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의 아성이다. 어떤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텃밭이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과 전신 전당의 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전국 단위 선거에서 늘 압승을 거뒀다. 특히 강력하게 결집된 호남 여론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선거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역대 대선에서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당선도 밑바탕은 호남 몰표였다. 총선 국면에서도 싹쓸이 대승이 이뤄졌다.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최근에는 민주당의 텃밭이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물론 호남에서 민주당의 절대 강세 기류는 변함이 없지만 예전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01620대 총선에서는 분노한 호남 민심이 민주당을 심판하면서 국민의당을 몰표를 건넨 바 있다. 민주당의 혁신과 쇄신이 없다면 유사한 현상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요동치는 밑바닥 호남 민심을 들여다봤다.

이재명 대표가 5.18 기념식장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표가 5.18 기념식장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 철옹성 지지에도 대선·지선 당시 이상기류 조짐
- 국힘, 호남 출신 인요한 혁신위원장 카드로 서진정책 본격화
- 호남, 수도권 민심에 영향력 절대적여야, 승패 떠나 사활

내년 4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호남민심 잡기 경쟁이 한창이다. 민주당은 수성을, 국민의힘은 도전을 외치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비판하면서 압도적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지만 안심하긴 아직 이르다. 변수는 공천갈등 논란과 제3지대 정당의 파괴력 여부다. 열세에 놓인 국민의힘은 각오는 남다르다. 지난 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얻었던 두자릿수 지지율에서 더 나아가 내심 20%대 지지율을 노리고 있다. 물론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호남 지역에 광범위한 반윤(反尹) 정서로 이변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다만 서진정책을 앞세워 정치적 상품성과 경쟁력을 갖춘 인사들을 전진배치하고 있다. 이는 호남을 잡아야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는 여야의 전략적 계산이다.

대선·지선 호남민심 변화민주 초강세속 변수도

호남이 민주당 텃밭이라는 점은 지난 20대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국 개표 결과는 0.73%포인트 차이의 초박빙이었지만 호남은 달랐다. 광주 이재명 84.8% vs 윤석열 12.7% 전남 이재명 86.1% vs 11.4% 전북 이재명 83.0% vs 윤석열 14.4%.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말그대로 완승이었다. 다만 의미있는 건 보수진영 후보의 지지율이 10%가 넘어섰다는 것이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승리했던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호남(광주, 전남북) 득표율 합계가 5%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괄목상대한 것이었다. 대선 이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복합쇼핑물 등 지역개발 이슈가 먹혀들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특이 현상도 있다. 높은 아파트값으로 광주의 강남으로 불린 봉선2동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30%에 육박하는 27.1%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징벌적 부동산 과세에 대한 불만 여론이 반영된 것이었다.

대선 이후 치러진 제8회 지방선거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났다. 광주 투표율이 37.7%로 전국 평균 50.9%에 한참 못미치며 전국 최하위를 기록한 것. 이는 직전 20대 대선 투표율 82.0%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대선 패배 이후 개혁과 혁신은커녕 내부잡음으로 시끄러웠던 민주당에 대한 경고장이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주기환 광주시장 후보가 15.9%, 이정현 전남지사 후보가 18.8%를 득표하는 이변을 기록했다.

한국갤럽의 주간단위 정기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도에 ±3%포인트)를 살펴보면 최근 6개월간 호남민심의 미묘한 변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104주차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55% vs 국민의힘 14%였다. 반면 같은 기간 호남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 17%, 부정 76%로 나타났다. 높은 지지세에도 민주당이 유일무이한 대안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공천갈등이나 제3당 변수에 따라서는 호남 여론이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비슷한 기간 직전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93주차 여론조사, 민주당 52% vs 국민의힘 13%(대통령 긍정평가 14% vs 부정평가 76%) 84주차 여론조사, 민주당 51% vs 국민의힘 14%(대통령 긍정평가 vs 16% 부정평가 76%) 74주차 여론조사, 민주당 54% vs 국민의힘 11%(대통령 긍정평가 14% vs 부정평가 80%) 64주차 여론조사, 민주당 43% vs 국민의힘 5%(대통령 긍정평가 11% vs 부정평가 83%) 54주차 여론조사, 민주당 41% vs 국민의힘 17%(대통령 긍정평가 18% vs 부정평가 70%). 정리하면 내년 총선 국면에서 국민의힘이 복합쇼핑몰로 상징되는 지역개발 이슈와 지역주의 타파를 내건 서진정책을 본격화할 경우 민주당 일방 우위의 구도는 변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정치토크쇼 2016018. 뉴시스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정치토크쇼 2016018. 뉴시스

민주, 친명·비명 공천갈등 변수-국힘, 인요한 투입 승부수

물론 호남은 민주당의 텃밭이다. 21대 총선에서 광주, 전남·북 전체 28개 의석 중 무소속 1석만을 제외하고 싹쓸이했다. 22대 총선에도 민주당의 독주가 예상된다. 다만 100%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호남 민심은 민주당이 오만할 때마다 회초리를 든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201620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던 안철수 의원이 주도했던 국민의당은 파란을 일으켰다. 국민의당은 싹쓸이에 가까운 호남 석권을 바탕으로 녹색돌풍을 주도했다. 반면 정치적 텃밭에서 대참패를 기록했던 민주당은 이후 극심한 후폭풍을 앓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호남참패로 정계은퇴 압력에 내몰릴 정도였다.

호남 석권을 자신하는 민주당의 최대 걸림돌은 공천이다. 윤석열정부 견제를 위한 참신하고 개혁인적인 인사가 대거 공천된다면 금상첨화다. 다만 친명·비명간 공천 파열음이 확산될 경우 201620대 총선을 둘러싼 분열과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로 계파갈등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비명계 의원 상당수는 공천학살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한 편이다. 또 정치재개에 나선 올드보이의 움직임도 변수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 천정배 전 법무장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에 대한 공천 논란이다. 올드보이를 공천할 경우 개혁의지 부족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지만 호남지역 초선 의원에 대한 민심의 부정적 평가도 상당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호남지역의 현역의원 교체, 다시 말해 물갈이 여론은 무려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민주당 공천이면 바로 당선이라는 등식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조국신당의 탄생 여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전 장관이 총선출마를 결정한다면 호남을 기반으로 나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호남지역에서는 조 전 장관의 호남출마와 신당 창당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에는 이재명 대표라는 확실한 차기주자가 있는 만큼 조 전 장관이 신당을 앞세워 총선에 나설 경우 표심 분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호남 교두보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는 최근 영입 인사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인요한 혁신위원장이다. 전남 순천 출신의 인요한 위원장은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연세대 재학생의 신분으로 시민군의 영어 통역을 맡았던 인사다. 국민의힘 구원투수로 호남공략이라는 서진정책을 총괄할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의사 출신의 30대 청년인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와 과거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했던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출신의 함운경 씨의 영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박은식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혁신위원장 후보로도 고려했을 정도다. MZ세대 출신의 청년 의사인 박 대표는 과거 조국사태 이후 총선에서 민주당 몰표를 반성하면서 호남재정립을 기치로 내걸고 활동 중이다.

과거 지역주의 타파의 기적을 이룩했던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의 움직임도 변수다. 지난 19·20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었던 이 전 대표는 내년 총선에 또다시 도전에 나설 전망이다.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2의 이정현으로 평가받은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의 이변을 기대하는 눈치다.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비윤계로 분류되는 천하람 위원장은 여야를 대표하는 청년 정치인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췄다.

엇갈리는 호남민심, “민주 심판해야” vs “미워도 다시한번

20대총선에서 호남의석을 다수 석권한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 뉴스
20대총선에서 호남의석을 다수 석권한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 뉴스

민주당 심판론은 제3지대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 탈당파인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와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장인 금태섭 전 의원이 주도하는 호남발 제3지대 신당의 파괴력도 예측불허다. 이 때문에 내년 422대 총선에서는 과거와 같은 민주당 우위의 일방적인 압승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호남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여야 일대일 구도가 아닌 다자구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호남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강행군에 나선 양 의원과 금 전 의원의 경우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의 영입에도 적극 나서며 세불리기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정당인 정의당 일부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도 열어뒀다. 양향자 대표는 이와 관련, “호남은 민주당이 혁신을 멈췄을 때 지지를 철회하는 등 혁신을 선도하고 정치 세대교체에 앞장섰다. 이는 신당에게 큰 기회라면서 대안이라고 생각되면 화끈하게 밀어주는 게 호남이라고 총선 선전을 자신했다.

보다 극적인 변화도 가능하다. 국민의힘의 대표적인 반윤(反尹) 정치인인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마저 제3지대 정당에 합류하는 것이다. 연말 신당 창당설이 거론되는 이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이 제3지대 정당에 전격 합류할 경우는 이는 여야 정치권의 지격변동과 더불어 호남에서 민주당의 일당 독점구조를 허무는 촉매제도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7KBS광주 광주전남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도 ±2.5%p)는 민주당에 실망한 민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민주당 이외에 호남 기반의 새로운 정당 등장과 관련, ‘좋다고 본다는 응답은 43.3%, ‘좋지 않다고 본다는 응답은 45.4%로 팽팽했다. 특히 20·30대의 찬성 의견이 60%에 육박했다. 호남발 신당이 힘을 얻으면 201620대 총선 당시 국민의당 돌풍이 재현될 수 있다. 한마디로 민주당을 심판해야 바뀐다는 여론이다. 민주당이 개혁과 혁신을 멈출 경우 호남여론도 무조건 지지에서 돌아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다만 미풍에 그칠 경우 민주당의 호남 대세론은 유지된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민주당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호남이 똘똘 뭉쳐서 민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논리다. 호남발 신당의 영향력은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처럼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22대 총선 최대 승부처로 불리는 수도권 선거의 결과는 광주·전남북 등 지역민심의 움직임과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여야 모두 호남공략에 열과 성을 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면서도 민주당의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이를 대신할 새로운 세력의 등장 여부에 따라 호남민심은 크게 요동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민주당의 호남 우세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최근 미세한 균열 조짐도 엿보인다총선 국면에서 민주당의 공천갈등 격화와 국민의힘의 서진전략이 빛을 발할 경우 과거 국민의당 녹색돌풍이나 이정현·정운천 당선 등 보수의 기적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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