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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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지각 국회'가 신기록 달성을 위한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공직선거법상 국회는 선거일 1년 전까지 선거구를 확정해야 한다. 10월 16일을 기준으로 국회는 190일째 입법부작위를 자행하고 있다. 만약 21대 국회가 내년 3월 4일까지 선거구 획정에 실패할 경우, 선거구 획정 '지각' 부문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할 수 있다.

총선 무효 직전까지 간 국회의 직무유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선거구 획정의 실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획정위는 지난 2월경 공직선거법 제25조에 따라 인구범위의 상한·미달에 따른 '획정 기준 불부합 국회의원지역선거구 현황'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총 253곳의 지역구 중 30곳은 선거구 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획정위는 국외부재자신고 개시일 1개월 전인 지난 12일까지 국회가 22대 총선의 지역 선거구 수 및 의원 정수 등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을 확정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편 방향을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한 국회는 답을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 사이 재외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이미 총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총선 120일 전인 오는 12월 12일이면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이 이뤄질 예정이지만, 아직 여·야가 선거구 획정 논의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21대 국회는 주권자인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획정위가 출범한 이래 국회가 선거구 획정을 완료한 시점을 살펴보면 21대 국회는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다. 지난 15대 총선부터 지난 21대 총선까지 국회는 평균적으로 선거일 50일을 앞두고서야 선거구 획정을 완료했다. 이 중 14대 국회가 선거일 75일 전에 선거구를 획정해 가장 국민의 참정권을 덜 침해한 편에 속한다. 16대 국회의 경우 선거일 37일 전에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했다. 

심지어 국회의 상습 지각은 총선 무효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질뻔 했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당시 공직선거법의 인구편차 3:1이 표의 등가성 원칙에 위배되는 점을 지적하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했다. 당시 헌재는 인구편차 2:1을 초과할 시 위헌임을 지적한 만큼, 국회는 2015년 12월 31일까지 공직선거법 개정을 완료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19대 국회는 63일 뒤인 2016년 3월 2일에서야 선거구 획정을 완료했다. 그 결과 복수의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들이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 심판을 제기했다. 국회의 입법부작위에 따른 선거구 관련 입법 공백이 발생해 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이 침해당했다는 주장에서다. 

당시 헌재는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도 1년 2개월이란 기간은 입법을 완수하기에 불충분한 시간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반대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은 국회의 입법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선거구 공백은 현역의원과 예비후보자 간의 불공정한 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는 의정활동보고 등을 통해 선거운동기간 전에도 사실상 선거운동의 효과를 누리는 기존 국회의원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정치신인에게 더욱 불리한 것"이라며 "자칫 정치신인의 선거운동 기회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도입한 예비후보자제도의 취지가 상당 부분 몰각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현재 선거제 논의가 공전하는 상황이 기득권인 현역의원들에게만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와 동일하다. 

위성정당 문제 삼는 與·野 4년간 무얼 했나 

21대 국회가 선거제 개편의 해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위성정당의 폐해에 있다. 지난 20대 국회는 득표율과 의석 수 간 괴리를 줄이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면서 다당제의 초석을 쌓기 위한 조치에서다. 하지만 비례대표 의석 수의 축소를 우려한 거대양당은 곧바로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선보여 그 의미가 퇴색된 바 있다. 

현재 여·야는 전국을 3개 권역으로 나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위성정당 방지법을 두고 이견을 보이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총 의석 수 및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반대하는 가운데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상황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준연동 비례대표제를 유지한 채 비례대표 의석 수를 60석가량으로 늘리자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여·야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고려하는 밀실 논의를 진행 중이란 말이 나오자, 이탄희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55명의 의원은 당 지도부의 선거제 개편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 여·야는 선거제 개편 논의 지연을 두고 각자가 주장하는 위성정당 방지책 간 차이를 근거로 드는 모양새다. 앞서 헌재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위해 주어진 1년 2개월의 시간이 결코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위성정당 방지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무려 4년이다. 시간은 충분했다는 평가다. 

위성정당은 21대 총선 당시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형해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급기야 2021년에는 윤호중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의당을 찾아 위성정당 창당에 대한 사과를 한 일이기도 하다. 같은 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국민들에게 위성정당 창당을 사과하며 방지법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선은 이어지지 않았다. 21대 국회에서 위성정당과 관련해 통과된 법안은 2020년 12월경 '비례대표 후보의 민주적 선출 절차'에 대한 내용이 담긴 (구)공직선거법 제47조 2항 1호부터 3호를 삭제한 개정안뿐이다. (구)공직선거법은 2020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위성정당 문제로 선관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근거이기도 하다. 

당시 참여연대도 해당 법안 개정을 두고 "급조한 위성정당은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민주적 선출 절차를 거치지 않아 위 조항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며 "비례대표 선출 절차의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한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은 거대정당의 야합이자 개악"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정치권의 선거제 개편을 두고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선거구 획정이 늦은 상황에서도 올 한해 국회가 선보인 선거제 개편 공론화 과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올해 국회는 ▲국회 출입 기자 대상 여론조사 ▲국회의원 전원위원회 개최 ▲국민 공론조사 등을 통해 선거제 개편의 논의 주체를 확대했다. 이와 관련 경실련은 지난 9월경 여·야의 밀실 협상 소식이 들리자 국민 공론조사 결과 기반의 선거제 개편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김진표 국회의장도 지난 5월경 국민 공론조사 결과 공개토론회에서 2016년 선거법 위헌 소송부터 위성정당 창당을 거쳐 공론조사와 언론인 여론조사를 실시한 점을 강조하며 "이런 상황에서 선거법 협상을 또 늦추면 저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그 선거법에서 치러진 선거가 과연 합헌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우려된다)"고 밝히며 제2의 총선 무효 사태를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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