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소득격차 조사 ‘상위 10%, 하위 10% 21배 차이’
경실련 “상속세 폐지, 수혜 대상 당연 재벌 아닌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재계의 숙원인 ‘상속세 폐지’, 이를 밀어붙이던 집권 여당에 더해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폐지 기조에 힘을 실었다. 상속세 완화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상속세 폐지 논쟁이 불거진 가운데 “현 정부의 ‘부자 감세’가 논란인데, 또 소수 자산가를 위한 혜택 확대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입장이다. 한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OECD 국가 중 상속세가 가장 높은 나라는 우리나라”라며 실질적으로 상속세 폐지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정치권에서 상속세 폐지 주장이 잇따라 제기된다.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상속세 완화에 반대해 온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상속세 완화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민주당 의원들과 세무사회·중소기업중앙회 주최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상속세 최대 주주 할증 제도를 폐지하면 기업가 정신이 고양되고 기업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스웨덴처럼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소득세로 전환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자”라고 말했다. 자본소득세는 자산을 상속할 때 바로 과세하는 것이 아닌, 상속 자산을 처분할 때 양도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제도다.

황희 민주당 의원도 덧붙였다. “최대 60% 상속세 때문에 불법·편법 상속이 매번 문제가 되고, 중소기업의 경우 승계를 포기하고 폐업을 선택하기도 한다”라면서 상속세 완화 또는 일부 폐지를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경실련 “부자 감세, 어처구니없는 발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5일 “상속세 폐지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몇몇 의원이 정부·여당의 상속세 완화 기조에 동참하면서다”라며 “이들은 재계의 숙원 과제인 최대주주 할증평가 과세 폐지, 유산취득세 전환, 상속세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현 정부의 ‘부자 감세’가 논란인 가운데 오히려 소수 자산가만을 위한 혜택을 늘리겠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여당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상속세 폐지 의견이 제기되자 강한 반발에 나선 것이다.

경실련은 “상속세는 부의 재분배와 평등원칙 실현을 목적으로 1950년에 도입됐다”라며 “그러나 법 제정 이후 반세기 이상 지났지만, 현재 경제 불평등은 더욱 악화됐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실제 통계청의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격차는 21배, 자산 격차는 13배로 집계됐다. 자료에 따른 언론사들의 분석에 따르면 21배 차이가 날 당시(2021년, 연평균) 상위 10%의 소득은 1억9042만 원, 하위 10%의 소득은 897만 원이었다. 특히 부동산 격차는 더욱 심각했다. 2022년 상위 10%(15억5475만 원)와 하위 10%(1억2407만 원)의 주택 자산 격차는 직전년도 대비 감소했지만, 40배를 초과했다. 

이를 두고 경실련은 “양극화 문제가 악화일로인데 부의 재분배 기능을 오히려 약화하자는 주장은 개탄스럽다”라며 “일각에서는 전체 세수에서 2%에 불과한 상속·증여세의 제도적 효과가 미비하다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속세를 폐지하면 기업 투자가 늘어 소득재분배 효과가 클 것이라는 주장이지만, 이는 제도의 팔다리를 잘라놓고 뛰지 못한다며 나무라는 격이나 마찬가지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추경호 부총리, “상속세, 한 번 건드릴 때 됐다”

일각에서는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 한국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황승연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지난달 22일 국제아카데미 강연에서 “기업 승계 시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바꾸면 한국 시장에 대한 저평가가 해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입을 열었다. 추 부총리는 “상속세 체제를 한 번 건드릴 때가 됐다”라며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속세가 가장 높은 국가. 38개국 중 14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OECD 상속세) 평균이 26%”라며 “전반적으로 이걸 낮춰야 하는데, 우리는 이 문제를 꺼내면 여전히 거부감이 높다. 상속세는 이중과세 등 문제가 많은데, 국민 정서 한쪽에는 부의 대물림 등에 대한 저항이 많다”라고 덧붙였다.

상속세 폐지로 인한 취약계층 수혜? “밝혀진 사실 없다”

경실련 관계자는 추 부총리 주장에 정면 반박했다. “부총리가 얘기한 OECD 대비 세율이 높다는 부분은 사실 실효세율에 대한 얘기가 빠져있다”라며 “유수의 논문들만 확인해도, 세율로만 따지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지적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실련의 입장은 상속세의 현행 체계 유지다”라며 “상속세라는 게 부의 재분배와 경제적 평등의 실현,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상속세로 인한 혜택은 취약계층에게 가는 게 이 법의 목적인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봤을 때 상속세 규제 완화의 수혜 대상은 사실상 재벌이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부는 상속세를 폐지하면 기업 투자가 늘고 소득재분배 효과가 높아져 최종적으로 취약계층에게 폐지 전보다 수혜가 간다는 주장을 한다”라며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나 밝혀진 사실이 없는 얘기다. 경제학회에서 연구된 실증 정보도 없다. 그렇다면 폐지 주장은 설득력이 없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상속세 폐지에 힘을 실으며, 다시 논쟁이 붙은 존폐 논란에 열띤 공방전이 이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극화가 심한 우리나라에서 상속세 폐지는 강한 반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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