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쇠라는 말은,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다 모른다고 일단 잡아떼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벙어리 행세(playing dumb)’라고 부른다. 과거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별명이 모르쇠’, ‘자물쇠였다. 청문회 당시 정 회장은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그 역시 재판 중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습니다.”라며 부인(否認)으로 일관했다. 근래에는 정태수 회장과 유사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모르쇠가 등장했다. 이재명 대표다. 이 대표는 일단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하다못해 해외 출장에서 함께 골프를 치기기도 한,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며 딱 잡아뗐다. 김 처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뒤 하루 만의 발언이다. 이에 대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은 “(이재명 대표가) 김문기를 몰라? (나랑 김문기랑) 셋이 호주에서 같이 골프 치고 카트까지 타고 다녔으면서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경기도청 법인카드 유용(횡령) 사건과 관련해서도, 경기지사였던 이 대표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대표가 법인카드 유용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짓고, 지난 10일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 경기도청 비서실 공무원이던 조명현씨는 지난 8이 대표가 공금 유용을 지시 또는 묵인했으며, 스스로도 횡령했다는 공익신고와 함께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최근에는 자청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권익위는 조씨가 제출한 자료 등을 조사한 결과 조씨가 근무했던 140여 일 동안 거의 매일 법인카드 사적 사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기간과 지속성, 비전형적인 사용 형태와 특이성 등에 비춰 볼 때 이 대표가 그 사실을 알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규정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역시 최근 행안위 국정감사에서 저희 감사 결과를 보니까 최소 61건에서 최대 100건까지 사적사용이 의심이 된다. 그래서 업무상 횡령배임으로 경찰청에(수사 의뢰를 했다)” 라고 답변했다.

조명현씨는 지난 8월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경기도 법인카드를 유용한 사람이 이재명 대표 배우자 김혜경 씨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이 대표가 주범이라며, 한 달에 이 대표 샌드위치 비용으로만 100만원이 넘어갔다. 이 지사 부부가 살던 공관에 올리는 과일은 직원 격려용으로 처리됐고 공관용으로 처리된 적이 없었다. 한 번 올릴 때마다 30만원 이상이 들었다. 과일값은 한 달에 수백만원에 달했는데 (업체)사장이 직접 경기도청으로 찾아가 돈을 받아갔다. 과일을 사 놓으면 김혜경 씨가 찾아와 관사 아래층과 위층 두 냉장고에 가득 찬 과일 등을 모두 박스에 넣어 집으로 가져갔다. 배소현씨가 이 대표 개인차량에 관용차 카드로 기름을 넣으라고 지시하기도 했고, 이 대표의 옷과 속옷 챙기는 것도 내 담당이었는데 배 씨가 옷과 속옷은 꼭 다른 비서가 어디선가 가져온 것을 받아오라고 시켰다.”는 등의 주장을 했었다. 사실상 공무원들이 범법에 동원되고 사노비(私奴婢) 취급을 당한 셈이다.

김혜경씨 측근 배씨는 법인카드 유용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 위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 공소장에는 김혜경 씨도 공범으로 적시됐다. 1심 법원의 판단에 따른다면,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부터 벽에 써 붙였다는 부패지옥(腐敗地獄), 청렴천국(淸廉天國)’, 실상은 부패천국(腐敗天國), 청렴지옥(淸廉地獄)’이었다는 꼴이 된다. 조명현씨는 19,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선가 불발됐다.

이 대표는 변호사비와 대북송금 대납 의혹을 받는 김성태도, 대북송금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이 대표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모친상 때 서로 측근을 보내 조문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재명 대표의 방북을 위해서 북한에 3백만 달러를 보냈다고 김성태가 직접 진술도 했다. 각종 사건혐의에 대한 이 대표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사건관계자들이 아무 이유없이스스로 줄줄이 목숨을 끊었고, 한때 동지였던 유동규는 스스로 없는 사실을 꾸며 이 대표를 공격하며, 공무원들이 자진해서 범법행위를 저지르며 경기지사 일가의 사노비 노릇을 했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이 대표의 범죄혐의를 인정하는 진술을 하는 등 참으로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 않은가?

1946년부터 23년간 스웨덴 총리를 지낸 타게 엘란데르(1901~1985)는 총리 시절에, 이십 년이 넘은 낡은 외투를 입고 신발도 구두 밑창을 갈아가며 오래도록 신었다. 총리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고, 출퇴근도 관용차 대신 부인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이용했다. 부인 아이나 안데르손 역시 엘란데르가 퇴임한 후 정부부처 장관을 찾아가 남편이 쓰던 볼펜까지 돌려줄 정도였다. 이들이 이 대표 부부의 삶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이 대표가 지사를 지낸 경기도의 광경은 어땠는가. 공무원이 법인카드로 산 조식용 샌드위치·과일, 개인 식사가 날마다 배달된 것은 물론이고 샴푸와 제수용품, 심지어 명절 선물까지 챙겨주었다고 한다. 성남시장 때는 안 그랬을까? 상식적으로 지사가 모를 수 없는 일이다. 몰라도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직자의 부패천국(腐敗天國), 청렴지옥(淸廉地獄)’이 일반적 현실이 된다면 나라가 망한다. 성실하게 재판에 응하고, 스스로 진실만을 답할 의무가 이 대표에게 있다. 더 이상 방탄과 특권의 뒤에 숨지 말고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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