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빈대 소동이다. 정부는 빈대정부합동대책본부까지 차렸다. 잘못 보면 빈대정부로 읽힐 수도 있겠다 싶어 웃음이 나온다. 어쨌거나 감염병을 옮기지는 않는다니 다행이지만, 피를 빨린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영문명이 침대벌레(bedbug)’인 것을 보면 침대생활을 주로 하는 나라에 많아 보이지만, 그냥 잠자리주변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 같다. ‘빈대르완다어 ‘birindura(to roll along)’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동글납작한 게 뒤집히면서도 계속 사람을 따라다니는 해충을 의미한다는데, 맞는 말인지 알 수 없다. 빈대도 다 먹고 살자고 그러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진짜 빈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사람 빈대들이 사방에 널렸다.

대한민국 정치인을 첫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국민 혈세에 빈대 붙어서,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한 세비를 받으면서도 연간 15천만 원 한도 내에서 후원금까지 챙긴다. 빈대가 피 좀 빤다고 사람이 말라죽진 않는다. 하지만 정치인이 혈세를 축내면 가난한 국민이 죽어 나간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을 질타하던 정치인들이, 정작 남아도는 자기 집 팔아서 어려운 국민에게 줬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정치인들이 자기 재산 내놓고 복지 확대하자는 얘기도 들어본 적 없다. 게다가 멀쩡한 국회의사당을 두고 무려 35천억 원을 들여 세종의사당을 짓겠다고 하고,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 위에 천문학적 혈세를 투입해 공항을 짓겠다고 한다. 남의 피는 마음껏 빨면서, 정작 자기 피는 아까워 방탄복을 껴입는 정치인들을 빈대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어디 그뿐인가. 매달 1500만원씩 평생 혈세로 연금을 받으면서도 개 밥값과 치료비 안 준다며, 자신이 키우던 개까지 버린 사람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빈대일까.

은행은 어떤가. 기업과 가계는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에 짓눌려 아우성인데, ‘이익이 많이 났다며 동네방네 자랑한다. 금년 3분기에 5대 은행이 거둔 이자 이익이 10조원이고, 누적 이자이익이 3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대출금리는 득달같이 올리고, 예금금리는 천천히 올리거나 재빨리 내리며 봉이 김선달 뺨치는 수법으로 공돈을 챙긴다. 넘치는 돈으로 임직원 1인당 평균 1억원이 넘는 연봉에, 300~400% 성과급에, 3억원이 넘는 희망퇴직금 등등 그야말로 돈을 물 쓰듯 하고 있다. 힘든 국민에게 수혈(輸血)’을 해줘야 할 은행이 도리어 국민을 상대로 흡혈(吸血)’이나 하고 앉았으니 국민이 피를 토하는 것은 당연하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지만 빈대도 낯짝이 있다. 그런데 사람에게 낯짝이 없어서야 쓰겠는가. 이러다 은행 이름을 전부 빈대은행으로 바꾸라고 하지 않을까. 은행들은 IMF 관리체제 당시에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어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란 게 있다.

팬덤(Fandom)을 조장하고 거기에 기생하는 자들은 또 어떠한가. 자신들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 대중을 우민화(愚民化)해 편을 가르고, 그것을 양념이라 부추기고 권장하는 자들이 제정신인가. 맹목적 추종자들이 이성을 잃고 스스로 개딸이나 개아들이니 하며 스스로 개자식노릇을 자처하면 뜯어말리는 것이 정상적 정치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고 즐기며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고, 자신의 추악한 얼룩을 가리는 도구로 이용한다면, 누가 진짜 빈대이고 누가 빈대에게 피 빨리는 피해자인가. 자신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추종자들의 피를 빠는 팬덤 빈대를 더 이상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경제적 이유와 상관없는 자발적 비()출산은 어떻게 볼 것인가. 만약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충분한 돈을 모아두고 노후에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가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럼 는 누가 키우나. 자동차는 누가 만들고, 도로는 누가 닦고, 식량은 누가 생산하며, 집은 누가 짓나. 쓰레기는 누가 치우고, 오물은 누가 처리하며, 물은 누가 공급하나. 결혼한 부모가 낳고 힘들게 기른 자식들이 독박을 쓰고, 제 부모도 모자라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노인들도 부양해야 한다면 누가 봐도 공평하지 못하다. 빈대도 자기가 먹을 피는 자기가 빨지, 다른 빈대에게 부탁하지 않는다.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당연히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공동체에 대한 예의도 반드시 필요하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빈대보다 못한 자들이 적지 않다. 자기 집 빈대 소탕하자며 30만원씩 들여 집안을 청소하는 정성이라면, 우리가 공동체의 빈대를 잡는 일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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