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 속 울며 겨자 먹기식 출마 홍보 
20년 전 盧 "뜻 있는 젊은이들의 떳떳한 정치 입문 길 열어줘야"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22대 총선을 앞두고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출마 홍보와 선거자금 확보가 동시에 가능한 선거철의 대목으로 불린다. 특히 정치신인들의 경우 출판기념회를 제외한 선거 준비는 불가능한 정도다. 이미 현역의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출판기념회는 유일한 동아줄인 셈이다. 

통상 출판기념회는 '깜깜이' 돈잔치라는 비판을 받는다. 출판기념회에서 오가는 금품은 현행법상 정치자금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모금액의 한도와 공개 의무가 없다. 이렇다 보니 책값을 빌미로 거액의 돈봉투가 오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울러 공직선거법상 출판기념회와 관련한 규제는 선거일 90일 전 개최 금지가 유일하다. 사실상 합법적이면서도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 창구인 셈이다. 

나아가 거물급 정치인들의 축사와 지지자 결집을 통해 세 과시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사람과 돈이 모이는 출판기념회를 향한 열망이 식을 수 없는 이유다. 이에 정치권은 12월 1일 기준으로 40일 남은 출판기념회의 특수를 누리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다. 

특히 정치신인들의 경우, 출판기념회를 제외한 선거 준비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파주갑 출마를 준비 중인 조일출 박사는 지난 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정치신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출구"라며 "정치 신인들은 현역의원들처럼 현수막을 걸거나 당원명부를 활용할 수도 없는 만큼, 지역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신인은 현역의원을 상대로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경쟁을 펼쳐야 한다. 현역의원의 경우 ▲현수막 게첨 ▲의정보고회 개최 ▲후원금 모금 ▲당원명부 접근권 등이 가능한 만큼 지역위원회를 기반으로 상시적인 홍보 활동을 펼칠 수 있다. 반면 정치신인들은 지역 내 1인 시위나 SNS 활동을 제외하면 출판기념회가 유일한 선거 이벤트인 셈이다.

문제는 출판기념회조차도 현역의원이 유리한 구조라는 점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현역의원의 출판기념회는 지지자들은 물론 지역 정치 관계자, 기업 관계자,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방문해 북새통을 이룬다. 사진이라도 함께 찍기 위해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렇다 보니 출판기념회를 통해 억대 단위의 후원금을 모집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실제로 뇌물·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검찰의 자택 압수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현금 3억 원과 관련 "출판 기념회에서 모금한 후원금"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반면 민주당 한 원외 출마자는 지난달 2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치신인들은 일단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식의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한다"며 "대체로 정치신인의 출판기념회 방문자는 현역의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정말 썰렁한 출판기념회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다 보니 어떤 분들은 '책은 안 사도 좋으니 일단 참석이라도 해달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며 "출판료와 대관료를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적자 장사를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비판은 받을지언정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 수단인 출판기념회의 이점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역의원과 정치신인의 출판기념회 차이점은 대관 장소에서도 나타난다. 현역의원은 국회 의원회관과 국회 박물관을 무료로 대관할 수 있다. 반면 정치신인은 비교적 금액이 저렴한 지역 내 공공기관 대관을 선호한다. 하지만 공공기관 대관은 녹록지 않은 경우가 많아 대체로 값비싼 예식장과 연수원을 대관한다. 

아울러 정치신인의 출판기념회는 거물 정치인의 섭외 여부가 흥망을 가른다는 말도 나온다. 어떤 '특별 게스트'가 참석하는지에 따라 그 정치인의 경쟁력을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난 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같은 당 의원의 지역구에 도전장을 낸 경우에는 출판기념회를 훼방 놓는 경우도 있다"며 "이미 섭외를 마친 인사들에게 연락해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이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당 한 의원은 지난 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계산이 서는 시기다"며 "출판기념회 성패 여부를 고려할 정도라면 출마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정치신인과 현역의원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점은 ①현수막 설치와 ②상시 후원금 모집 허용 등이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의 정책·현안과 관련한 현수막의 경우 무제한 게첨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상은 현역의원들의 사전 선거운동의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체로 정당 현수막은 현역의원의 지역구 예산 확보를 홍보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반면 정치신인들은 예비후보자 등록 전까지는 현수막 게시가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정당 현수막은 당대표와 지역위원장만이 게시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현역의원의 특권이자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악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월경 선거법 개정 의견을 통해 "누구든지 선거운동에 이르지 않는 현수막 등의 시설물, 인쇄물을 이용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허용"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아울러 정치신인의 경우 평년에는 후원금을 모금할 수 없으며,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친 선거 당해 1억 5천만 원 한도로 모금이 가능하다. 반면 현역의원은 평년에도 1억 5천만 원 한도로 모금이 가능하며, 선거 당해의 경우 3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해결책은 지구당 부활이다. 기초단위 정당조직인 지구당은 지난 2004년 불법 정치자금의 온상으로 지적돼 폐지된 바 있다. 그 뒤 현역의원과 원외 정치인 간 격차가 커지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구당의 부활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21대 국회에서도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을 통해 원외 정치인들의 지역 사무소 개소 및 후원회 지정을 허용하는 방안이 제안된 바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년 전에 정치신인의 고달픔을 얘기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 2일 임시국회 시정 연설에서 "뜻 있는 젊은이들이 친구나 친지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떳떳하게 정치에 입문하고 출발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한다"며 "정치하는 사람에게 '뭐 먹고 사느냐'고 물었을 때, 확실한 부업을 가진 경우 말고는 답변하기가 난감하다. 그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국민들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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