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 역린, 권력자 아집과오기, 배신...측근대신 국민택해야 win-win

박근혜, 정윤회와 문고리3인방, 비서실, 최서원 보호하다 결국 탄핵
- 김대기 비서실장 유임, 윤 대통령 역린 향한 칼날 피할 기회 날려

역린(逆鱗), 용의 비늘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한비자(韓非子)에 나온 말로 용의 턱 밑 비늘을 건들면 반드시 죽는데 군주()에게도 '건들면 죽임 당하는' 역린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하가 넘지 말아야 하는 금도(禁度), 레드라인 준수를 조언하는 것이자 신적 존재인 임금(제왕무치)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임금의 역린, 가장 예민한 약점, 넘으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역린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숨기고 싶은 과거사나 재물보화일 수도 있고 사소한 말 한마디, 추억의 사진 한 장일수도 있다.

최근 회고록을 통해 나는 몰랐다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역린은 가장 아끼는 사람, 측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제기될 당시나 지금 다시 돌아봐도 탄핵을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위기를 알리는 비상등이 때때로 켜졌고 많은 조언과 고언, 충언이 있었지만 아끼는 그 누구인가를 지키기 위해 외면하거나 차단했다.

최종적으로 최순실 사태의 주인공 최서연씨가 박 전 대통령의 가장 소중한 역린으로 부각됐지만 실제로 박 전 대통령에게는 여러 명의 역린이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부터 문제가 됐던 측근은 정윤회 전 비서관이다. 한때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을 자처했던 정치인들에 따르면 당 대표 때부터 '정윤회'는 금기어였다. 유승민 의원을 비롯해 우리가 알았던 많은 최측근 의원들이 '정윤회 교체'를 건의하면 그 다음날부터 전화도 면담도 허락되지 않았다. 비서들이 막은 게 아니라 박 전 대통령 본인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당선 후 정윤회 전 비서관이 비선 실세가 된 후 박 전 대통령의 새로운 역린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들이었다.

정윤회 전 비서관이 추천한 이들은 대선 전 부터 함께해온 최측근이자 브레인으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출입은 물론 면담, 전화 모든 것이 이들을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이들의 안내가 없으면 대통령 집무실 문을 열 수 없었다니 다른 수석비서관과 장관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나. 심지어 대통령과의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장관이 청와대 비서관에게 대통령의 ''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 비서관은 다시 문고리 3인방에게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또 김기춘 비서실장과 몇몇의 정무·민정 수석비서관들을 지키려고 애썼다. 당과 여론이 이들의 교체를 주장하고 건의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복수의 정보기관이 이들의 문제점과 심각한 여론동향을 보고해도 믿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역린은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이었다. 탄핵 재판에 관여했던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적극 임하고 관련자료를 성실히 제출했으면 탄핵 판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통령은 어떻게든 최순실씨를 지키고 싶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와 위기를 측근 인사 조치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여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야당의 협력도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탄핵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국민 대신 측근을 선택했다. 정윤회를 선택하고 문고리 3인방을 선택하고 함량미달의 정무·민정수석을 선택했다. 마지막까지 최순실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달리 말하면 박 전 대통령이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정윤회씨와 3인방, 최서원씨를 내쳤으면 탄핵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국민 보다 측근 보호를 위해 발버둥쳤고 이런 모습에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결국 본인이 탄핵을 자초한 것이다.

왕과 대통령이 무치이어야 하는 이유는 진짜 무치여서가 아니다. 국정실책의 책임을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대신 떠맡아 국정을 안정시켜 국민을 지키고자 하는 최소한의 고육책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역린은 무엇일까. 건들면 죽는 역린,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장 아끼는 역린이 무엇인지 용궁(대통령실)도 알고 여의도도 알고 국민도 다 안다.

지금 그 역린을 향해 칼날이 조여오고 있다. 윤 대통령이 최소한의 사전 조치만 취했으면 오지 않았을 칼날이다. 더구나 최근 인사에서 김대기 비서실장을 유임시킴으로써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 느낌이다. 최근 여권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야당이 요구하는 특검법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왕과 대통령만 역린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도 역린이 있다. 참으로 무던하여 좀처럼 표내지 않지만 한번 건들면 반드시 끝장내는 국민의 역린은 권력자의 아집과 오기, 그리고 배신이다. 대통령 역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국민의 역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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