회의장 [뉴시스]
김진표 국회의장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이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이번 대정부 질문은 정치 양극화의 폐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금도(襟度)를 넘은 국회의원의 발언과 이어지는 국무위원의 넘치는 투쟁심. 피아식별에 따른 야유는 덤이다. 국회의원은 말과 글을 업으로 삼는다는 말이 무색했다. 대정부 질문을 바라본 김진표 국회의장은 "초등학교 반상회에 가도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말과 글이 칼보다 아프다 
국회의장으로서 정치 양극화의 폐단을 지적한 이는 김 의장뿐만이 아니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도 지난해 4월경 "칼로 베인 상처는 아물 수 있지만 말과 글로 벤 상처는 아물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 중재자인 전·현직 국회의장들이 입을 모아 국회의 품격을 지적한 까닭은 극심해진 정치 양극화에 기인한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 7월 3일 발간한 '한국의 정치 양극화 : 유형론적 특징 13가지'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 양극화 기사의 출현 빈도는 2009년 173건에서 2020년 733건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보고서는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 간 폭력 충돌을 발단으로 정치 양극화가 본격화됐다고 지적한다. 

이 중 이번 대정부질문 기간에 나타난 정치 양극화의 유형은 '공존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혐오의 정치'에 해당한다. 보고서는 혐오 정치를 "야유와 경멸의 언어를 동반한 사나운 태도나 상대에게 무례해도 좋다는 듯이 행동하는 의원들이 늘어남에 따라 서로의 관점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는 의회정치의 기반이 좁아졌다"고 규정했다. 

실제로 이번 대정부 질문에서 논란이 된 경멸의 발언들은 곧바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소로 이어졌다. 아울러 하나의 무례한 발언이 또 다른 구설수를 낳는 부작용을 동반했다. 

시작은 지난 5일 대정부질문의 첫 순서를 장식한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탄핵' 발언이다. 이날 설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고(故) 채수근 상병 수사와 관련 대통령실의 외압 의혹을 질문하는 중 "이 사건은 대통령이 법 위반을 한 것이고 직권남용 한 게 분명하다고 본다"며 "탄핵까지 갈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 대변인은 지난 6일 지속된 민주당의 탄핵 언급을 두고 '내란선동행위'라고 응수했다. 그 뒤 국민의힘은 지난 8일 설 의원을 윤리특위에 제소한다. 이와 관련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SNS에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주장한 탄핵·특검·국정조사 사례만 14건이라고 지적하며 "이 정도면 탄핵, 특검, 국조가 습관성을 넘어서 중독성"이라고 비판했다. 

탄핵소추권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탄핵이 극한의 정치적 승부수라는 점도 사실이다. 모든 탄핵에는 '역풍'이란 꼬리말이 붙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고위공직자의 중대한 위법 사유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탄핵을 정치적 수사로 사용하는 것은 곧 정치 양극화를 상징한다는 평가다. 

아울러 이번 대정부 질문의 최대 화두는 '쓰레기'였다. 그 발단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선공에서 시작된다. 태 의원은 지난 6일 김영호 통일부 장관과의 질의에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의 친북단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행사 참석 논란과 북한인권재단 출범 문제 등을 비판했다. 그 과정에서 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이란 이름을 달 자격도 없는 정당"이라며 "지금 민주당 의원의 반국가적 행태를 보고서도 말을 못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공산전체주의에 맹종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은 의원석에서 태 의원을 향해 '쓰레기'·'빨갱이' 등의 원색적인 비판으로 반박했다.

이에 태 의원은 지난 7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 천막을 찾아가 자신에게 '쓰레기'라고 발언한 박영순 민주당 의원의 출당 조치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태 의원과 민주당 의원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국민의힘은 지난 8일 박 의원을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아울러 민주당도 지난 13일 민주당 의원들을 모욕하고 단식 천막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태 의원을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징계 단 1건, 제재 강화로 쏠리는 이목 

문희상 전 국회의장 [뉴시스]
문희상 전 국회의장 [뉴시스]

막말 정치는 곧 3건의 윤리특위 제소로 이어졌지만, 실질적인 제재 효과는 없을 전망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10일 발간한 '국회의원의 말; 언어의 품격'에 따르면 13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총 235건의 국회의원 징계안이 제출됐다. 이 중 41.2%에 해당하는 101건이 폭언·인격 모독성 발언·명예훼손·모욕 등 부적절한 발언에 해당한다. 

하지만 해당 사례 중 실제 징계로 이어진 경우는 단 1건이다. 2011년 윤리특위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강용석 전 의원을 두고 '제명'을 의결했다. 그 뒤 강 의원에 대한 제명안은 본회의에서 부결돼 최종적으로 30일 출석정지에 그쳤다. 

21대 국회도 이번 대정부 질문에서 추가된 건을 포함해 총 43건의 징계안이 접수됐다. 이중 실제 징계로 이어진 사례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30일 출석정지 건이 유일하다. 해당 사례도 민주당이 윤리특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회부 한 건인 만큼 예외로 분류된다. 

이와 관련 김대인 법률소비자연맹 총재는 지난달 7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는 윤리특위를 상임위원회화하고, 징계안이 접수되면 6개월 내 등 심사기한을 명시해 처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앞서 국회입법조사처의 '국회의원의 말; 언어의 품격' 보고서는 원내 발언질서 확립을 위해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을 엄격하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의원의 막말이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경고·발언 금지·퇴장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실제로 행사하는 경우는 적다고 지적했다. 

질서유지권은 국회법 145조에 따라 의원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질서를 어지럽힐 경우, 의장이나 위원장이 경고 혹은 제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다. 따라서 국회의 심판을 담당하는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 

국회의장은 공정한 의사 진행을 위해 당적을 가지는 것도 금지되는 만큼, 발언 하나조차도 중립성의 시비에 걸릴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국회의장이 선제적인 질서유지권을 발동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존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사례는 대개 국회선진화법의 도입 이전 법안 상정을 저지하기 위한 육탄전에 따른 최후의 수단으로서 사용됐다. 따라서 근래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경우는 2019년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사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 전 의장은 공직선거법 개정에 반대해 의장석을 점거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바 있다. 해당 사례도 이후 여야의 국회선진화법 위반 논란으로 번진 만큼 문 전 의장도 최후의 수단으로써 질서유지권을 꺼내든 것이다. 

용산의 투쟁심 독려에 호응하는 與?

(왼쪽부터)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뉴시스]
(왼쪽부터)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뉴시스]

한편 최근 여야의 정치 양극화에 한 축을 담당하는 이들은 바로 국무위원들이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래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일선에서 야당 의원들을 상대했다. 특히 한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내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날카로운 모습을 선보이며 보수층의 지지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은 논리와 말을 가지고 싸우라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여권의 강경파로 분류되는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들이 2차 개각의 대상으로 지명된 바 있다. 

이에 김 의장은 이번 대정부 질문에서 "근래 국무위원들의 국회 답변 과정에서 과도한 언사가 오고가는 예가 발생하는 등 적절하지 않은 답변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며 "모든 국회의원은 적어도 20만에서 30만 명의 유권자로부터 선출된 국민의 대표다. 언제나 국민에게 답변하는 자세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서 답변할 것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고(故)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라고 지적하자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친도 친일파가 아니냐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됐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박 장관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아울러 김 대표의 발언 수위도 국무위원 못지않은 강도로 상승하는 모양새다. 최근 국민의힘은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 의혹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김 대표는 지난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 공작은 자유민주주의 근본을 허물어 버리는 국기문란으로 가장 사악하고 '사형'에 처해야 할 반국가범죄"라며 "치밀하게 계획된 1급 살인죄는 과실치사죄와는 천양지차로 구분되는 악질 범죄로서 '극형'에 처하는 범죄"라고 질타했다. 

이에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1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선거 농단은 국기문란이다"라면서도 "그렇더라도 (김 대표가) 절제된 단어를 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김 대표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에서 열린 행사에서 최근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비판한 밴드 '자우림'의 멤버 김윤아 씨를 두고 "개념 연예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라며 "문화계 이권을 독점한 소수 특권 세력이 특정 정치·사회 세력과 결탁해 문화예술계를 선동의 전위대로 사용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SNS를 통해 "대중 연예인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혔다 하더라도, 공인인 정치인이 그것을 공격하는 것은 선을 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당내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의 발언이 세지는 까닭은 용산의 기조와 발을 맞추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국민의힘은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과 관련해 신중론을 펼친 바 있다. 이는 내년 총선의 중도층 표심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근래 윤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투쟁심과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여당도 발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아울러 여권은 근래 이념 논쟁을 기점으로 집토끼 잡기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김 대표는 지난 13일 대구 달성군을 방문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회동을 가진 바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정부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보수 빅텐트'를 치기 위한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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