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여야 정치엘리트 카르텔 견제할 유일한 대안
- 국민투표 있다면, 민주당 입법폭주, 정부 우경화 정책 가능할까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 분기점 중의 하나가 '87년 체제'. 1987년 여당대표 노태우와 야당 대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대통령 직선제 등을 담은 헌법 개정에 합의하면서 구축된 체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4·13 호헌조치(대통령 간선제 유지)를 발표하자 분노한 국민이 6월 민주화항쟁을 전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등을 담은 6·29선언을 발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9차 헌법 개정이 이뤄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로부터 36, 소위 한 세대가 지났다. 당시 호기롭게 '호헌철폐-독재타도'를 외쳤던 국민들은 단지 군부독재 말고도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각종 기득권 카르텔 타파 등 경제개발시대에 머물러 있던 사회 전반의 변혁을 기대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 사람과 형식만 바뀐 채 여전히 우리 사회를 좀먹는 정치엘리트들의 기득권 카르텔은 87년 무더운 여름 아스팔트를 뒤덮은 국민들의 열정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은 1995년 베이징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4, 관료와 행정조직은 3, 기업은 2"라고 일갈해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을 어록을 남겼다.

여전히 정치는 4류다. 기업은 글로벌 top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정치와 관료는 여전 4, 3류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그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은 일류가 되는데 정치와 관료, 즉 국가권력, 정치권력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경쟁과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과 기업은 순간순간 평가받고 존폐가 결정된다. 기술과 서비스가 뒤떨어지면 바로 퇴출된다. 너무 성급한 기술과 제품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버티지 못한다.

시장이 살아있는 이유, 앞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핵심은 경쟁이다. 비교대상이다. 사회주의체제 경제가 낙후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경쟁과 비교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국회와 관료는 비교 대상이 없다. 견제할 방안이 없다. 유일한 것이 4년마다 치러지는 국회의원·지방의회 선거, 5년마다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다. 그러나 21대 국회처럼 특정 정당과 세력이 독점하면 4~5년 내내 국민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라가 엉망이 되어가도 막을 수 없다. 국민 대다수의 뜻과 다른 정책과 법률, 국정이 진행돼도 어찌할 수 없다.

대표자를 뽑는 선거는 공약과 후보자의 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는 선거 당시 많은 변수와 요인, 소위 바람으로 후보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선택이라도 선출된 권력인 만큼 뒤늦게 하자가 발견된 상품처럼 반품하거나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정치권력은 4~5년에 한번 단 몇 개월만 유권자에게 잘 보이면 당선될 수 있다. 90도 폴더인사를 하던 후보자가 당선이 되면 너털웃음과 함께 유권자의 어깨를 툭툭 친다.

현대사회는 여야에 관계없이 정치엘리트그룹, 카르텔이 지배하고 이익을 독점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정치선진국 미국과 유럽 역시 소수의 정치엘리트그룹이 지배·운용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름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국민의 견제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제이지만 철저한 의회 중심 국가로 대통령이 제왕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견제한다. 또 이런 의원들을 국민들은 2년에 한번 철저한 상향식 공천, 오픈프라이머리로 선택함으로써 견제한다.

왕실과 귀족문화가 살아 있는 유럽 역시 민주주의 유지 비결은 국민 우선의 민주적 상향식 후보 공천이며 의회해산과 의원소환, 국민투표권 등 다양한 정치엘리트 견제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국가로 인맥(지연·학연·혈연) 중심의 아시아적 문화와 강고한 정치엘리트 카르텔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은 의원내각제 보다는 대통령제가 맞다.

그렇다면 대안은 하나다. 대통령과 국회, 관료 등 정치엘리트 카르텔을 비교하고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국민투표권이다.

현재 우리 헌법에서는 제72조와 제130조에서 국민투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국회가 제안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실시하는 국민투표를 국민이 요구할 수 없는 구조다. 지금 절대 다수당의 더불어민주당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법안과 이를 거부권으로 맞서는 대통령이 으르렁거리며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절대 다수당과 절대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현재 폭주하는 민주당의 입법횡포와 현 정부의 과도한 우경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인다면 얼마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국민투표는 양측의 정치엘리트 카르텔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고 방책이다. 또 대통령이나 국회 모두 상대방이 비장의 카드, '국민 투표'를 들고 나올 것을 우려해 무리수를 두지 않는 견제장치가 될 것이다. 취임 1년도 안된 대통령 탄핵, 퇴진을 입에 올리는 칠푼이같은 짓도 못할 것이다.시장경제의 승리는 증명한다. 1인 또는 극소수가 독점하는 권력보다는 다수 국민과 함께 권력을 나누는 것이 인류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것을.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