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인사는 검찰총장과 협의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의견을 듣는 것이다.” 20191230,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한 말이다. 그때는 청와대가 개입해 대통령의 친구인 송철호를 울산시장에 당선시켰다는, 소위 울산시장 선거개입사건에 대한 윤석열 검찰의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던 시점이었기에, 추미애의 저 말이 뭘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뻔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 박찬호 검사가 제주도로, 신봉수 검사가 평택으로 가는 등 선거개입 수사팀은 말 그대로 공중분해됐다. 조국 수사를 했던 한동훈 검사도 이때 부산으로 좌천됐는데, 훗날 언론에선 이를 ‘1.8 검찰 대학살로 불렀다. 하지만 이 와중에 좋은 자리로 영전한 이도 있었는데, 검찰의 꽃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이성윤이 대표적인 예였다. 문재인의 대학 후배라는 걸 빼면 별다른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는 그를 요직에 임명한 이유는, 그런 이들일수록 위에서 시키는대로 말을 잘 듣기 때문이다.

과연 이성윤은 문정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취임 일성으로 그가 내뱉은 건 다름아닌 검찰권 절제’, 그러니까 선거개입 사건 같은 정권비리는 수사하지 말라는 뜻이다.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이성윤은 몸소 실천까지 했다. 검사의 기소에는 중앙지검장의 결재가 필요했지만, 선거개입 수사팀이 백원우 민정비서관과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송철호 울산시장 등을 기소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을 때, 결재를 미루다 그냥 퇴근해 버린 것이다. 그 뒤에도 이성윤은 기소에 반대하며 결재를 안 해줬는데, 그 바람에 선거개입 피의자에 대한 기소는 윤석열 총장의 지휘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최강욱 기소 때도 똑같이 반복됐다.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던 최강욱은 조국 아들에게 허위로 인턴확인서를 발급해 준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이성윤은 수사팀 보고를 받은 뒤 무려 일주일간이나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 보다 못한 송경호 검사가 그와 만나 담판을 지어 봤지만, 그는 결재해주는 대신 또다시 퇴근해 버린다. 덩달아 신이 난 최강욱은 검찰의 소환조사에 불응했고, ‘조작수사운운하며 검찰을 비난해 댔다. 결국 윤총장은, 이번에도 결재를 건너뛰고 직접 지휘에 의해 최강욱을 기소해 버린다.

2023918, 최강욱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며 의원직을 잃는다. 조국 아들에게 발급해준 인턴확인서가 허위임이 입증된 셈이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1129, 서울중앙지법은 송철호와 황운하에게 각각 징역 3, 백원우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비록 1심이긴 하지만 선거개입 수사팀의 의견이 거의 대부분 받아들여진 터라, 남은 재판에서도 피고인들은 유죄 판결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제 이성윤에게 물어야 한다. 3년 전 이들을 기소할 때 왜 그렇게 결사반대 했느냐고.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의 잘못은 이것만이 아니다. 소위 채널A 사건은 김어준과 MBC, 그리고 최강욱 등이 담합해 한동훈 검사장과 윤석열 총장을 날려버리려고 했던 공작, 하지만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추미애의 말과는 달리 아무리 털어도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수사팀은 한동훈을 기소조차 못한 채 일단락을 짓는다. 민주당이 입만 열면 떠드는 한동훈 비밀번호타령이 나온 것도 자신들의 공작실패를 덮기 위한 술수였는데, 머쓱해진 수사팀이 한동훈의 무혐의를 건의했지만, 이성윤은 6개월간 9차례나 무혐의 승인을 미뤘다. 그러니까 이성윤은 죄의 유무에 따라 수사하는 대신 정권이 물라는 것만 무는, 사냥개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이다. 다행히 정권교체가 됐고, 그는 이제 법무연수원에서 그간의 죗값을 치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는 반성하는 대신 <꽃은 무죄다>라는 해괴한 책을 내며 차기 총선에 출마하겠단다. 꽃은 죄가 없다는 말은 맞지만, 이성윤은 꽃이 아닌데? 그를 사냥개로 부렸던 문재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성윤은 지금 검사들의 세상에서 고초를 겪고 있다.” 문재인 씨, ‘고초란 한동훈처럼 양심에 따라 수사했는데 좌천됐을 때 쓰는 말입니다. 이성윤의 좌천은요, 고초가 아니라 사필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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