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있게 해달라”... 글로벌 위기에 총수들 겹시름

삼성전자 CI [출처 : 삼성전자 홈페이지]
삼성전자 CI [출처 : 삼성전자 홈페이지]

[일요서울 ㅣ이지훈 기자] 올해 재계 총수들의 ‘사법 리스크’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면서 기업들이 겹시름을 앓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의 검찰 구형을 받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세 모녀 상속 재판을 진행 중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 소송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현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 센터장)도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 조종’ 의혹으로 검찰 송치됐다. 

-삼성·SK·LG·카카오... 내년 경영 구상 차질 
-“사법 리스크 해소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아”

지정학적 위기와 지속되는 글로벌 경기 부진 속 다가오는 내년 경영 구상을 앞둔 재계 총수로서는 재판 결과에 따라 오너 일가의 경영권과 기업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재계 안팎에서도 산업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 25-2부 (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징역 5년에 벌금 5억 원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그룹 총수를 위해 자본시장 근간을 훼손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이 회장이 최종 의사 결정 책임자인 만큼 실질적인 이익을 귀속했다”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부회장이던 시절 경영권을 승계하고 삼성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 등으로 2020년9월 재판에 넘겨졌다. 
3년 2개월간 진행된 1심 재판이 마무리되면서 2024년 1월 26일에 예정된 판결에 귀추가 주목된다. 1심 선고에 따라 완전한 경영 복귀 청신호가 켜질 수도, 사법리스크(법적인 문제와 관련된 위험성을 가리키는 용어)가 지속될 수도 있다.

-8년째 ‘사법 리스크’... 현안에 어려움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8년째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번 재판만 해도 매주 1~2차례씩 3년2개월 동안 94번 출석했다. 이 기간 동안 글로벌 공급망 재편, 후발주자의 거센 추격, 조직 혁신 등 현안에 어려움을 겪었다. 17일 결심공판 이후 최후진술에서 “글로벌 초기업과 친환경, 지배구조 선진화 경영, 소액주주 존중,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착시켜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다”며 “초일류 기업,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SK CI [출처 : SK홈페이지]
SK CI [출처 : SK홈페이지]

이 회장과의 ‘사법 리스크’과는 다른 성격을 띠는 사안이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해외 출장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9일 열린 이혼소송 항소심 첫 변론기일에서 노 관장은 언론을 통해 “30여 년간의 결혼 생활이 이렇게 막을 내려 참담하다”고 밝힌 바 있다.  

최 회장은 12일 소송대리인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노 관장과의 혼인 관계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완전히 파탄이 나 있었고, 십수 년 동안 형식적으로만 부부였을 뿐 서로 불신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남남으로 지내왔다”고 반론했다.

이어 최 회장은 “재산분할 재판에서 유리한 결론을 얻기 위해 일방적인 입장을 언론에 이야기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 당황스럽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로 1억 원, 재산 분할로 현금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불복해 항소했다.

‘2030 부산 엑스포’ 홍보 및 유치를 위해 계속 해외에 머무는 최 회장에게 이번 항소심과 관련된 여론전은 상당한 부담이다. 이혼 소송이다 보니 오너 일가의 사생활이 낱낱이 폭로되는 등 그룹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LG CI [출처 : LG 홈페이지]
LG CI [출처 : LG 홈페이지]

LG의 경우 올해 초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하자며 소송을 낸 세 모녀에게 경영 참여 의도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16일 열린 LG가의 상속 소송 재판에서 공개된 녹취록에는 “아빠(故 구본무 선대 회장)의 유지와 상관없이 분할 합의는 리셋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의 발언과, “다시 지분을 좀 받고 싶다.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받고 싶다”라는 김영식 여사의 말이 담겼다.

그동안 경영 활동이 전무했던 세 모녀 측이 경영권 참여를 이유로 기존 합의를 깨고 상속 재산을 다시 나누자고 소송을 제기한 정황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산의 ㈜LG 지분 11.28%는 구광모 회장 8.76%, 구연경 대표 2.01%, 구연수 씨 0.51%로 나뉘어 상속됐다. LG는 재산 분할을 빌미로 경영권을 흔들려는 시도로 판단해 강경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카카오 경영 쇄신위해 안간힘

카카오 CI [출처 : 카카오 홈페이지]
카카오 CI [출처 : 카카오 홈페이지]

카카오는 올해 2월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를 두고 하이브와 경합을 벌이는 와중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보다 높게 설정할 목적으로 시세조종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법인 등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으며, 지난 15일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센터장도 검찰에 넘겨졌다. 카카오는 사법 리스크 해소하기 위해 경영쇄신위원회를 설치하고 쇄신을 외쳤지만, 김 센터장의 검찰 송치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여기에 당시 사모펀드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함께 SM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도 이를 금융 당국에 보고하지 않는 등의 '대량 보유 보고의무(5%룰)'를 어긴 혐의도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176조는 상장증권 매매를 유인하기 위해 매매가 성황을 이루는 것처럼 착각을 주거나 시세를 변동시키는 매매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카카오 경영진들이 대거 검찰에 넘겨지면서 카카오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이어가게 됐지만, 불구속 송치라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게 됐다. 만약 김 센터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구속됐다면, 현재 추진 중인 경영 쇄신 정책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 법인 문제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카카오가 법원에서 시세조종 혐의로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게 되면 인터넷은행 특례법에 따라 카카오뱅크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은행법에 따르면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지분 10%를 초과 보유하기 위해서는 최근 5년간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만약 이번 시세조종 혐의로 카카오가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게 될 경우, 카카오뱅크의 지분을 10%만 남기고 강제 매각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재판 결과에 따라 총수의 경영 활동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총수들이 내년 사업 계획을 치열하게 구상해야 하는 와중에 ‘사법 리스크’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