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필승론 굴복 안했으면 정의와 용기’ 386, 역사와 정치 퇴물 전락 안했을까
- 국민 과반수 이상 신당창당 지지않고 당원 70~80% 신당 지지안해

지금 우리 정치의 천덕꾸러기, 역사발전의 반동이 된 586 정치세력이 과거 '민주화 운동'의 주최에서 변절, 부패하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필자는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이 본격적으로 분열되기 시작한 제13대 대통령선거 전후 야권 분열로 내몰은 '4자필승론'이라고 생각한다.

'4자필승론' 이후 대의와 명분을 생명으로 하는 정치는 협작과 정략이 되었고, 정의와 민주주의는 한낱 가십거리 수사로 전락했으며 주권자 국민보다 보스를 신봉하는 야합정치, 계보·보스정치가 본격화됐다. 198711월 중순. 6.10항쟁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6.29선언으로 개헌논의와 국민투표를 거쳐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6공화국이 열리자 국민들은 열광했다.

해방 이래 최초로 여야 합의로, 그것도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개헌안이 확정되자 너나할 것 없이 흥분으로 들떴다. 국민 손으로 직접 민주주의 혁명을 쟁취했다는 자긍심이 넘쳐났다. 1213대 대선에서 국민 손으로 문민 대통령, 문민정권을 출범시켜 6월 항쟁 민주주의 무혈혁명을 완성할 것으로 확신했다.

6.29 선언 직후만 해도 민주진영의 지도자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대중(DJ) 고문, 두 거목은 앞 다퉈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며 후보단일화와 양보 의사를 거듭 밝혀 국민의 기대를 한껏 올려놓았다. 국민들은 두 지도자의 리더십과 충심에 감동에 감동이 넘쳐났다. 안 먹어도 배 부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헛배는 오래가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조금씩 출마 의욕을 내비쳤고 각계의 후보단일화 중재노력은 번번이 무산됐다. 그럼에도 이 때까지만 해도 12월 대선에서의 야권분열과 패배는 상상도 못했다. 끝내는 합쳐지리라.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은 두 사람과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에 의한, 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민주주의 승리 아닌가. 국민들은 믿었다.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온 김영삼 총재, 김대중 선생이 절대 국민과 민주주의를 배신할리가 없다.

그러나 학교 앞 큰 길 가로수 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서 재야 운동권과 대학가에도 배신의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DJ를 지지하는 비판적 지지 세력과 무조건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는 세력이 나뉘어 할퀴기 시작했다.

그래도 국민들은 기대를 놓지 않았다. 적전 분열은 필패. 양김 모두 출마하면 군부독재 잔당 민정당 노태우 후보를 절대 이길 수 없음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잠시 두 진영의 힘겨루기라고 생각했다. 정권교체 후 갖게 될 지분을 최대한 챙기기 위한 소소한 다툼 정도로 치부했다.

재야운동권과 언론에서는 여론조사와 대선 승리가능성을 점치며 본격적으로 후보단일화를 압박했고 당선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된 YS는 여유를 부렸다. 상대적 소수파였던 DJ의 대권·당권 분리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당선 가능성 앞에 장사가 없었다. 당선은 곧 군부독재 종식, 정권교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DJ를 지지하던 재야원로들도 YS로 기울며 DJ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DJ 오랜 측근들도 '이번에는...' 양보를 조언했다. 이어 YS는 전격적으로 DJ가 요구한 '대권·당권 분리' 요구 수용 의사를 밝혔다. DJ는 난감했다. 출마포기, 사면초가에 몰린 DJ를 구한 신공 비급은 '4자 구도' '4자필승론'이었다. 4자필승론은 그야말로 YS에게 유리하고 DJ에게는 절대 불리한 '당선가능성'을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원 포인트 금낭묘계였다.

4자 필승론은 DJ의 핵심 4인방 중의 하나로 명문대 출신 한화갑 전 대표 등이 YS와의 결별과 탈당, 대권도전을 주장하며 내세운 논리다. 각 후보들이 유리한 지역을 나눠 갖고 지역연고가 약한 서울·수도권에서 승부수를 띄우면 DJ가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법이다.

이들은 국내 유권자 2,510만 명을 기준으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대구·경북(300만 명),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는 부산·경남(430만 명), 신민주공화당 김종필(JP) 후보는 충청(256만 명), 그리고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호남(334만 명) 등을 나눠 갖고 서울·경기·강원·인천·제주(1,184만 명)를 놓고 승부수를 펼치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871112. DJ'네 사람이 모두 나오면 결국 김대중이 이기는 선거가 된다'4자필승론을 믿고(?) 전격적으로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결과는 알다시피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승리였다. 예상대로 영·호남의 지역 간 분할은 맞았다. 노태우 후보는 대구·경북, YS는 부산·경남, DJ는 호남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JP 압승을 기대했던 충청도에서 노태우·YS 지지표가 많이 나왔고 강원도·제주도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이겼다. 절대 우세를 점쳤던 수도권에서도 DJ가 이겼지만 노태우 후보 간 득표 차는 불과 2%였다.

이후 민정-통일민주-평화민주-신민주공화당 4당 체제가 되어 보스·계파 중심의 강고한 체제가 구축됐다. YS-DJ, 한때는 민주화 동지였던 보스와 측근, 지지자들 간의 불신의 늪은 더욱 깊어졌고 이는 3당 합당의 원인이 되었다.

22대 총선을 4개월여 앞둔 지금 여야 모두 당내 갈등과 신당 창당으로 시끄럽다. 여권에서는 이준석 신당과 소위 태극기파, 극우 우파정당 연합이 모색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계열은 이낙연, 송영길, 조국, 금태섭, 양향자 의원 등이 신당 창당을 검토 또는 추진 중이다. 정의당과 기본소득당은 노동당, 녹색당, 진보당, 직접민주지역당연합 4개 정당과의 선거연합, 통합 창당을 검토 중이다.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는 자신의 비례신당을 "민주당 우당이 될 것"이라며 "지역구에서는 경쟁력이 있는 민주당 후보를, 비례대표 영역에서는 윤석열 퇴진당에 힘을 모아주면 서로 윈 윈 할 수 있어 200석 이상 얻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실상 온라인 당원모집에 나선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반윤연대는 안한다. 하지만 정치를 개혁하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개혁연대'는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과반수 이상이 신당창당에 관심이 없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자기 정당 출신인사 신당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 유권자 중 81%, 민주당 지지 유권자 70%가 차기 총선에서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연합뉴스·연합뉴스TV 의뢰, 메트릭스 1223일 조사)신당 창당파들은 총선에서 기반을 둔 이념 진영과 소속 정당의 승리를 도울 수 있다고 윈-윈 전략을 주장한다. 이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탓도 있지만 사실 정치 퇴출을 우려한 이들의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30여 년 전 4자필승론이나 오늘의 신당창당 모두 정치 퇴출 대상자들이 국민을 속여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려는 모략, 잔꾀에 불과하고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 몫이다.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586정치인들이 30여 년 전 어두컴컴한 여의도 한 카페에서 4자필승론에 굴복하지 않았다면 우리 정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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