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ㆍ효성ㆍ태광 등 "기촉법 없이 내년 더 위험하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참석한 위원들은 '워크아웃' 일몰을 오는 2026년 10월로 연장하는 내용의 기촉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뉴시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참석한 위원들은 '워크아웃' 일몰을 오는 2026년 10월로 연장하는 내용의 기촉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고금리와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영업이익이 줄면서 벌어서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 이른바 '좀비 기업'이 늘고 있다.

좀비기업은 이자보상배율이 3년간 1 미만인 기업을 뜻한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이 영업으로 번 돈과 이자 비용을 비교해 보여주는 지표로, 이 배율이 1 미만이면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이익으로 금융비용도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재계는 지난달 28일 국회 문턱을 넘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 연장 법안이 연내 통과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 이마트, 영풍 등도 기업의 3분기 누적 이자 비용이 영업이익을 웃돌아
- 시황 회복 불투명한 상황...내년 대기업 구조조정 현실화할 가능성 짙어


아주경제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롯데케미칼, 효성화학, 이마트, 영풍, 태광산업 등 기업의 3분기 누적 이자 비용이 영업이익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 부문인 롯데케미칼, 효성화학, 영풍, 태광산업 등도 3분기 누적 영업 적자를 기록했으며 이마트는 영업이익을 냈음에도 이자 비용이 8배가량 높았다.

- 회사채 발행과 금리 인상...이자 부담 증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올해 3분기 롯데케미칼의 누적 영업손실은 751억 원을 기록했다. 3분기까지 이자 비용은 2134억원으로 전년 동기(503억 원) 대비 323.93% 증가했다. 회사채 발행과 금리 인상으로 인해 이자 부담이 증가했다.

이 밖에도 ▲효성화학 영업손실 1514억원, 이자 비용 1367억원 ▲영풍 영업손실 535억 원, 이자 비용 96억 원 ▲태광 영업손실 844억 원, 이자 비용 35억 원 등으로 집계됐다.

이마트는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 385억 원을 달성했으나 이자 비용이 전년 동기(2076억원) 대비 44.65% 증가한 3003억원에 육박하면서 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 수준에 다다랐다.

건설업계도 상황은 심각하다. 건설기업 5곳 중 2곳이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분류된다. 지난달 28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건설 외부감사 기업 경영실적 및 한계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건설기업, 즉 잠재적 부실기업은 929곳으로 건설업 전체의 41.6%를 차지했다.

이 비중은 2018년 32.3%에서 4년 만에 1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한국은행 등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일 경우 '한계기업'으로 간주하는데, 이 기준에 해당하는 건설업계 한계기업은 387곳이었다.

이는 전체의 18.7%에 해당하는 규모다. 건설업계 한계기업 비중은 2020년 15.8%에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아울러 지난해 건설업계의 부채비율은 144.6%로 전년(133.5%)보다 11%포인트 넘게 올랐다.

앞서도 지난 10월 기업 경영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발표한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올해 상반기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347개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1.16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4.42 대비 3.26포인트(74%) 하락했다.

이 기간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은 149조6752억원에서 89조3208억원으로 41.7% 감소했지만 이자 비용은 33조8807억원에서 75조 694억 원으로 121.6% 증가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수는 지난해 상반기 47개에서 올해 상반기 98개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2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0 미만인 기업은 37개였다.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해 한국중부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서부발전, 지역난방공사 등과 이마트, 롯데쇼핑, 호텔롯데, 마켓 컬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조사 대상 기업 중 이자보상배율이 가장 높은 곳은 코리안리로 1810.2에 달했다. 한전KPS(666.5), 롯데정밀화학(364.6), BGF리테일(326.4), 삼성화재해상보험(313.9), 대한제강(215.1), LX세미콘(187.6), 현대엔지니어링(185.6), 에스원(171.3), KT&G(119.5) 등도 세 자릿수 이자보상배율로 사실상 무차입 경영 중이었다.

문제는 경제 상황 회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기업 구조조정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태준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금리 기조와 건설 원가 상승 영향으로 올해 건설업의 부실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건설경기의 반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내년 이후 건설업체의 전반적인 부실은 본격화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건설업계의 유동성 공급 현실화와 부실기업들에 대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전문 ·중소 건설업체들의 연쇄 부도와 흑자도산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한 생태계 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었다.
게다가 이자조차 감당하기 힘든 대기업들에 대한 투자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자는 "경기 상황이 악화일로인데 제대로 된 투자처를 찾는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게 현실이다"라고 했다.

- 경제 6단체, 기촉법 국회 통과 촉구 성명 발표

이에 따라 정부·여당과 재계는 기촉법 통과는 물론 연내 시행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 6단체에서는 지난 16일 기촉법 국회 통과 촉구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달 28일에는 개정안이 의결됐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채권자와 기업 간 자율적 구조조정 절차인 기업개선작업제도(워크아웃)의 일몰 기한이 2026년까지 연장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오후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열고 기업 '워크아웃' 일몰을 2026년 10월로 연장하는 내용의 기촉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촉법은 채권단 75% 이상이 동의하면 채무조정과 자금 지원 등이 가능하게 한 '워크아웃'을 규정한 법이다. 지난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뒤 6차례 개정을 거듭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지난달 15일 일몰 기한이 재도래했지만 법 연장에 실패한 바 있다.

[뉴시스]
[뉴시스]

개정안에 반대했던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은 워크아웃 과정에서 법원 역할 확대 등 개편 방안을 마련한다는 부대의견을 담는 조건으로 오는 2026년 10월까지 일몰 기한을 3년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기촉법 개정안이 국회 첫 문턱인 정무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만큼 이제 정무위 전체 회의와 법사위, 본회의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워크아웃 제도는 그동안 하이닉스, 현대건설 등 주요 기업 정상화 과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산업계에서는 이 제도가 연장되지 않으면 부실 징후 기업들이 줄도산할 수 있단 우려를 들어 국회에 개정안 통과를 촉구해 왔다.

당국도 기촉법 연장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내년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보고 대비에 나섰다. 특히 부동산·운수·여행업종에서 좀비기업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나 금융당국에선 '약한 고리' 업종에 대해 일주일 단위로 기업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건설·해운·유통 등 업종별로 주요 기업 부도율이 증가했는지, 주채무계열 상황이 어떤지 살펴보면서 특이 사항을 매주 정리해서 보고하고 있다"라며 "분석 결과를 정부 부처와 유관기관에 공유한다. 하반기 들어 기업 재무 실적이 안 좋아져서 긴장감을 느끼고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