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부동시(不同視)로 인해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연속해서 사시(司試) 구수(九修)도 가능했을 것이다. 사법시험 공부를 하느라고 눈을 혹사하여 부동시가 되었을 것이고, 그러한 부동시로 인해 병역을 면제받아 계속해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주 금요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과 제2야당 정의당이 이균용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결과 사법부 수장에 걸맞은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사법부 공백 사태를 야기했다는 정치적 책임을 감수하면서도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인사 참사를 야기한 근본적인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으며, 그를 보필하여 인사 검증을 실시하는 법무부와 청와대 비서실도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다. 이런 경우 대통령이 스스로 인적 책임을 지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인사 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정부여당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전혀 없다. 대통령에게 그들의 경질을 요구하는 내부 목소리 또한 요원하다.

그 대신 그들은 전가의 보도인 야당 탓, 야당의 발목잡기 논리로 인사 참사를 피하려 하고 있다. 전 정부 탓, 야당 탓으로 돌리면 만사형통이라 생각하는 못된 버릇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 나두!’에 있다. 누구든지 대통령이 될 수 있고,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사회를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 계급과 지위, 돈과 신분에 관계없이 선거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선출직 공직자가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 나두!’, 즉 민중이 지배하고 민중이 지배당하는 데모크라시의 근본원리다.

, 나두!’와는 다르게, ‘, 너두!’는 봉건사회부터 내려오는 적폐 중의 하나다. 절대권력을 소유하고 있던 봉건사회의 군왕들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들에 대하여 권력의 일부를 나눠주면서 지배체제 안에서 자신의 절대권력을 추앙하게 만든다. 때로는 , 너두!’ 할 수 있다며, 계급과 지위, 돈과 신분에 관계없는 충성 경쟁을 유도한다. 군왕이 지배하고 민중이 지배당하는 절대왕정 시대의 지배원리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으로 , 나두!’가 상징하는 정치원리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의 통치행위는 정치가를 지향하는 모든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기준점이 박근혜가 됨으로써 저 정도보다 좀 나은 수준의 통치행위는 누구나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에 따른 결과물이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임명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적격과 부적격 의견을 병기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됐지만,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상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여야 합의 없이 임명한 18번째 장관급 인사다. ‘, 너두!’가 상징하는 정치원리도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여전히 우리나라 정치에 잘 적용되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의 별명처럼 저돌적인 직진 정치를 고집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면, 남의 이야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정치다. 그의 또 다른 별명처럼 좌도 살피고 우도 살피고, 가끔은 뒤도 돌아보면 좋으련만 박근혜 기준점이 낳은 폐해가 크다. 다행인 것은 부동시를 오래 방치하면 사시(斜視)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그 상태이면 그나마 걱정이 덜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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