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 국제적 위상 제고 필요… 세계에 알릴 한국미술 관련 영어 서적 시급”
“우리 문화재 진위 판별할 과학적 데이터베이스 많지 않아… 데이터 확장 필요”

방병선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방병선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일요서울ㅣ장휘경 기자] 10·20대 청소년들은 장래 직업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지만, 자신의 진로 설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확신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일요서울이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를 만나 그 직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알아봄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주고 진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에는 ‘고고미술사학자’를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로 방병선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병선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한국·중국·일본 도자사를 24년째 가르치며 도자기 감정은 물론 여러 도자에 관한 책을 집필하는 이 시대 최고의 한국 도자사 전문학자다.

방 교수가 대학에 입학한 때는 한국 정치사상 격동기인 1979년으로, 대통령 시해와 다음 해 1980년 광주 의거 등으로 약 1년간 대학에 갈 수 없었다. 당시 방 교수는 서울대 공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공학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학교에 갈 수 없던 터라, 성당 주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만 매진했다. 그때 그는 자신에게 남을 가르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교수가 되고 싶었다.

전반적으로 문학이나 종교,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도자기 전문가로서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된 것은 그의 선친이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계신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사실 처음에는 도자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공대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대대로 도자기를 만들어 가문의 이름을 날리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혼과 군 제대 후 선친이 계신 이천으로 내려가 같이 작업하기로 낙향을 결심했다.

그러나 막상 부자간이 같이 일하는 게 쉽지 않았고 또 도자기를 만들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에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선친의 지인이신 당시 김원룡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님이 도자기를 만드는 게 어려우면, 도자사를 공부하면 어떻겠냐고 권고하셨다. 이후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해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미술사 특히 도자사 공부는 생각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그를 지도하신 선생님들도 계속 공부할 것을 권유하자 박사까지 도전하게 됐다. 학위를 마친 후 고려대학교 강사를 거쳐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됐다.

- 세계인의 K컬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더욱 위상을 높일 방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 것을 많이 알리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알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은 우리 역사와 미술, 문화재의 역사와 형식, 독특한 양식 등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외국인들이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세계적인 언어, 즉 영어를 통해서 우리에 대한 것들을 선전하고, 책도 발간해서 다양한 컨텐츠를 그 안에 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외국에 나가서 보면 한국미술, 한국 문화재에 대한 영어 소개 해설 혹은 문화재 안에 담긴 역사적 설명 등에 대한 책자나 도록 등이 너무 없어요. 결론적으로 외국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한국미술 관련 영어 서적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전문번역가 등 인력 양성이 필요하고 많은 사람에게 외국 강연이나 문화재 관련 제작 시범을 보여줄 기회를 좀 더 제공하는 것이 시급한 사항인 것 같아요.

-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및 전문위원을 역임하시기도 했는데, 한국미술품이나 한국도자기 등을 감정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하는 핵심사항은 무엇인가요.

▲한국미술이나 한국도자기에 국한하는 것보다 전 세계 모든 미술품을 감정할 때 꼭 필요한 사항인데요. 감정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눈으로 보거나, 표면을 만져 보고, 형태나 디자인을 중심으로 하는 안목 감정이 있고요. 두 번째는 과학의 힘을 빌려서 하는 게 있어요. 예를 들면, 우리가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한 후 피를 뽑고 여러 가지 엑스레이를 찍거나 CT를 찍어서 자기 내부에 대한 여러 가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잖아요. 그와 같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그런 식으로 먼저 과학 감정을 많이 하거든요. 미술품에 대한 여러 가지 과학적 데이터를 먼저 배경에 두고, 다음에 양식을 비교하고 역사적 배경을 보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과학 감정의 전문가와 데이터베이스가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이에요. 즉, 문화재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가 적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좀 더 유의해서 기본 데이터베이스를 확충해야 하고 감정하는 사람도 엑스레이나 CT 그리고 DNA나 화학 성분 분석을 보고 정확히 이야기할 전문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원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부와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었는데, 전과해 짧은 기간 만에 우리나라 최고의 도자기 전문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됐습니다. 이렇게 획기적으로 유명해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과찬이고요. 생각해보면 공대에서 배운 기계공학과 미술사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는 없지만 몇 가지 브릿지 역할을 하는 힌트는 얻은 게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공대 학부 시절에,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 범종 등이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 있을까에 대해 음향공학을 가르치셨던 고(故)염영하 교수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소리가 골고루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범종 주조시 두께를 조절하기 위해 문양 배치를 했는데, 이게 공학에서 말하는 스트레스(stress)와 스트레인(strain) 이론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후 교수가 되어 미술사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때 얻은 지식을 응용해서 나름대로 살을 붙인 후 얘기했더니, 굉장히 효과가 좋은 거예요.

그리고 제가 경기도 이천에서 약 15년 동안 도자기제작 과정을 체험했는데, 그 경험이 토대가 돼 고려 비색청자와 조선 청화백자 등의 아름다움에 대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 가르칠 수 있게 됐어요. 최근 한국도자제작기술사(2023년도 세종도서 학술부분 선정)는 그런 경험들이 토대가 된 저술입니다.

또한, 제가 선친 덕분에 외국어 DNA가 발달해서 그런지, 외국에서 강연하든 외국인 학자들을 만나든 별로 두렵지가 않아요. 그래서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지식이나 지혜 등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적었던 게 오늘날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 우리나라 도자기는 같은 도자기래도 중국 도자기나 일본 도자기와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세 나라 도자기의 특징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도자기 하면 영어로 차이나(China)라고 할 정도로, 중국은 도자기 원조 국가입니다. 1세기 한나라 때부터 전 세계 최초로 청자를 제작한 국가답게 종류도 많고 양식도 다양하며 기술의 정교함은 전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리고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청자, 백자, 청화백자, 오채와 분채자기 등을 다양하게 수출해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수출하는 국가의 양식까지 자기네 도자기에 집어넣어서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대량 생산 능력에서 전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삼국시대 토기부터 고유의 디자인을 끊임없이 만들어냈습니다. 고려시대 12세기에는 중국 최고 청자인 여요에 버금가는 비색청자를 만들어낼 만큼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르게 됩니다. 꾸준히 실험과 노력을 반복해서 우리 스타일을 창조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중국에서는 별로 유행하지 않았던 상감청자를 우리 식으로 크게 유행시키고, 그릇의 형태도 고려 스타일로 굉장히 빨리 변화시킴으로써 오늘날까지 극찬을 받고 있어요. 조선시대에는 중국과 더 차별화한 우리 식의 그릇을 많이 제작했죠. 분청사기나 백자도 중국 백자와 다르게 문양이나 색상, 기형에서 조선 고유의 것을 창출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이 특징이고 차이점 같아요.

끝으로 일본의 경우는 제일 늦게 자기를 만든 나라입니다. 17세기 초까지는 중국으로부터 매년 어마어마한 양의 도자기를 수입해서 국내 소비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별로 자기네 나라에서 백자나 청자를 만들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러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중국과 조선 도공들의 기술과 노동력으로 비로소 자기네 나름의 백자를 제작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상당히 짧은 시간에 일본 고유의 디자인 양식들의 도자기를 유럽으로 수출하고 지금은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겨누는 도자기 대국이 됐습니다.

일본 자기와 우리 도자기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화려한 색상이에요. 조선 도자기에 수수한 느낌의 미니멀리즘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면, 일본은 유럽 인상파 화가가 반했듯이 너무나 강렬한 색상의 도자기가 특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우리나라 문화재는 세계 속에서 어느 정도의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나요. 또한, 그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우리 것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을까는 상대적으로 우열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 문화재의 특성이 다른 나라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한, 문화재의 가치를 평가할 때 가격, 소위 시가(時價)라는 게 그 문화재에 관심 있는 사람만이 나름대로 가치평가를 하고, 사회경제적 분위기에 따라 변동이 심합니다. 따라서 사실 절대평가도 어렵지만, 상대평가하기는 더 곤란합니다.

전 세계 문화재와 마찬가지로 우리 것도 충분히 나름대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겁니다. 다만, 그걸 충분히 알려서 더욱 가치를 높여, 세계인이 찾게끔 하는 노력은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의 국력이나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도를 키워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 고고미술사학자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이고, 반대로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사항은 무엇인가요.

▲먼저 어려움은, 제자들이 졸업 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취직하면 거의 5년 10년이 지나도 연봉이 다른 업종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높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점이 가장 어려움이자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보람인 점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후배나 제자들도 비록 경제적인 혜택은 적지만 좋아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면서 같은 길을 걸을 때죠. 그리고 제자들이 어쨌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취직하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됐을 때, 또 제가 나름대로 여러 책을 썼습니다만 그런 게 나올 때마다 제자들과 함께 모였을 때 그 어떤 흐뭇함이 있습니다.

- 고고미술사학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청사진, 희망 사항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이야기하는 유물의 설명과 사진의 특징을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영어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년쯤에는 집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마침 학생 중에 한국어와 영어를 매우 잘하는 미국인 제자와 그림에 소질이 있는 제자가 있는데요. 영어와 한국어, 이해하기 쉬운 삽화, 이렇게 3축을 중심으로 한국도자사 영어책을 낼 계획입니다. 이외에는 해외 강연 또한 활발하게 진행할 생각이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고고미술사학자를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박물관에 가면 너무 좋아. 온종일 있어도 나는 끄떡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미술사학에 도전해 보라고 권합니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취업을 해도 처음 5년, 10년은 정말 고생 많이 합니다. 그러나 박물관 큐레이터만 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단계를 넘어서면 대기업 과장에서 부장 사이 연봉 정도는 받을 수도 있어요. 또 요즘에는 옥션이나 여러 가지 사업체를 운영하는 후배들도 있고요. 찾아보면 다양한 길이 있으니까 정말 자신이 미술, 문화재, 미술사 아니면 고고학 등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면 한번 인생을 걸어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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