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전도 아닌 2000년대만 해도 의료계에서는 내과, 외과, 소아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를 가리켜 의료계에서는 메이저 과라고 불렀다. 인간사회가 유지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 버는 돈은 적고 하는 일은 고될지언정 메이저과 의사는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낭만닥터 김사부’ ‘외과의사 봉달희’ ‘산부인과등등도 메이저과 의사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기에, 성적이 좋고 사명감도 있는 의사들이 메이저과를 택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의 졸업생 환송회에선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테이블에 앉은 졸업생들에게 소아과 교수가 묻는다. “이 중 소아과 할 사람?” 손을 드는 졸업생은 없다. 교수가 농담조로 옆에 앉은 학생에게 민석아, 너라도 해라고 하면 해당 학생은 사색이 된다. “제가요, 원래 아이들 보는 걸 잘 못해서요.” 그 자리에서 한 말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건만, 학생은 말대접이라도 소아과를 한다는 말을 안하는 거다. 사실 2017년만 해도 소아과 정원 180명을 채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2019년부터 지원자가 감소하기 시작해, 2023년에는 정원의 16.4%만 소아과를 지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2018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실에서 4명이 숨졌는데, 들끓는 여론에 놀란 판사가 신생아실 담당교수를 구속시킨 게 바로 그때다. 추후 재판에서 해당 교수는 무죄를 선고받지만, 그녀가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장면은 수많은 의대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소아과는 하면 안 되겠구나.” 이런 일은 소아과뿐 아니라 모든 메이저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고, 이제 의료계는 이 과들을 기피과라 부르고 있다. 의사가 없어 진료를 못받는 일이 벌어지자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 이 경우 성적이 나빠 원하는 과를 못 가는 학생들이 낙수효과로 메이저과에 가지 않겠냐는 논리다. 궁금하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 자식의 생명을 조민 같은 의사에게 맡길 수 있을까?

그리 오래전도 아닌 2000년대만 해도 검사는 선망의 직종이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며 가스라이팅 당한 수많은 아이들에게 나쁜 놈들을 잡아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일만큼 멋진 게 없었으니 말이다. 정의로운 검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을 지경, 버는 돈은 적고 하는 일은 고될지언정, 연수원 성적이 좋은 이들 중 상당수가 검사를 지원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 검사들이 시련을 겪기 시작한 건 2019년 조국사태 이후, 문재인 정권은 조국 법무장관과 그 가족을 기소해 유죄로 만든 검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강백신, 한동훈 등 능력있는 검사들이 통영이나 법무연수원으로 유배됐고, 몇몇은 견디다 못해 옷을 벗었다. 검사에 대한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검찰은 먼지털이 수사로 없는 죄도 만드는 집단이다, 언론과 결탁해 무고한 이를 음해한다 등등, 검찰이 마치 악의 근원인 양 끊임없이 대중들을 선동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 검사 출신의 대통령이 들어섰지만, 검사에 대한 비난은 한층 더 거세졌다. “없는 죄를 조작해 뒤집어씌우고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겠다는 정치검찰의 조작 수사 아니겠습니까?” 중대 범죄자인 이재명은 기회만 있으면 검찰을 욕했고, 이재명 방탄에 지극정성인 민주당은 검찰청 앞에 드러눕고, 이재명을 수사하는 검사를 공격하는 등 검찰 악마화에 여념이 없다. 아이들도 다 눈과 귀가 있는 법, 과거 같으면 검찰을 꿈꿨을 그들은 이제 검사가 그리 좋은 직업이라 여기지 않을 것 같다. 메이저과에 우수한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검찰에도 우수한 검사가 필요하다. 특히 범죄가 고도화된 요즘엔 검사의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속적인 검사 때리기로 우수한 법조인들이 검사를 기피한다면, 그래서 그저 그런 능력을 지닌 이만 검사에 지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남국 같은 이가 라임펀드를 수사하고, 한동훈 같은 이가 김앤장에서 펀드 주범을 변호한다고 가정해 보자. 펀드사기로 인해 전 재산을 날린 이들의 눈물이 마를 수 있을까? 김윤아는 겨우 후쿠시마 방류를 가지고 디스토피아를 논했지만, 조민급 의사에게 생명을 맡기고, 김남국급 검사에게 사회정의를 부탁해야 하는 미래의 대한민국이야말로 진짜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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