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지난 1127일 당무감사 결과 하위권에 속하는 당협위원장 46명을 12월 중 만들어질 공천관리위원회에 보고하기로 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컷오프(공천 배제) 비율이 22.5%라고 한다. 컷오프(cut-off)는 말뚝 머리부를 소정의 높이로 잘라 가지런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데, 일정 기준 이하는 공천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46명에 포함되지 않은 현역의원들 가운데서도 당협 여론조사 결과 정당 지지도에 비해 개인의 지지도가 현격히 낮은 경우 '문제가 있다'고 공관위에 권고하기로 했다. 여기서 현격히가 어느 정도 비율을 말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 밖에도 언론 등에 노출된 부정적 보도 등에 대한 보고도 할 모양이다. 한마디로, 잘라낼 명단을 인위적으로 만든다는 것인데, 감사내용의 공정성과 투명성,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아서 당사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구에서의 활동, 평판, 인지도 및 지지도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당무감사, 국회의원의 실질적 자질과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 성과가 우선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평가여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당무감사 결과만으로 부실 당협을 고르고 공천배제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대신해 헌법과 국회법이 명령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할 국회의원의 자질과 역량을 평가하기보다, 당원 관리 등 지역관리를 우선하는 것은 수준 낮고 적절치 않은 평가방식이다.

우리 헌법과 국회법이 명령하는 국회의원의 임무는 입법, 예결산 심사, 국정감사 및 조사 등 행정부 감시 등이다. 국회의원의 자질을 평가하려면 이들 항목을 가장 우선해서 평가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지역구에서 당원모집을 얼마나 했는지, 지역민원을 얼마나 해결해줬는지, 민생과 상관없는 정쟁(政爭)에 몰두해서 높인 인지도 따위를 가지고 하위 성적자를 걸러낸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제대로 된 공당(公黨)이라면 이런 방식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굳이 지역구 관리와 국회 업무의 경중을 따진다면, 당연히 헌법과 국회법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는 국회 업무가 우선이다. 우리 국회가 지역에 후원회사무소만 두고 지역구 정당사무소 설치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당은 보다 중요한 국회업무 성과에 대한 평가보다 당무감사를 우선한다. 굳이 컷오프를 하려면 당무(黨務)가 아니라, 의정활동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평가의 우선순위가 거꾸로 처박히니 정당이나 국회가 늘 이 모양 이 꼴인 셈이다. 본말이 전도(顚倒)됐다는 의미다.

제대로 된 공당이라면 당무감사가 아니라, ‘업무감사(의정활동 평가)’로 진퇴(進退)를 결정짓는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 국민을 위해 좋은 입법을 많이 하고 훌륭한 정책을 많이 개발한 사람, 제 지역구가 아니라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예산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심사한 사람, 정부 편이 아니라 국민 편을 들어 국정을 제대로 감시한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아 공천받는 그런 정당이 되어야 나라도 바로 설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극단적으로 한번 비교해보자.

AB라는 국회의원이 있다. A의원은 지역구 행사참석 등 지역관리를 열심히 하고, 정쟁(政爭)에 몰두하며 방송과 언론에도 자주 나가 높은 인기와 인지도를 확보했다. 국가재정의 효율적 사용보다는 자기 지역구를 위한 예산확보에 더 열을 올려 지역주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B의원은 지역관리보다는 양질의 입법, 예결산 심사, 정책개발, 국정 감시 등 국회의원 본연의 의회 활동에 충실했다. 자극적 소재를 따라다니는 우리 언론의 특성상 언론노출 빈도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어떤 정당은 당선 가능성을 높게 따지고, 어떤 정당은 국회의 역할에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러니 서로 선호하는 인물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 의석이 곧 전부라고 생각하는 정당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바른 정치는 요원하다는 점을 거듭 지적할 수밖에 없다. 곁가지로 본질을 흐리는 후진적 인재충원 방식을 폐기하는 것이 진정 나라를 위한 일일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 국회를 거친 말싸움과 조롱, 막무가내식 상대당 비난에 능해 소위 존재감 있는의원으로 평가받는 자들의 비극적 놀이터로 방치할 것인가. 정당을 바꾸고 국회를 바꾸는 길은,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에 걸맞는 인재를 보다 많이 국회로 보내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역구 국회의원을 모두 없애고 모든 국회의원을 비례대표로만 선출하는 제도적 수술을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미국처럼 양원제(兩院制)를 도입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