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정국이 혼란스럽다. 엑스포 유치에 난리법석을 떨던 정부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잠시라도 용산이 조용해서 다행이다. 그렇지만 총선을 앞둔 여의도 정가는 좌충우돌, 티격태격 적과 동지의 구분조차 모호하게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사투의 이유는 간단하다. 내년 410일로 예정된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함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고꾸라뜨려야 한다. 피아 구별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일단 누구도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 원시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선제공격이 최선의 답이다.

국민의힘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자신을 다가오는 총선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추천하는 희대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여의도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투정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우세한 것 같으나, 그러한 혁신안을 발표한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절박함, 애당심이 구구절절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기현 대표는 자신이 임명한 혁신위원장의 칼끝이 자신을 향해오자 엄중히 경고를 하였으나, 이제는 쌍칼을 들고 덤벼드는 혁신위원장과 일합을 겨뤄야 할 처지에 직면하게 됐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공천관리위원장 셀프 추천에 대해,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혁신위 활동이 인 위원장이 공관위원장이 되기 위한 그런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절하는 모양새를 보여줬지만, 그것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는 지난 1023일 인요한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혁신위는 그 위원의 구성, 활동 범위, 안건과 활동 기한 등 제반 사항에 대해 전권을 가지고 자율적·독립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당대표의 체면을 구긴 것은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대증요법에 익숙한 여의도에 쌍칼을 든 집도의가 나타났으니 당분간 국민의힘 내의 힘겨루기에 오감을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은 보다 복잡하다. 이재명 대표의 재판 리스크가 상수인 가운데, 계륵으로 전락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유지를 둘러싼 이재명 대표와 혁신파 간의 대립, 비명계의 사활을 건 공천 투쟁, 이재명 대표를 절대지존으로 신격화한 간신배들의 처절한 충성 경쟁, 조국, 송영길, 추미애 등 이재명 대표의 통제권 밖에 있는 정치인들, 그리고 대안은 있다며 이재명 대표에 대해 정공법으로 호되게 꾸짖는 이낙연 전 대표까지,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깨진 항아리와 다를 바 없다.

특히 호남을 기반으로 한 이낙연 전 대표의 등장은 더불어민주당 분당의 시그널이다. 그는 이재명 대표의 재판 리스크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당장 일주일에 몇 번씩 법원에 가는데 이런 상태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란 말은 당연히 함 직하다고 말하며, 당내 민주주의가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비명계에 구심점이 없다며 자신의 반대 세력에 대해 위협적으로 당권을 행사하여 당을 장악해 왔던 이재명 대표에게 처음으로 닥친 당내위기다. 물론 이재명 대표와 그의 측근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힘으로 응징하는 전략으로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은 유효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전략이 분당까지 막지는 못할 것이다.

이낙연이라는 구심점이 있고,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이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대의명분이 있고, 당내에서 부당하게 억압받고 있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당연히 신당으로 가는 것이 맞다. 어느 정도까지 세력을 키울 수 있을지는 그들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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