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비방과 혐오 등의 문구 현수막을 민심 반영의 ‘정책성 현수막’으로 교체키로 했다고 10월19일 발표했다. 그러나 길거리 현수막은 혐오 문구를 빼고 사랑 문구만 담는다 해도 모두 철거해야 한다. 한 개 라도 길거리엔 걸지 말아야 한다. 거리마다 다닥다닥 내걸린 현수막들은 신호등을 가리고 시야를 막아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더 나아가 거리 현수막은 깔끔한 대한민국을 지저분한 후진국으로 퇴색시킨다. 국민의힘은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은 비방•혐오•모욕 문구뿐 아니리 현수막 그 자체임을 직시, 모든 현수막을 치워야 한다. 깔끔한 도시 환경을 위해서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서 세계 13위에 속하는 경제대국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NP)도 작년 기준 3만3000달러로 선진국 대열에 섰다. 주요 도시들은 70년 전 북한의 6.25 남침 폐허에서 벗어나 높은 빌딩 숲과 울창한 도시공원으로 정비돼 쾌적하다. 손색없는 국제도시다. 그런데도 덕지덕지 나붙은 현수막은 선진 한국을 추잡한 후진국으로 휘감는다. 보행자들이 많이 드나드는 거리로 들어서면 영락없이 현수막들이 앞을 막아선다. 도시 미관을 해치며 답답하고 불쾌감을 줄 수밖에 없다. 6.25 직후 판자촌 집집마다 빨래를 걸어놓은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도 들게 한다. 현수막엔 관심도 없는 정당인들의 사진이나 상대 정당을 공격하는 민망스러운 문구들도 찍혀 있다. 뉴욕•파리•런던•프랑크푸르트•제네바 등 선진국 국제도시 거리에서 현수막은 찾아볼 수 없다.

그에 반해 한국 도시 거리는 가로로 길게 매달린 현수막들로 너절너절하다. 현수막 공해는 작년 12월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이 부추겼다. 이 개정법 이전엔 정당 현수막도 사전 신고와 허가를 받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개정 광고물법은 정당 현수막만은 지방자치 정부 허가 없이도 지정 게시 대엔 설치할 수 있도록 풀어주었다. 정당 이외의 다른 현수막은 걸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 결과 정당 독점의 정치 현수막 난립을 자초했다. 올 추석 전 서울 마포구의 한 지역 100m 구간에 나붙은 정치인 현수막은 무려 22개나 되었다. 현수막 내용으로선 내년 총선을 앞둔 예비출마자들의 소개, 정당인들의 추석 인사, 상대편 비방공격, 윤석열 대통령 헐뜯기 등으로 채워졌다. 한국엔 문화•예술은 없고 서로 헐뜯는 정치만 있는 것 같다.

인천시는 지자체 조례를 개정해 현수막 공해를 줄이고자 했다. 새로 개정된 조례에 의하면, ‘현수막은 안전한 통행과 깨끗한 거리 조성을 위해 지정 게시 대에 게시해야 한다’고 제한했다. 새 조례에 의거 인천 공무원들은 9월27일 신호등 기둥과 폐쇄회로(CC) TV 지지대에 달려있던 정당 현수막을 철거했다. 시민들은 “속이 다 후련하다”고 크게 반겼다. 하지만 ‘정책성 현수막’도 현수막인 만큼 비방과 혐오감 유발 현수막과 똑 같이 도시경관을 해치며 불쾌감을 유발한다. 정책성 현수막도 너절하게 펄럭인다는 데서 여느 현수막과 다르지 않다. 정당의 현수막은 정강정책 홍보와 소통을 위해 요구된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으로서 수많은 전자와 언론매체들을 통해 유권자들과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나라 망친다며 정당 현수막엔 흥미도 없다. 소통과 대화를 중시하는 선진국들은 길거리 현수막 없이도 소통 정치를 잘해 간다.

우리나라 현수막은 1인당 GNP 3만3000달러의 경제 선진국을 가난했던 80달러 후진국으로 되돌린다. 현수막은 20세기 후진국의 퇴물이다. 13위 경제대국이고 인터넷 강국이며 국제도시화 한 21세기 한국은 너절한 현수막이 필요치 않다. 현수막 거리 설치 전면 금지법을 법제화해야 한다. 모든 국민들이 “속이 다 후련하다”고 반길 게 분명하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