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김상곤 혁신위 성공 이유는?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뉴시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기로에 선 모양새다. 혁신위는 출범 초기 톡톡 튀는 행보로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지만, 친윤(친윤석열)·중진 의원들을 향한 ‘희생’ 요구가 난관에 봉착하자 급속도로 동력을 상실했다. 심지어 혁신위 '조기 종료론'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그간 정치권의 숫한 혁신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용두사미식 결말을 맺을 것이란 전망이 파다하다. 

기로에 선 與 인요한 혁신위, 野 김은경 혁신위 전철 밟나 

정당의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는 통상 선거 패배 혹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임시적인 기구다. 차이점은 당 지도부의 유지 여부다. 당 지도부가 유지될 경우 혁신위가 구성되지만, 당 지도부가 붕괴될 경우 비대위가 출범한다.

지난해 20대 대선 이후 여·야는 비대위만 총 4번을 구성할 만큼 혼란스러운 시기가 지속됐다. 그 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화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체제가 출범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올 한 해 여·야는 모두 22대 총선을 치를 당 지도부 체제가 확립된 만큼, 당의 위기 상황 속에서 비대위보다는 혁신위를 통한 타개책을 선택했다.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가 내건 기치는 '윤리정당' 재건이다. 올해 상반기 민주당은 불체포특권 남용·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김남국 무소속 의원 코인 사건으로 인해 도덕성 회복이 제1의 쇄신 의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김은경 혁신위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출범 50일 만에 조기 종료했다. 

실패의 원인은 동력 부족이다. 김은경 혁신위는 민주당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불체포특권 포기와 꼼수탈당 방지책을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혁신안에 대한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불체포특권 포기는 '정당한 영장청구'라는 단서가 붙은 꼼수로 종결됐고, 꼼수탈당 방지가 제안된 시점에서도 꼼수탈당 당사자들이 민주당에 복당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 사이 윤리정당 재건을 목표로 한 혁신위는 초선의원 학력 저하 발언과 노인 비하 발언 등으로 인해 스스로 권위를 상실했다. 아울러 혁신위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비명계(비이재명계) 이상민 민주당 의원을 향한 날선 반언을 이어가 '친명계(친이재명계) 친위대'라는 비판도 받았다. 실제로 혁신위는 활동 말기에는 ‘대의원제 개편’이라는 계파 간 이해관계가 얽힌 화두를 던져 극심한 당내 반발에 직면했다. 

통상 혁신위는 계파 갈등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구다. 당대표가 임명권을 가진 혁신위의 특성상 당 지도부는 쇄신 대상에서 벗어난 성역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혁신위의 인적 쇄신 요구는 곧 반대 계파의 '차도살인' 우려를 키우는 셈이다.

김은경 혁신위는 민주당의 문제점 중 한 축인 강성 팬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가운데 친명계 혁신위란 시선에 대해서도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미 계파 간 무게 추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쇄신을 단행하기란 무리가 있던 셈이다. 

현재 인요한 혁신위도 용산이란 성역 아래 쇄신을 추진한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푸른 눈의 한국인' 인 위원장이 키를 쥔 국민의힘 혁신위는 출범 초기부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실랑이를 이어가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인요한 혁신위는 주목도와 별개로 혁신의 진척은 더딘 상황이다. 통합을 주제로 내건 1호 혁신안인 대사면의 경우, 당사자인 이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의 반발에 부딪혔다. 방점은 2호 혁신안인 '희생' 요구에 대한 당내 반발이다.

앞서 인 위원장은 친윤·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를 종용했으나, 당사자들은 공개적인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이에 혁신위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침묵이 지속될 경우 조기 종료까지 염두에 둔 상황이다. 

'희생' 대상자가 대거 포진된 경북(TK)·경남(PK) 지역의 현역의원 물갈이는 보수정당의 클리셰다. 하지만 근래 대통령실·내각 출신 인사들의 출마 예정지 역시 TK·PK가 다수 거론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혁신위의 희생 요구는 곧 대통령실 출마자들을 위한 공간 창출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앞서 인 위원장은 지난 15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 측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소신껏 끝까지 해달라. 우리 당에 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해달라'는 신호가 왔다"고 밝혔다. 반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에서 알아서 하시는 것”이라며 반박한 바 있다. 

친윤 혁신위란 평가는 곧 인 위원장이 자처한 부분도 있는 셈이다. 문제는 성역이 존재하는 혁신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인요한 혁신위가 구성된 까닭은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대패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자당의 귀책사유로 인해 열린 보궐선거를 두고 무공천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끝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의 공천을 결정했다. 이에 정치권은 김 전 구청장의 출마를 두고 대통령실의 의중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결국 정부·여당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은 당·정 관계 재수립이란 평가가 중론이다. 이와 관련 인 위원장은 지난 2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나라님이다. 당대표는 거의 그다음으로 중요할 것이다. 그 사람들 머리 위에 올라가서 이래라저래라 상투를 잡으라는 건가"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文·朴 '혁신' 성공 사례, 김상곤·홍준표 혁신위

(왼쪽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시스]
(왼쪽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시스]

여·야의 대표적인 혁신위 성공 사례는 2015년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상곤 혁신위와 2005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홍준표 혁신위가 거론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인 김상곤 혁신위의 대표적인 성과는 '선출직 공직자평가위원회'의 현역의원 평가를 통한 하위 20% 공천 배제와 총선 경선 선거인단 100% 일반 시민으로 구성 등이다. 아울러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인 홍준표 혁신위의 대표적인 성과는 대선 1년 6개월 전 당권·대권 분리와 공직선거 후보 공천 시 일반 국민 의사 50% 반영 등이 꼽힌다. 

성공한 혁신위는 대체로 정당의 혁신 의지가 강했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김상곤 혁신위가 출범한 당시 민주당은 17대 대선·18대 총선·19대 총선·18대 대선 4연패에 이어 2014년·2015년 재보궐선거마저 패배하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홍준표 혁신위가 출범한 한나라당 역시 15대 대선과 16대 대선에서 내리 패배하며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도 나온 상황이었다.

이렇다 보니 당시 당대표인 문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혁신위가 제안한 혁신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당내 대권 경쟁자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혁신 방향을 두고 이견을 보였다. 문 전 대통령은 김상곤 혁신위의 혁신안을 두고 "일점일획도 손댈 수 없다"며 의지를 내비쳤다. 반면 안 의원은 혁신위는 실패했다고 지적하며 20대 총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혁신 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했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혁신전대 개최 거부 의사를 밝혔고, 안 의원은 새정연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승적 차원에서 손해를 감수한 사례다. 당시 한나라당은 박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손학규 전 의원의 대권 삼파전이 펼쳐졌다. 이 중 당권을 장악한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당대표를 역임한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역풍 뒤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선방하며 입지를 다졌다. 

당시 홍준표 혁신위는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원과 국민 참여 비율을 50 대 50으로 정하는 혁신안(전당대회 20%·당원 선거인단 30%·국민 선거인단 30%·여론조사 20%)을 제출한다. 하지만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무성 전 대표는 국민선거인단에 책임·일반 당원을 포함시키는 수정안을 주장했다. 김 전 대표의 수정안에 따르면 당원과 국민 참여 비율은 80 대 20으로 조정된다. 당권을 장악한 박 전 대표의 프리미엄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홍준표 혁신위의 원안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도 박 전 대통령의 결정에 "경의를 표명한다"고 화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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