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용어 포비아(phobia)는 불안 장애의 한 유형으로 예상치 못한 특정한 상황이나 활동, 대상에 대해서 공포심을 느껴 높은 강도의 두려움과 불쾌감으로 인해 그 상황을 피하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공포증인데, 이러한 공포증은 급격한 심리적 불안, 호흡곤란, 현기증, 발열, 발한, 구역질, 경련, 기절과 같은 신체적 증상으로도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자의 경우 12월이 되면 나타나는 증상으로 연말 거듭된 송년회로 알코올 분해가 벅차서 생기는 증상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유심히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생활 패턴을 점검한 결과 다른 곳에 그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증상을 나타나게 하는 원흉은 바로 여의도의 나쁜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할 일을 제때에 하지 않고 몰아서 하는 습성이 있다.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필자는 개학이 임박해서 밀린 방학 숙제를 한꺼번에 해서 선생님께 제출했던 경험이 있다. 필자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대부분 공유하는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숙제의 질은 낮았고, 무엇을 숙제로 제출했는지조차 기억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방학 숙제를 잘 해낸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상을 주는데, 그것은 차근차근 숙제를 정리해 온 성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잘하는 친구들의 몫이었다.

여의도가 분주하다. 이유는 있다. 그들이 방학 숙제를 미뤄두듯이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뤄두었기 때문이다.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 시한인 122일을 스스로 위반한 여야 원내대표는 12월 임시국회를 오는 11일 소집하여 내년도 예산안을 1220일 본회의를 소집하여 통과시키기로 잠정 결정했다고 한다.

정기국회가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다음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이들의 행위는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사실은 그들에게 정기국회 기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할 정도의 능력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능력도 안 되는 국회의원들에게 더 큰 숙제도 떨어졌다. 내년 410일 국회의원선거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을 두고 당리당략을 숨긴 채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구 적용을 해야 하니 이러한 난제는 또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거의 게리멘더링 수준의 선거구 획정안을 제출했는데, 여기에 자신들의 유불리를 적용한 선거구 획정을 요구해야 하니 그들의 머리는 이미 펑크 상태일 것이다.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여야의 수 싸움에 여의도 포비아 증상은 피크를 맞이할 것이다. 나쁜 정치인은 국민을 병들게 한다.

국회와 더불어 여의도의 한 축을 형성하는 정당들 상황은 시계 제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 손으로는 이낙연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개딸들에게 당의 명운을 쥐어주는 당헌을 통과시켰다. 홍영표 의원이 김은경 혁신위의 혁신안 1호는 불체포특권 포기였는데 이재명 대표부터 그렇게 했느냐. 왜 그건 관철하지 않느냐며 저항했지만, 볼멘소리에 그치고 말았다. 이제 비명계는 무릎을 꿇을지 광야로 나갈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래봐야 청명에 죽느냐! 한식에 죽느냐!’ 일 테지만.

국민의힘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발버둥 쳐봤지만 스스로 혁신위를 접는 선택을 하였다. 오는 11일 마지막 혁신안을 올리고 백서를 만들고 활동을 끝낸다고 한다. 여의도의 백서는 누구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선례가 있다. 종이 낭비, 시간 낭비, 인력 낭비로 인요한 혁신위는 끝을 맺는다.

이대로라면 우리 국민의 여의도 포비아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내년 410일을 나쁜 정치인을 박멸할 기회로 살릴 수 있다면 그날이 여의도 포비아 종식의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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