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측근퇴진, ‘민심달래기용’, ‘혁신경쟁용,’ ‘선거용 밑거름’ 일회성일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판에서는 죽어야 사는 사람들과 그룹들이 있다. 이른바 권력자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정치인들과 가신(家臣)그룹이다.

정치의 맛도 보지 못하고 정치판과 거리가 멀었던 윤 대통령이 혜성처럼 등판하여 대권을 잡는 과정부터 현재까지도 측근과 가신그룹들에 대한 거취 문제로 늘 시끌벅적하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1970년대 이후 ‘3시대를 이끌어 왔던 거물 정치인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로 대별되는 계보 정치가 시대를 주름잡던 때가 있었다. 동교동계, 상도동계, 청구동계 등 3이 거주하는 동네명을 붙여 계보 정치의 아성을 쌓았던 시기이다.

‘3시대뿐만 아니라 박근혜, 이명박 정권 시 친박, 친이 그리고 노무현, 문재인 정권시 친노, 친문 세력들이 대통령이나 당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늘 측근, 가신 그룹으로서 맹위를 떨치고 권력을 잡고 나선 국정을 쥐락펴락하고 당권과 공천권을 좌지우지하며 그들만의 아성을 쌓곤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국정 난맥상이 표출되면 언제나 제1의 타깃은 측근, 가신그룹에게 돌아가는 권력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곤 했다.

정치 초년생으로 정치판에 물들지 않고 계보가 있다면 검찰 내 계보나 라인이 있었을 윤 대통령도 어느새 측근정치로 골머리를 앓는 듯 보인다. 이준석 전 대표의 이른바 윤 핵관을 향한 지루할 정도의 항전과 투쟁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은 좋든 싫든 권력의 중심에서 늘 주시를 받아왔다. 불행히도(?) 윤 대통령 집권 이후 윤 핵관이나 윤 대통령의 가신그룹은 제대로 권력 맛도 보지 못한 채 이젠 읍참마속(泣斬馬謖)을 위한 청산과 퇴진의 타깃이 됐고, 총선 승리의 밑거름으로만 활용될 지경이 됐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위시한 국힘 혁신위의 거듭된 퇴진 권고에도 버티던 측근 중의 측근들이 하나둘 총선 제단앞에 바쳐져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뚝심으로 버틸 것 같던 장제원 의원을 필두로 결국 김기현대표까지 물러났다. 윤 대통령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최측근이나 윤 핵관으로 불리우길 앞다투어 나섰던 정치인들이 지금은 총선 불출마 나 험지 출마 대상이 되지 않으려 아마 몸을 한껏 낮추고 다닐 듯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와 권력층 주변엔 늘 측근이 존재해왔고 권력자에겐 어쩌면 필요불가결(必要不可缺)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대통령 자신의 정치철학과 노선 그리고 뜻을 알아서 헤아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존재인 측근, 복심, 가신 그룹은 필요악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정치사에서 국정 난맥이나 국정 실패로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떨어져 늘 희생양으로 삼아왔던 측근 정치인들의 선거를 앞둔 퇴진은 일회용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민심 달래기용’, ‘혁신 장사용,’ ‘선거 승리 기폭제등의 용도로 주로 활용돼왔을 뿐이다. 측근 정치인들은 이 같은 용도로 자신이 죽어야 하는 것에 참으로 억울할 것이다. 명색이 개국 공신인데.. 그러나 그들은 죽어야 사는 정치인들임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특히나 집권 여당, 대통령 임기가 상당한 현 정권 내에선 윤 핵관이나 대통령 측근들의 퇴진은 잠시 쉬어 갈 뿐 영원히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비록 지금은 죽지만 갈 곳도 많고 할 일도 많은 게 측근 그룹이기 때문이다. 측근 정치인들의 퇴진이 결코 크게 감동으로 와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큰 전쟁에서의 승리와 그의 헌신적 역사적 소명을 다 마친 후 인류에 감동을 준 퇴임사 중 유명한 어록을 우리는 여전히 기억한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그러나 한국 정치 현실에선 선거를 앞두고 늘 무엇인가 책임지고 사라지고 죽어가는 측근 정치인들은 아마도 측근은 결코 죽지 않고, 다만 잠시 쉴 뿐이다라는 말을 곱씹고 있지 않을까 싶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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