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내년 22대 총선까지 6개월 앞둔 가운데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못지않은 용광로 지역구가 있다. 바로 경기 성남시 분당갑이다. 선거철이면 경기도에서 손꼽히는 여야 격전지다. 국민의힘 현역 중진인 안철수 의원이 터를 잡은 이 곳은 당초 ‘윤심(尹心) 참모’인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21대 국회로 입성하기까지 부단히 텃밭을 갈아온 지역구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김 수석이 내년 총선을 기해 분당갑으로 복귀할 것이란 관측이 파다해 국민의힘 내부에선 공천시계가 빨라질수록 긴장감도 더해지는 모습이다. 분당갑의 이슈는 이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분당갑 깃발을 탈환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에 당내 일각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현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을 떠나 당의 험지로 분류되는 분당갑으로 몸소 출마해 여권 거물급 인사들을 대적해야 한다는 이른바 ‘이재명 분당 등판설’이 분출하는 모양새다.

성남시 분당갑은 전통적으로 보수 우세 지역으로 손꼽히는 지역구로, 2000년 단일 선거구로 획정된 이후 보수정당이 총 7번의 선거에서 전승을 거두다시피 한 곳이다.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은혜(현 대통령실 홍보수석) 국민의힘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공석이 된 분당갑은 지선과 동시에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해 62.5%의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한 안철수 의원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그러나 보수 텃밭이었던 분당갑은 최근 판교 신도시 구축으로 청년층 유권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여야 격전지로 거듭났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김병관 민주당 후보가 권혁세 새누리당 후보를 8.52%포인트 차로 이긴 뒤 분당갑의 정치지형은 여야 박빙 구도로 급속 재편됐다. 21대 총선에서도 김은혜 미래통합당 후보는 김병관 민주당 후보에 불과 0.72%포인트라는 극세사 격차로 신승하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에 분당갑은 여야의 경쟁심을 극도로 자극하는 수도권 지역구로 변모했다. 중대 선거철이면 여야 모두 상대진영을 압도할 만한 거물급 인사를 차출하는 데 공을 들이는 지역구가 된 것이다.

다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거대 변수가 생겼다. 당초 민주당에선 20대‧21대 총선에서 분당갑의 ‘보수 텃밭’이란 고유수식어를 깨뜨린 김병관 전 의원의 내년 선거 재출마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이 최근 동성 성추행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민주당으로선 돌연 유력 후보를 상실했고, 그 공백을 채울 만한 대체재도 마땅찮은 상황이다. 반면 국민의힘으로선 메가톤급 호재가 터진 셈이지만, 분당갑 공천에 앞서 내부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는 선결과제가 남아있다.

‘지역구 총력 사수’ 안철수, 몸집 불리며 분당갑 착근 시도

안 의원은 지난해 6.1 보궐선거로 분당갑에 입성한 이후 줄곧 지역구 관리에 주력하며 재출마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내년 총선 전 21대 임기를 마치면 분당갑에서의 의정 커리어가 2년도 채 되지 않는 만큼, 반드시 재선에 성공해 ‘안철수=분당갑’ 공식을 착근시킨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또 안 의원은 보궐선거로 21대 국회 후반기에 들어서야 분당갑에 입성했기 때문에 도의적으로도 차기 총선에 출마해 지역구에 대한 ‘책임정치’를 실현하겠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다만 안 의원이 당의 분당갑 공천을 확정지으며 내년 총선 재출마를 기약하기엔 당내 입지가 불안하다는 변수가 엄존한다. 안 의원은 지난 3.9 대통령선거 전후로 후보 단일화,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으로 정권교체 기여도를 인정받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는 등 국민의힘에서 상승가도를 탈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지난해 3.8 전당대회 국면에서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은 이후 당내 비주류로 밀려나며 대권주자급 인지도가 무색한 처지에 놓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이른바 ‘윤심 참모’로 불리는 김은혜　홍보수석이 내년 총선을 기해 자신의 옛 지역구인 분당갑으로 복귀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파다하다. ‘분당갑 사수’에 사활을 건 안 의원으로선 거대 현실장벽을 마주한 셈이다.

이에 안 의원이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공개적으로 분당갑 출마를 제안하거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유세 발언을 놓고 ‘반윤’(反尹) 이준석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모두 당 공천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분당갑에 거물급 쏠리면 손해”...김은혜 분당을‧용인갑 우회 출마?

여권에선 김 수석의 내년 총선 출마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다만 출마 지역구가 어디냐가 문제다. 여당으로선 김 수석의 분당갑 복귀는 안 의원과의 충돌이 불가피한 만큼,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분당갑은 현재 민주당의 주력 카드였던 김병관 전 의원의 낙마로 여당의 무혈입성 가능성마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에 국민의힘으로선 안 의원과 김 수석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그리 달갑지 않다. 여권 거물급 인사들이 사실상 무주공산이 된 분당갑에 쏠리며 내부 소모전을 펴는 것은 오히려 손해라는 계산에서다.

아울러 여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외연 확장을 통해 민심과 접점을 넓히기 위해선 친윤(친윤석열) 색채에 힘을 빼며 탕평인사에 방점을 둬야 하는 만큼, 안 의원을 물리고 김 수석을 끝내 윤심 공천하는 것은 모양새도 좋지 않고 실익도 없다는 평가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저력을 과시한 바 있는 이들 두 사람을 분산시키는 것이 여당으로선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묘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국민의힘이 분당갑 출마 의지가 확고한 안 의원을 배려하면서도 용산에서 체급을 키운 김 수석을 수도권 험지로 전방배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김 수석이 분당갑이 아닌 타 지역구로 출마지를 선회할 경우 유력하게 거론되는 대안이 경기 분당을과 용인갑이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인 분당을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해볼만 하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용인갑은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 징역형을 선고받아 사실상 무주공산이다 보니 김 수석의 22대 국회 진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평가다.

‘대장동 리스크’ 이재명이 분당갑으로? 

한편 야권 일각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분당갑에 출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의 분당갑 선발투수 격이었던 김병관 전 의원이 유죄 확정으로 총선 출마가 좌초되면서 대체재를 찾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분당갑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민주당으로선 딱히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당대표이자 유력 대권주자인 이 대표가 직접 고전이 예상되는 분당갑에 출마해 여권 거물급 인사를 누르고 험지 1석을 탈환하는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대표로선 지난 6.1 보궐선거로 인천 계양을에 입성한지 불과 1년 반도 채 되지 않아 지역구를 옮기기엔 명분이 부족한 데다, 분당갑 출마는 자신의 정치 체급이나 이해득실을 따져봐도 전혀 득될 것이 없다고 판단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