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드라마와 K 팝뿐만 아니라 ‘K 클래식’도 대중성과 보편성을 위해 이제 본격 도약할 때가 됐다. 전 세계인이 보고 듣고 싶은 것을 관객의 입장에서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 ‘K 컬처’의 개척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6월에 18살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세계적 권위의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임윤찬은 이 대회 60년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우승하여 예비 거장의 탄생을 예고했다.

한국의 연주자들이 국제적인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일이 잦으니 대한민국의 클래식 수준이 이젠 세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윤찬은 인터뷰에서 “가장 영감을 많이 받은 음악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베토벤이나 쇼팽, 모차르트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악성(樂聖) ‘우륵(于勒, ?~?)’이라고 말해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음악적 영감의 발원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륵의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은(哀而不悲·애이불비)’ 가야금 뜯는 소리를 상상하면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고 답했다.

과연 우륵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이 세계인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10대 청년이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기풍을 북돋워 줘서 마음 든든하다. 29년 전인 1994년에 정부가 국학의 해 ‘1월의 문화 인물’로 신라시대의 악성 우륵을 선정한 한 적이 있다.

우륵은 490년경 대가야의 직할 현인 성열현(省熱縣)에서 태어났다. 예술을 통해 혼란스러운 가야국의 정치적 통합을 꾀하고자 했던 그는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조선의 박연(朴堧)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우리 음악의 대표 현악기인 가야금(伽倻琴)은 위가 둥글고 아래가 평평한데, 이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천원지방)는 천문관을 나타내고 있으며, 열두 개의 줄은 1년 12달을 상징한 것이다. 대가야 가실왕(嘉悉王)이 “여러 나라의 방언(方言)이 각각 다른데 그 성음(聲音)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우륵에게 명하여 12곡을 만들게 하였다.

우륵의 삶은 시대적인 상황 탓에 순탄하지 않았다. 철기로 일어섰던 대가야는 562년 신라 진흥왕에 의해 무너졌다. 551년 우륵은 제자 니문(尼文)과 함께 신라에 망명했다. 신라는 가야의 소리까지 차지한 셈이다.

진흥왕은 우륵을 국원소경(國原小京, 충주)에 안치시키고, 신라의 정치 문화 통합을 위해 계고(階古)·법지(法知)·만덕(萬德)을 우륵에게 보내 세 사람에게 각각 가야금·노래·춤을 가르쳤다.

우륵이 만든 12곡은 신라에 와서 5곡으로 정제되었는데, 즐겁지만 넘치지 않고,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았다(樂而不流 哀而不悲·낙이불류 애이불비). 진흥왕이 우륵의 음악을 기초로 신라의 대악(大樂)을 완성함으로써 국원소경은 신라의 악도(樂都)가 됐다.

진흥왕 이후 가야금은 신라에 널리 펴져 곡수가 184곡이나 되었으며, 일본에도 전해져 ‘신라금’으로 불렸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궁전과 민간에서 크게 사용되었다.

우륵은 탄금대(彈琴臺)에서 망국의 한을 예술의 혼으로 승화시키는 가야금을 탓는데, 그 오묘한 음률에 젖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촌락을 이루게 되었다.

가야금의 곡을 짓고 노래와 춤을 전수한 우륵을 ‘K 클래식’의 원조로 삼아 ‘K 컬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길 기대한다. 산상대석(山上臺石)에 앉아서 가무악(歌舞樂)을 다룬 만능 예인(藝人). 우륵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高臺夕照發光濱(고대석조발광빈) 옛날 탄금대 앞 남한강 낙조가 물가에 비칠 때

流客登高聚散人(유객등고취산인) 우륵이 탄금대에 오르면 흩어진 사람 모여들었네

一彈瑤琴奇妙調(일탄요금기묘조) 아름다운 거문고로 기묘한 가락을 한 번 타면

三間月出自然隣(삼간월출자연린) 초가삼간에 달이 뜨고 자연히 이웃이 되었네

舊堂秋草桐音動(구당추초동음동) 오래된 집의 시든 풀은 거문고 소리에 살아나고

籬下春林鳳曲親(이하춘림봉곡친) 울타리 아래 봄 숲은 봉황새 지저귐과 친하다네

塗地還明成大業(도지환명성대업) 땅에 떨어진 운명이 다시 밝아져 ‘대악’을 완성했고

幾千不變萬邦遵(기천불변만방준) 수천 년 변하지 않고 여러 나라가 (우륵을) 따랐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