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대한민국에 부정선거의 망령이 되살아날 조짐이다. 다소 황당한 주장이지만 현 상황은 농담처럼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내년 422대 총선을 불과 6개월 앞두고 공정한 선거관리에 초비상이 걸렸다. 최근 국가정보원의 합동보안점검 결과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개표 관리시스템이 해킹 공격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론적으로 가상의 해커가 선관위 전산망에 침투해서 선거결과의 조작 및 왜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선관위는 다수의 내부 조력자가 조직적으로 가담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강력 반발했지만 100% 안심하기는 이르다. 국정원의 브리핑대로 선관위의 투·개표 시스템과 내부망에 보안상 취약점이 존재한다면 투표의 신뢰도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개표의 정당성도 흔들린다. 특히 선거관리에 구멍이 뚫린다면 북한 등 외부 불순세력의 총선개입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대구시 선관위 22대 총선 개표 예행연습. 뉴시스
대구시 선관위 22대 총선 개표 예행연습. 뉴시스

국정원 합동보안점검 결과, 선관위 투·개표 시스템 해킹 우려
- 선관위 불가능한 시나리오반박에도 내년 총선 공정성 논란
- 민주당 180석 대승 21대 총선 놓고 부정선거 시비 논란 여전

우리나라에서 부정선거는 먼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87년 체제 등장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의 달성으로 선거관리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선·총선·지방선거 등 전국 단위의 선거에서 크고작은 잡음이 없지 않았지만 과거 3.15 부정선거와 같은 후진적인 관행은 완전히 근절됐다. 물론 2002년 대선, 2012년 대선, 202021대 총선 이후 선거결과를 부정하는 음모론도 횡행했지만 해프닝에 그쳤다. 선거 패배에 좌절한 극단주의적 성향의 강성 지지층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다만 SNS 확산과 정보통신(IT) 기술 발달의 여파로 부정선거 논란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아울러 선관위의 부실관리로 내년 총선에서 또다시 부정선거 시비가 재발한다면 총선 결과에 대한 불복사태는 물론 극심한 정치사회적 후폭풍도 우려된다.

국정원 ·개표 해킹 가능우려 vs 선관위 불가능한 시나리오

지난 10일 국정원은 선관위의 사이버 보안관리가 부실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브리핑했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선관위의 투·개표 관리시스템이 북한 등의 외부 침투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이에 선거관리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로 선거 결과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선관위의 공언에도 선거관리의 허점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국정원은 지난 717일부터 922일까지 약 두달간 선관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공동으로 선관위 보안시스템에 대한 합동점검을 벌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가상의 해커가 선관위 전산망 침투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모든 가능성을 점검한 결과, ·개표 시스템은 물론 선관위 내부망 등에서 해킹 취약점이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언론 브리핑에 나선 백종욱 3차장은 과거의 선거 결과 의혹과 결부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전제했지만 기술적인 취약성은 심각했다. 외부 세력이 불순한 의도로 투개표 조작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사전투표소에 설치된 통신장비는 외부의 비인가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었고 온라인투표시스템의 인증절차 미흡으로 대리투표 여부도 확인이 어려웠다. 이밖에 시스템의 보안관리 미흡으로 해킹을 통한 개표결과 조작도 가능했다.

선관위는 국정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기술적인 해킹으로 선거 조작 가능성 언급할 경우 선거결과 불복사태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했다. 선관위는 ·개표 시스템에 대한 해킹이 가능하다는 국정원 발표에 선거 시스템에 대한 기술적 해킹 가능성이 부정선거로 이어지려면 다수의 내부 조력자가 조직적으로 가담해야 한다며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반박했다. 특히 ·개표는 실물 투표와 공개 수작업 개표 방식으로 이뤄지고 정보 시스템과 기계 장치 등은 보조수단이라며 ·개표 과정에서 수많은 사무원, 공무원, 참관인 등이 참여한 데다 실물 투표지를 통해 언제든지 개표 결과를 검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 큰 우려는 북한 등 외부 불순세력의 침입 가능성이다. 국정원은 선관위에 해킹 사례를 통보했지만 선관위는 원인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후 보안조치도 실시하지 않았다. 특히 20214월 선관위의 인터넷 컴퓨터가 북한 김수키조직의 악성코드에 감염돼 상용 메일함에 저장됐던 대외비 문건 등 업무 자료와 해당 컴퓨터의 저장 자료가 유출된 사실마저 드러났다. 김수키(Kimsuky)는 대한민국의 고급 정보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북한의 해킹조직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와있다.

·대선승리후 부정선거 시비민주당 180석 논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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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정선거는 한국 정치사의 과거 유산이다. 고도의 민주주의를 이룩한 현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과거에는 노골적인 부정이 이뤄졌다. 특히 3.15 부정선거는 최악이었다. 투표함 바꿔치기 야당 참관인 축출 샌드위치 개표 3인조·5인조 선거로 불린 공개투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87년 대통령직선제 부활을 기점으로 노골적인 부정선거는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특히 2002년 대선 당시 일명 차떼기 사건으로 불린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이후 직접 금품을 살포하는 돈선거는 사라졌다. 이후에는 인터넷 여론이 중요해지면서 포털사이트와 SNS를 중심으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조작, 2017년 대선 당시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와 개표 결과 자체를 원천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한국사회의 믿음이었다.

물론 예상치 못한 선거 결과에 부정선거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200216대 대선 부정선거 음모론 201218대 대선 부정선거 음모론 202021대 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모두 투표지 분류기로 불리는 전자개표기 조작론이 골자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국민 의사와는 달리 전자개표기 조작으로 선거결과를 왜곡했다는 게 핵심이다. 2002년 대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승리로, 2012년 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각각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일각에서 선거결과 불수용과 부정선거 논란을 제기했다. 2002년 대선의 경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압도적인 우세를 믿었던 보수진영의 실망감이 극단화된 해프닝이었다. 반면 2012년 대선 이후 나꼼수의 일원이었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경우 더플랜이라는 영화까지 제작하면서 18대 대선 개표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상당수 진보진영 정치인과 언론인은 물론 국민들까지 동조했다. 선관위는 이에 의혹 해소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표지 현물을 직접 검증하는 것이라면서 검증 결과 어떠한 조작도 없었다면 의혹을 제기한 분들은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기를 기대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진보진영의 이러한 부정선거 음모론은 21대 총선 이후 보수진영에 그대로 이어졌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치러진 21대 총선 결과를 놓고는 보수여권 일각에서 부정선거라는 시각이 팽배해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물론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민경욱 전 의원, 차명진 전 의원까지 가세했다. 온라인공간의 극우 유튜버들 또한 여전히 민주당의 180석 대승은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확신할 정도다. 아울러 이들의 영향으로 사전투표 부정선거론은 극우진영에서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내년 총선 개입 가능성이다. 선관위 시스템이 해킹에 구멍이 뚫리면서 이론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특히 지난 2020520대 대선을 거치면서 선관위의 선거관리 능력을 도마 위에 올랐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내세워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은 나머지 본연의 임무인 선거관리는 부실 그 자체였다. 이 때문에 대선 때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긴 것은 물론 이미 기표한 용지를 유권자에게 나눠주는 황당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선관위가 선거관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하지 않으면 22대 총선 역시 부정선거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보수·진보, 선거패배시 불복 우려22대 총선 후폭풍 우려

중앙선관위. 뉴시스
중앙선관위. 뉴시스

부정선거 논란은 선거결과에 대한 불복사태로 이어진다. 이는 보수진보간 극심한 후폭풍으로 이어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2020년 미국 대선이 대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우편투표는 사기라는 주장을 고집, 대선 이후에도 미국사회는 극심한 분열상을 겪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사전투표제 음모론과 전자개표기 음모론은 아직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국민의 정확한 의사가 반영된 것이지만 패배하면 온갖 음모론이 횡행하면서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인다. 역대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증폭된 갈등이다.

여야는 벌써부터 신경전이다. 선관위의 시스템 구멍에 따른 부정선거 가능성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의 해킹 우려 가능성에 대해 문재인정부 책임론을 꺼내 들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선관위가 투·개표 시스템마저 해킹에 무방비로 방치했다니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최근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세인게임 축구 응원조작 행위에 이어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특정 반국가세력의 여론조작·선거조작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민주당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 시도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10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을 하루 앞둔 국정원의 발표에 선거 개입 시도라며 반발했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여당 지지자를 결속시키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윤석열 정부와 국정원은 여론 조작, 해킹 운운하며 선거에 마수를 뻗치는 행태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여야 공방 격화에 선관위도 초긴장 모드다. 선관위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관리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특히 내년 총선 모든 지역구의 사전투표함 관리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CCTV 화면의 24시간 송출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전투표는 보수진영 일각에서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비판해온 지점이다. 앞서 서울시선관위는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사전투표함·우편투표함 보관장소 CCTV 화면을 24시간 실시간으로 송출한 바 있다. 이밖에 유권자 등록현황과 투표 여부 등을 관리하는 통합선거인명부 시스템에 대한 해킹 우려에는 데이터베이스 서버 접근 통제를 강화하고 DB ·변조 여부 탐지 조치를 시행했다. 이밖에 ‘12345’ 등 허술한 접속 비밀번호는 변경하고 보안패치도 진행하기로 했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 되풀이되는 ()개표 시행주장과 관련, “정치권 합의가 이뤄지면 시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전투표제의 축소·폐지 역시 여야 합의를 전제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21세기 대한민국에 때아닌 부정선거 시비가 재현되는 건 사실 따져보면 넌센스라면서도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신뢰가 무너진다면 대국민 혼란 야기는 물론 선출권력의 정당성마저 훼손되는 엄청난 일이다. 여야 모두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부정선거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해법 마련에 초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정치 선진국인 미국 역시 지난 2020년 대선 이후 부정선거 시비로 엄청난 국론분열상을 경험했다선거결과를 부정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될 경우 총선 이후 정치사회적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무엇보다 선관위가 부정선거 시비를 만들지 않도록 수준높은 선거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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