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열리는 구걸 장터의 진면목(眞面目)에 대해 알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우리 국회법 제54조 제1항은 국가 예산안을 국회가 심의·확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예산 편성권은 기획재정부에 있지만, 그 예산안을 심사해 적절성을 따지고 확정하는 주체는 국회다. 국회는 오로지 국가라는 큰 틀에서 적절하고 효율적인 예산 배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한 제한사항도 만들어져 있다. 국회법 제57조는 국회는 정부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費目)을 신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심의·확정은 하되, 한계를 정해놓은 것이다. 그래야 국회의 마구잡이식 증액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회가 필요한 증액(增額)을 하려면 그만큼 감액(減額)을 먼저 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필요한 예산은 삭감되고, 필요도 없거나 시급성도 없는 사업들이 어거지로 반영되는 일이 흔하다. 제대로 된 국회라면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꼼꼼히 살펴서 감액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다. 증액은 필요성을 꼼꼼히 검증해 그야말로 최소치로 해야만 한다. 재정적자도 막고 건전재정을 이루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국회가 역할을 제대로 하면 국회의원이 ()’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원들은 예산철만 되면 오히려 ()’ 노릇을 자처한다.

실제로 매년 예산철이 되면 여의도에는 구걸(求乞) 장터가 펼쳐진다.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자기 지역구예산 더 달라며 구걸하러 다닌다. 이들을 구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예산편성권을 가진 기획재정부와, 예산안 최종 심사권을 가진 국회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 위원들이다. 국회는 국민의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감시하고 감독하는 기관이며, 정부의 방만 경영을 감시하고 씀씀이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건 국가재정법과 국회법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너도나도 자기 지역구예산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 예산 구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더 웃기는 건 이런 구걸을 잘해 혈세를 더 많이 탕진하게 만드는 사람이 오히려 지역구민들로부터 능력자로 대우받는다. 언론도 이렇게 구걸에 능한 자일수록 일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평가한다. 그들이 소위 따왔다고 주장하는 예산 과실, 실은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갈 돈이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라는 사실은 말해주지 않는다. 정치인과 언론이 이런 진실에 눈감고, 예산확보를 자신들의 실적으로 홍보하면서도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상하다.

게다가 예산을 분배하는 과정은 불투명하고 억지스럽다. 이런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예산안 심사(나눠 먹기) 시스템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참으로 한탄스럽다. 어차피 나눠 먹는 거 내 편, 내 지역이 한 푼이라도 더 갖도록 하는 게 능력이라고 한다면, 폭증하는 국가부채, 국민 조세부담 증가를 비판하면 안 된다. 나라가 망하는 길로 나아가는 데는, 항상 그 뒤에서 부채질하는 내로남불무책임이라는 흉기들이 존재한다.

정부수립 이후 70년간 쌓인 국가채무(확정부채)가 약 600조 원이었는데,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무려 400조 원 이상 추가로 늘어났다. 한마디로 국민(특히 미래세대)이 부담해야 할 조세부담을 고작 5년 만에 400조 원 폭증시켰다는 말이다. 2022년말기준 국가부채(확정부채+미확정부채)2,3262,000억 원에 이른다. 포퓰리즘에 중독된 문재인 정권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무지막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법안을 마구잡이로 발의하고, 시급성도 효율성도 없는 사업들에 예산을 탕진하도록 노력한 국회의원들에게 과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전체 국가예산 중 꼭 필요한 예산이 50%,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예산이 30%, 절대 쓰지 말아야 하는 예산이 20%”라는 말도 있다. 우리 국민, 언론이 먼저 인식의 틀을 깨부수고 제대로 된 눈을 가져야 한다.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한 푼이라도 더 깎아 국민 부담을 줄이려는 정치인을 우대해야 한다. 자기 지역구 예산 많이 따왔다고 자랑하는 자들이 바로 국가채무, 국가부채를 증가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게 건강한 감시자(국회, 언론)들이 가져야 할 너무도 평범한 상식(常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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