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군사를 운용함에 있어 군주로 인해 잘못이 생기는 경우 중 첫 번째가 군대가 진격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지 못하고 진격하라고 명령하거나, 군대가 후퇴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지 못하고 후퇴하라고 하는 등 군주가 군을 얽어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수에게 전권을 위임해야 할 전장(戰場)에 군주가 개입하여 간섭하는 잘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무리하게 사면·복권하고 결과적으로 공천까지 주게 해서 재출마시킨 용산의 일방통행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맹종(盲從)은 비판받을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번 패배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면, 국민의힘에겐 오히려 보약(補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대통령에 대한 아부와 찬사만 이어진다면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경북지사 출신 김관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경우처럼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며 먹구름 위 언제나 빛나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먹구름을 걷어내고 혼란 속에서 나라를 지켜내신 구국의 지도자, 우리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식의 헛소리를 계속하면 곤란하다. 해야 할 직언을 포기하고 윤비어천가만 부르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곡소리 나고, 국정운영은 좌초하고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쪽만 바라보는 용산 바라기들로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전략(戰略, strategy)은 장수의 지도술을 의미하고, 전술(戰術, tactics)전투의 승리를 위해 부대를 어떻게 배치하고 이동시켜 전투력을 행사하는가에 대한 술()’이다. 용산과 국민의힘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전략과 전술 모두에서 실패한 선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선 국민의힘 지도부(당대표, 원내대표)는 반드시 해야 할 간언(諫言)’의 의무를 포기했다. 사면과 복권 자체가 재출마를 위한 과정이었겠지만, 거기서 멈추도록 했어야만 했다. 당정(黨政)은 한 몸이고 당연히 같은 길을 가야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당은 적절한 간언을 통해 대통령이 명확한 판단을 하도록 조언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부화뇌동(附和雷同)했다. 사실상 직무를 유기한 셈이다.

짐승의 털 오라기 하나를 들 수 있다고 해서 힘이 세다고 하지 않으며, 해와 달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눈이 밝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차라리 모자란 듯, 부족한 듯 성()을 비우는 무공천 전략으로 갔어야 했다. 그런데도 공천을 준 것도 모자라 쓸데없이 판을 너무 키웠다. 용산이 이념과 정당성을 앞세워 공천에 이르게 까지 되었다면, 국민의힘은 관전자의 입장에서 선거 후를 고민하고 준비했어야 옳다. 그러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이번 판을 보는 시선이 엉뚱한 데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작 투표하는 강서구민이 아닌, 용산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사면·복권시킨 사람을 공천은 줘야 하고, 반드시 당선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과도하게 짓눌렸다. 그러다 보니 원치 않게 올인하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은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 그런데도 선거의 시기, 국회의 상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당력을 총동원하고,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경쟁적으로 일개 구청장 선거에 몰두하는 광경을 강서구 주민과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원, 보좌진이 어떻게 바라봤을까. 말로 표현하진 못했겠지만 이런저런 분노, 고민과 걱정이 당연히 많았을 것으로 본다. 특히 10월은 국정감사 기간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보좌진 중 대다수가 연휴도 없이 국정감사 준비에 정신이 없을 때다. 이런 상황에서 일개 지자체장 보궐선거에 국회의원과 보좌진, 전국의 당원을 동원하는 쌍팔년도 방식의 구린 선거운동을 강제한 것은 실소가 나오는 장면이다. 국민의 혈세로 급여를 받는 국회의원과 보좌진, 지역구의 지방의원과 당원을 대거 동원하는 것은 원칙에도 맞지 않고, 국민 시선에서도 유쾌하지 않은 장면들이다. 국회가 국정감사를 준비해야 하는 귀한 시간에 본업을 등한시하고 선거운동에 매달리라고 독려하며, 그 결과를 경쟁적으로 보고토록 하는 방식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여당 입장에서 선거에 지면, 그 짐을 당은 물론이고 용산까지 지게 된다. 왜 일개 구청장 보궐선거에 국민의힘이 무리하게 올인하여 그 위험부담을 자초했는지 충분히 짐작은 된다. 하지만 선거에서 대패한 상황에서 원내지도부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 당 대표가 질 것인가. 짐짓 선거 결과에 괘념치 않는 듯한 태도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태도는 우스꽝스럽고 억지스럽다.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경쟁하듯, 때와 상황을 구분하지 못한 무모한 객기를 부린 것이었다면 과도한 비판인가. 민생도 편치 않은 상황에서, 연고도 없는 곳에 외지인이 떼로 몰려가서 떠들고 다니면 강서구 유권자들이 뭐라고 생각할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알고 용병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고,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용병하면 반드시 패하게 된다(知此而用戰者, 必勝. 不知此而用戰者, 必敗)”. 선거를 망치고 당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해야 한다. 실패의 기운은 자주 닥치지만, 성공의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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