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8월23일 임명한 인요한 혁신위원회 위원장이 당내 합심이 절실한 때 분열과 반발을 빚어냈다. 인 위원장은 당내 지도부가 받아들이기 버거운 총선 공천 문제를 들고 나와 내부 분열은 물론 국민의힘이 혁신안을 거부하는 수구당으로 몰리게 했다. 김 대표는 인 연세대 의대교수를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혁신위가 “전권을 가지고 자율적 독립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진정한 쇄신과 변화”를 주문하였다.

인 위원장은 김 대표의 “쇄신과 변화”강조에 화답하듯이 “와이프하고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 그는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의 스타는 총선 때 서울에 왔으면 한다.”며 “계백 장군 같은 모습을 보고 싶다”고도했다. 그밖에 국민의힘 중진들과 친윤(친윤석열) 의원들에게도 내년 4월10일 총선에 출마하지 말거나 수도권 험지에 출마할 것도 권고했다. 혁신위는 4개 혁신안을 제시했다. 1) 대통령실 참모 등 전략 공전 배제, 2) 비례대표 당선권에 청년 50% 할당, 3) 친윤과 당 지도부 험지 출마, 4) 이준석 전 당 대표 및 홍준표 대구시장 등에 내려진 징계 철회 등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홍 징계 철회안만 의결했고 나머지 안들에 대해선 공천관련 사안이라면서 외면했다. 공천관련 사안들은 12월 발족될 공천관리위원회에 넘기게 된다.  

인 위원장이 중진들에게 험지로 출마하라는 건 여러 해 동안 가꿔놓은 텃밭을 버리고 낯선 데로 뛰어들어 계백 장군처럼 전사하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인 위원장의 당 중신 험지 출마와 출마 금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여기에 인 위원장은 혁신위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혁신위 대변인은 김 대표의 거취까지 거론했다. 혁신위 두 사람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군림했다. 여기에 김기현 대표는 “일부 혁신위의 급발진으로 당 리더십을 흔들거나 기강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혁신위가 당 대표 거취문제까지 들고 나온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려는 것이고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빼내려는 걸 연상케 했다. 

국민의 힘과 혁신위가 삐걱거리게 된 책임은 김 대표와 인 위원장 모두에게 있다. 김 대표의 “전권” 위임 발언은 경솔했다. 인 위원장은 김 대표가 “전권”을 맡긴다고 한 말을 과신한 나머지 공천위가 맡아야 할 공천문제를 먼저 들고 나섰다. 김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전권”을 장담해 줌으로써 인 위원장으로 하여금 공천문제도 “전권”에 속한 걸로 믿게 한 탓이다. 

한편 인 위원장은 혁신위를 공천위로 착각했다. 하지만 혁신위는 공천문제에 대해선 원칙만 제시하고 당 공청 위에 맡겼어야 했다. 국회의원 세비 삭감, 의원 특권 폐기, 의원 보좌진 수 대폭 축소, 의원의 회의불참 무노동무임금 원칙 적용 등 시급한 혁신 대상들은 많다. 하지만 인 위원장은 내달 열릴 공천위가 맡을 일을 먼저 들고 나와 당 지도부와 충돌했다. 인 위원장이 TK•PK•당내 중진들에게 험지로 출마하라는 권고는 내년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게 절대다수 의석을 다시 빼앗길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의 어깃장은 서로 상대편을 오판한 데서 비롯되었다. 김기현은 인요한이 공천 문제를 최전면에 내세우리라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인요한은 정치판의 김기현을 평생 의사로 지낸 자기 같은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애당초 김 대표는 상처만 내는 혁신위 같은 건 꾸리지 말았어야 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쇄신한다며 앞세운 혁신위나 비상대책위는 잡음만 냈다는 데서 그렇다. 지난 7월에도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노인에겐 1인 1표 자격이 없다고 말해 민주당에 상처만 냈음을 잊어선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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