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세탁된 흰색 와이셔츠에 깨알만 한 국물이라도 튀면 금방 표시가 난다. 눈에 너무 드러나 그대로 입고 다니기조차 민망해진다. 반면 온갖 얼룩이 덕지덕지 묻은 옷에는 꽤 많은 얼룩이 추가되어도 어지간해서는 잘 드러나질 않는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도 있다. 낙서, 유리창 파손 등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도 있다. 사소한 도둑질이 반복되어 용인되면 결국 범죄에 대한 죄의식 없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으로 변모한다. 한마디로 겁이 없어진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는 간이 배 밖에 나오는 것이다.

검찰의 무능 탓인지 영장담당판사의 정치적 성향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일부에서는 판사 앞에서 울먹이며 선처를 호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 여럿이 생목숨을 끊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곤 보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 대표는 아주 당당하게 자신의 구속을 면하기 위해 밥을 굶는 모습도 연출했다. 그 자체로 나를 위해 방탄 단식이라는 오명은 씻을 수 없게 됐다. 그렇지만 그는 부끄러운 기색이라곤 없다. 오히려 더 목소리를 높이며 민생을 빙자해 정부를 비난하며 영수회담을 제안한다. 예의염치, 시위사유(禮義廉恥, 是謂四維)’란 말이 있다. ‘예의, 의리, 청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인간의 도리란 의미다. 이 정도면 예와 의는 물론이고, ()과 치()도 없어 보인다.

이 대표는 어린 시절을 아주 곤궁하게 보냈다고 한다. 그런 곤궁한 시간들이 아버지의 직업마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묘사하는 자기 기만적 허언(虛言)으로 표현됐지 않았을까. 어려운 환경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법률가로서의 사명감보다는 더 큰 욕망이 자랐던 모양이다. 결국 음주운전, 무고 및 공무원자격사칭,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공용물건손상, 공직선거법위반 등으로 전과 4범이 됐다. 이유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그는 다양한 변명으로 자신의 범죄행위를 합리화했다. 어쩌면 인간 이재명은 그때 제대로 된 단죄를 받았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수치심을 상실한 인간형으로 변모한 것은 아닐까.

대장동, 백현동, 대북송금, 위증교사 등등으로 이어지는 숱한 범죄혐의는 그 숫자만으로도 어지럽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중 하나만의 혐의로도 견디질 못해 밤잠을 설친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넥타이로 목을 매고, 노회찬 전의원이 왜 창틀에서 뛰어내려 이승과 작별했을까. 작은 흠결도 용납하지 못하는 자기검증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이재명 대표처럼 자신과 관련된 사람 여럿이 생목숨을 끊고, 줄줄이 구속되어 구치소나 감방에 갇혀도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 대한 도덕적 기준, 자기검증 능력을 아예 상실했다는 의미다. 이타적 삶은 고사하고 지독하게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사는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라면 지나친 평가일까.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그것이 고의건 우발적이었건 죄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 번의 죄를 스스로 용서하고 두 번의 죄로 넘어가면 끝없는 지옥불 속을 걷는 인생과 다를 바 없다. 그 속에서 잉태되는 것이라곤 새로운 악일 뿐이다. 이재명이라는 단 한 사람의 개인 범죄혐의가 너그럽게 용서되고, 진영의 좀비들이 그것을 감싸고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순간, 또 다른 이재명들이 우후죽순 자란다. 이 대표가 당대표가 된 이후 지금껏 보인 모습을 보라. 이재명의 위기가 민주당의 위기로 번졌고, 이재명의 거짓과 잘못이 민주당의 윤리적 파산으로 이어졌다. ‘처럼회멤버들의 면면을 보라. 그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은 당 대표가 조성한 음습한 공간에 독버섯들이 마구 자란 형상이다. 근본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아무리 독버섯을 당 밖으로 옮겨 심은들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이 대표 단식을 기화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설치는 정청래 최고위원의 행태를 보면 민주당의 미래가 보인다. 정치적 반대파도 아닌, 오직 당을 위한 대의에서 소신껏 판단한 행위자들을 역도로 몰아간다. 광기에 휩싸인 홍위병들의 테러와 무엇이 다른가. 하루아침에 원내대표를 사실상 축출하고 이 대표를 옹호할 자들에게 새로 살인검(殺人劍)’을 건네줬다. 그런 당의 갈 길이 공천학살과 자기파괴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란 문구가 있다. ‘하늘의 그물은 굉장히 넓어서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망(法網)은 권력이나 속임수를 쓰면 빠져나갈 수 있으나, 천망(天網)은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한다. 잘못을 저지르면 언젠가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 잠시 그물 밖에 있다고 여겨 방자하게 구는 것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다.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하는 것만이 그나마 천망(天網)에서 벗어날 마지막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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