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1212일 발생한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소위 흥행에 성공한 모양이다. 문제는 영화를 정치공세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자들이다. 이미 단죄된 역사의 흔적을 되살려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는 소재로 악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영화에 대한 과몰입과 동조화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자들을 제외하면 공동체엔 득보다 실이 많다. 불필요한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쭉 봐온 광경이다. 소위 ‘3S’로 약칭하는 스크린, 섹스, 스포츠는 권력자들이 국민을 세뇌(洗腦)시키는 유용한 도구요 장치였다. 히틀러는 라디오를 중시했지만, 여류감독 리펜슈탈(Leni Riefenstahl)과 충성심 강한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를 통해 영화의 위력을 알아차렸다. 1933830일부터 93일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제5차 나치당 전당대회를 촬영한 1934년작 다큐멘터리 영화 <의지의 승리>는 그야말로 프로파간다(propaganda)였다. 1936년에는 베를린 올림픽에 대한 기록영화 올림피아2부작이 나치즘 찬양을 위한 선전물로 만들어졌다. 괴벨스 역시 뉴스다큐를 포함한 영화에 공을 들였다. 이로써 히틀러는 국민과 국가를 사랑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일제(日帝)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내선일치(內鮮一體)’를 내세우며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동원하기 위해 선전영화(조선보도부 작품)들을 만들었다. 특히 조선의 초대통감을 지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90년대 후반에 이미 오락을 제공하면서 일본 문화의 우월성을 알려주어야 한다. 영화가 좋다.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금방 알 수가 있다.”고 말했다. 2차 고노에 내각의 외무대신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영화는 국운을 좌우한다"고 까지 말했다. 일제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의 선전선동 도구였던 영화의 효용성을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라고 다를 바 없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영화(성인에로물), TV(컬러), 스포츠(아시안게임, 올림픽 유치) 따위를 통해 쿠데타의 기억과 흔적을 지워나갔다. 특히 사회 비판적인 영화 소재는 검열을 심하게 한 반면, 성인 에로영화의 문은 넓혔다. 그러다 보니 영화 제작사들은 주로 성인 에로영화의 제작에 열을 올려 정권의 기대(?)에 부응했다. 198226, ‘애마부인개봉 첫 날, 종로 서울극장에는 인파가 몰려 극장 유리창이 깨지고, 경찰이 출동했다고 한다.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4개월 동안 상영됐으며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3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주연배우 안소영은 애마부인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박근혜 정부 때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영화가 줄지어 제작됐다. 이들 작품은 각 투자배급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정재 주연의 <인천상륙작전>, 김무열·진구 주연의 <연평해전>이 대표적이다. 황정민 주연의 <국제시장>, 차승원, 권상우 주연의 <포화 속으로>, 김명민 주연의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북한 조선영화인동맹 중앙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박근혜 패당은 시대착오적인 반공화국 영화제작 놀음에 매달릴수록 비참한 종말의 시각만을 앞당길 것이다라며 입에 거품을 물기도 했다.

독재자 또는 권위주의 정권의 영화는 대부분 이렇게 정권과 국가의 단합, 외부를 향한 견제에 치중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프로파간다의 대상이 내부로 향한 것이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다. 실제로 북한을 미화하고 일방적 평화를 반영하며 주적 개념을 무력화시키거나, 반일을 선동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노무현을 다룬 <변호인>과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택시운전사>, 역시 노무현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광해, 왕이 된 남자>, 6월 항쟁을 그린 김윤석·하정우 주연의 <1987>,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비선실세 문제를 빗댄 영화 <게이트> 따위가 그렇다. 특히 노무현과 문재인 개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문재인입니다>까지 각각 만들어져 상영된 바 있다. 이번 <서울의 봄> 역시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다룬 것이 아니라,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좌파 진영 프로파간다의 일환이라는 것이 일부 보수진영의 의심이다.

영화는 아주 매력적이고 효율적인 프로파간다 도구이다. 단순히 활자와 음성으로 전달되는 매체와 달리 관객의 감정이입을 통한 몰입과 동조(同調)효과가 월등하다. 이념에 경도된 영화제작자가 특정 정치세력의 생각과 입장에 동조해 만든 영화는 예술이라기보다는 선전도구가 아닐까. 최근에는 유튜브를 활용한 1인 방송까지 진영의 봉사자거짓의 선동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한마디로 스크린 소음이 국민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라는 스크래치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허위를 사실인 양 가공해 선전선동에 이용하는 1인 제작자들까지 즐비한 시절이다. 한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자정(自淨) 노력과 제도적 개입, 영화인들의 각성, 픽션과 넌픽션을 구분할 줄 아는 관객의 이성적 차분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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