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을 달성했다. 사실 월드컵 16강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회원국 수는 209개국으로 유엔가입국 193개국보다 많다.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려면 209개 피파 회원국이 대륙별로 지역 예선을 치른다. 지역 예선을 통과한 32개국만이 본선에서 조별 경기를 치러 토너먼트에 올라야 16강에 든다.

가까스로 16강에 오르면 괴물같은 축구 강국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축구는 16강전 상대로 브라질을 만났다. 비록 4골을 허용하고 1골만 만회한 채 졌지만, 역대 세 번째 16강 진출만으로도 기적 같은 밤의 연속이었다. 월드컵 본선에 오르고 축구 강국들과 경기를 치르다 보면 항상 만나는 게 경우의 수.

지난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은 경우의 수에 부닥쳤다. 3차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한국은 11, 승점 1점으로 16강행이 쉽지 않아 보였다. 남은 포르투갈전에서 무조건 승리하고, 같은 조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는 16강행을 확정한 우루과이가 이겨야 했다. 가나가 이기면 16강행이 좌절될 위기였다. 결국, 포르투갈을 꺾고 경우의 수를 돌파해 16강에 진출했다.

한국 대표팀이 만났던 경우의 수는 이재명 대표 앞에도 놓여 있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은 여러모로 기이하다. 야당 대표가 느닷없이 단식에 돌입한 것도, 동료 의원들이 하나둘씩 동조 단식을 벌이는 것도, 야당 대표의 단식에 조롱으로 일관하는 여당을 보는 것도 보기 드문 광경이긴 하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이라는 외통수에 걸려 단식이라는 외통수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단식이라는 외통수는 출구전략을 만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아예 정치적 대화상대로 상대조차 안 해주는 상황이라 심각성은 더 크다. 야당이 단식에 들어가고 여당이 단식 중단을 설득하는 동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 대표의 경우의 수는 의외로 간단하다. 검찰이 국회로 보낼 체포동의안을 가결할 것인가? 가결시킬 경우 이 대표는 검찰의 칼날 앞에 맨몸으로 서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그게 싫다면 부결시키는 선택지도 있다. 부결시킨다면 잠깐 검찰의 칼날을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정치인으로 파상공세에 시달릴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언했었다. 논리적인 귀결로는 체포동의안을 가결해달라고 요청하고,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단식을 꼼수로 보는 사람들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해 놓고, 그 말을 지키기 싫어서 단식을 선택했다고 비난한다. 이 대표가 스스로 가결을 요청한다면 당내 분란을 최소화하고,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다.

반면, 체포동의안 부결은 상대적으로 복잡하다. 친명 입장에선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 지난 2월 표결 당시에도 최대 31명이 가결에 표를 던졌었다. 믿지 못하니 친명 쪽에선 집단 퇴장 카드를 꺼냈다. 표결할 때 모두 다 퇴장하자는 것이다. 국민에게는 단식 이상의 꼼수로 비칠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우르르 퇴장하는 일이 벌어질까? 그러고도 무사할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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