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行’ 하태경의 험지 출마 대의, ‘자기정치’ 꼬리표에 퇴색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11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종로 출마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11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종로 출마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국민의힘의 ‘험지 출마 1호’ 하태경 의원이 최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 종로구 총선 출마를 선언하자 여권 내 파장이 일고 있다. 경복궁‧청와대가 위치한 종로는 우리나라의 역사‧정치 중심지로 불리며 윤보선‧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이에 선거철이면 정치권은 상징성이 큰 ‘정치 1번지’ 종로를 전략적 요충지로 지목하곤 한다. 특히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에게 종로는 전략공천 0순위로 꼽히는 지역구 중 하나다. 최근 여권에선 그런 종로에 ‘해운대 3선’ 하 의원이 돌연 출사표를 낸 배경을 주목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험지 출마 불씨를 당길 ‘용단’이냐 고도의 정치 셈법에 따른 전략적 행보냐를 두고 여론이 크게 갈리면서다. 일각에선 하 의원이 당초 보수 험지인 서울로 백의종군하겠다던 대의가 이번 종로 출마 선언으로 바랬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국민의힘의 험지 출마론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 의원은 지난 10월 국민의힘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당 안팎에서 중진 험진 출마 등 혁신 요구가 들끓자, 자신의 지역구를 내려놓고 서울에서 출마하겠다고 공언했다. 당 지도부 등 영남권 중진들에게서 험지 출마 기류가 전혀 읽히지 않는 와중에 나온 선언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에 당시 당 안팎에선 그의 ‘용단’을 추켜세우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당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부터 그의 험지 출마 결단에 “하 의원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서울 쪽에서 ‘당에서 지정하는 곳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호평했다.

“굳이 종로를?” 河 백의종군 선언, 도마 위에 

그러나 김 대표의 이러한 해석은 하 의원의 종로 출마 선언으로 크게 빗나갔다. 하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로 출마로 우리 당 수도권 승리의 견인차가 되겠다”며 “종로는 우리 당이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곳이다. 수도권 총선 승리의 제1조건이 바로 종로 사수”라고 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부산 3선 국회의원이 서울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우리 국민의힘이 수도권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라며 “국민의힘은 영남 지지에만 머물지 말고 수도권으로 그 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기자회견 직후 이어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종로 출마와 관련해 당 지도부나 종로 현역인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과 사전 교감 및 양해가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다만 당 지도부와 최 의원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김기현 대표를 비롯해 최고위 핵심 멤버들은 기자회견 당일(11월27일)까지도 (하 의원의) 종로 출마 의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해들은 바 없었다”라며 “당연히 사전 협의된 바도 없다. 종로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선거구인데, 공관위(공천관리위원회)도 꾸려지지 않은 시점에 하 의원의 기자회견에 동의했을리 없지 않나”라고 선을 그었다. 기자회견 당일 취재진과 질의응답 등을 통해 지도부 핵심 라인과 사전 교감을 이뤘다고 밝힌 하 의원의 주장과 전면 배치되는 반응이다.

또 다른 당 핵심 관계자는 “지금 공천과 관련해 당 지도부 차원에서 전혀 얘기된 바도 없는데 (하 의원의) 종로 출마를 승인한다는 게 있을 법한 일인가”라며 “종로 공천은 타 지역구에 비해 전략성 분석이나 선거 예측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하는 곳이다. 번갯불에 콩 볶듯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하 의원과의 사전 교감설을 전면 부인했다.    

최 의원도 하 의원의 이러한 주장에 당혹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제가 항의하거나 또는 말리거나 이런 발언을 안 한 것을 ‘양해했다’고 표현을 했다”라며 “그게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뭐 이런 뜻인데 그걸 본인이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서 워딩하는 거는 조금 불편하다”고 선을 그었다.

“脫해운대가 곧 험지 출마” VS “‘종로=험지’ 등식 성립 불가”

이런 가운데 하 의원의 종로 출마 결정이 국민의힘에 적잖은 여파를 불러오고 있다.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당 쇄신안으로 제안한 중진 험지 출마론이 화두에 오른 상황에서, 당내 중진 중 가장 먼저 백의종군을 자처한 하 의원의 ‘진정성’에 의문부호가 달리면서다.

한켠에서는 하 의원이 최근 한동훈 법무장관이나 원희룡 국토장관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종로를 택해 자신의 정치 체급을 높이려는 시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엄존한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하 의원의 종로 출사표에 대해 “지도부와 손발을 맞춘 퍼포먼스라고 보기 힘들다”라며 “무엇보다 종로는 (지역구 현역인) 최재형 의원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곳인 데다, 서울 강북‧강서 라인 등과 비교하면 험지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스윙 보터 성격이 강하다”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종로는 지난해 보궐선거로 입성한 최재형 의원의 지역구로, 험지로 분류되는 서울 지역구 중에서는 보수정당이 그나마 해볼 만 하다는 평이 나오는 곳이다. 이렇다 보니 현재 국민의힘 안팎에선 종로 전략공천 카드를 놓고 인물론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다.

한동훈‧원희룡 장관 등 스타급 국무위원 차출설도 주요 대안으로 손꼽힌다. 이들 장관 중 누구라도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종로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면 보수진영에서 대권주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일종의 기대심리가 반영된 현상으로 풀이된다.   

더군다나 같은 당 ‘0.5선’ 최재형 의원이 버티고 있는 종로를 겨냥했다는 점에서도 하 의원을 향한 당내 시선이 대체로 곱지 않다. 최 의원은 지난해 3월 보궐선거로 여의도에 중도 입성한 만큼, 종로에서 활동한 기간이 의원 임기(4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역구 민심이 최 의원에게 문호를 열고 있는 시점에 하 의원의 출마 선언은 도의적으로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것이 내부 중평이다. 

국민의힘의 한 수도권 의원은 “지역구 정치라는 것이 (초선에 그치는 등) 단명하게 되면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결과적으로 폐를 끼치게 된다”라며 “하 의원의 종로 출마는 최 의원이 종로에서 날개를 펴기도 전에 꺾어버리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짚었다.

반면 하 의원의 종로 출마를 긍정적으로 보는 당내 여론도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종로가 중요한 게 아니고, 무려 3선을 지낸 부산 해운대를 떠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 의원의 출마 의사를 곡해할 이유가 없다”라며 “해운대는 보수 강세가 확실한 지역구라, 공천만 받으면 사실상 4선 확정인데 종로면 어떤가. 험지 출마라고 봐야 한다”고 하 의원을 지지했다. 

한편 일각에선 하 의원의 종로 출마 선언으로 빚어진 잡음에 당내 험지 출마 기류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구 보수정당 출신 한 전직 의원은 “하 의원의 백의종군 진정성과 무관하게 이번 일이 험지 출마 기류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험지 출마 1호 사례가 이렇듯 혹평 일색이라면 어떤 중진이 과감히 험지 출마에 나서겠나”라며 “하 의원의 선택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기왕 첫 발을 내디뎠는데 민주당 현역과 붙는 등 반박 불가의 험지를 택했다면 적어도 명분은 챙겼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하 의원이 향후 출마 지역구를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도 부연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