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청원 5만 명 달성…제도개선 탄력받나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개인투자자(일명 개미)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수개월 동안 공매도 주문을 해오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적발됐다. 이번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건 그간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불법 공매도가 관행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공매도 관련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2020년 4건에서 올해 상반기 45건으로...과태료·과징금 부과 합계도 107억 원
- 개미들 "공매도 관련 규제 더욱 강화해야"...금융당국 "더 고민이 필요하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인 HSBC와 BNP파리바 홍콩법인이 불법 공매도한 사실이 확인됐다. 두 곳은 카카오와 호텔신라 등 110개 한국 기업에 대한 무차입 불법 공매도를 벌여오다가 금융감독 당국에 적발됐다.

- 불법 공매도 분통...개미들 집단행동 나서

개미들은 사그라지지 않는 불법 공매도에 분통을 터뜨리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국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증권시장의 안정성 및 공정성 유지를 위한 공매도 제도 개선’에 관한 국민 동의 청원은 지난 12일 15시 30분 기준으로 5만 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 회부됐다.

청원인은 “증권시장의 안정성 및 공정성 유지를 위해 현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차입 공매도 제도의 개선을 통해 증권시장을 활성화하고,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라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현 자본시장법은 원칙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으며, 단지 차입 공매도만 가능하게 되어 있는데 현 증권거래 시스템은 불법인 무차입 공매도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시스템상 근원적으로 차입이 불가능하면, 매도가 불가능하도록 설정되어 있어야 하나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부연했다.

청원인은 “이에 따라, 불법인 무차입 공매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주식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여지가 농후하다”며 “따라서 무차입 공매도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증권거래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 현 자본시장법은 기관ㆍ외국인의 경우 차입 공매도 상환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차입 공매도를 실행한 기관ㆍ외국인 등의 경우 수익이 날 때까지, 즉 주가가 떨어질 때까지 무기한으로 기다리면 절대 손해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라며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없애준 격으로 개인투자자와 크게 차이가 있고 이러한 무기한 차입 공매도는 우량회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어 대한민국의 경제와 산업 발전에 커다란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차입 공매도 상환기간을 일정 기간(예, 3개월 또는 6개월/연장은 불가)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개미들은 금융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개인 투자자 단체는 공매도 제도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에 대해 정책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개인 투자자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이하 한투연)는 지난 16일 금융위를 상대로 공매도 관련 정책 과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투연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A4 용지 17장 분량의 소장을 제출했다.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공매도 금지 과정에서 금융위의 늑장 대응과 공매도 금지 보도자료 배포 시 과실로 인해 발생한 금전적 피해, 투자자 보호 의무 소홀로 발생한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대한 청구"라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19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당 원내 대표도 조속한 공매도 금지를 촉구했지만, 은성수 당시 금융위원장이 금지를 미루면서 투자자들의 천문학적 피해를 야기한 것은 금융위의 실정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소장에는 2018년 5월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이 했던 무차입 공매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약속을 현재까지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피해 보상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2022년 6월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해 공매도 조사전담반 설치 후 같은 해 8월 조사팀 전환 이후 불법 공매도에 대한 면밀한 감시와 집중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최근 그간 시장에서 의혹으로만 제기된 글로벌 IB의 관행적인 불법 공매도 행위를 최초로 적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그간 외국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인 투자 환경 조성 노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IB의 위반행위가 발견되어 엄정한 조치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며 “향후 유사한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하고, 수탁 증권회사의 위반가능성 여부 등에 대해서도 검사를 강화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제공 : 금융감독원
제공 : 금융감독원

하지만 금융위가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실제 제도 개선까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17일 서울 여의도동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공매도 전면 재개는 종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기본적으로 경제금융 상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변동성을 크게 확대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매도 관련 조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게 저의 강한 개인적인 신념”이라며 “이대로 넘어가서는 공매도를 더 풀 수도 없고, (공매도를) 더 거둘 수도 없는 병목에 갇힌 형태라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자본시장은 외국인, 국내 기관, 개인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 모두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현 공매도 제도는) 너무 크게 신뢰가 손상된 지점”이라며 “좀 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개인적인 소견”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불법 공매도는 시장을 교란하는 만큼 단순히 개별 건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로베이스(시작점)'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현재 공매도 자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될 정도로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당국이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이 원장은 그간 시장에서 꾸준히 요청이 제기된 공매도 제도 개선 조치에 대해선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기관·외국인의 상환 기간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 당국, 공매도 논의했지만, 뚜렷한 방침 못 내놔

지난 2년여간 당국 안팎에서 공매도 재개 논의가 나왔으나 구체적인 방침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국정감사에 참석해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서 목적과 형태가 상이하게 진행되는 모든 대차거래를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또 공매도를 거래하는 시스템과 거래가 이뤄지는 증권거래소 시스템을 연계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술”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전날 금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불법 공매도 제재 건수는 2020년 4건, 2021년 16건, 2022년 32건, 올해는 8월까지 45건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불법 공매도에 대해 부과된 과태료·과징금 부과 합계도 107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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