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하고 미워하는 일이 국민스포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사 크고 작은 일이 모두 대통령 잘못 뽑은 탓이었다. 소개팅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나와도 노무현 탓, 길 가다 흙탕물이 튀어도 노무현 탓, 집에 들어갔더니 밥이 안 차려져 있어도 노무현 탓하던 시절이었다. 노사모의 실망, 팬덤 정치의 그늘이 아니었나 짐작해 볼 뿐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30% 가까운 무당층을 확인할 수 있다. 표를 주고 싶어도 줄 곳이 없다는 사람들은 무시로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보기에 정치인들은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 자기들 이익에만 충실하다. 국가의 장래, 국민의 삶을 돌보는 데는 관심이 없다. 노무현을 욕하던 사람들의 심리 밑바닥에도 이런 정치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정치혐오는 정치와 현실에 대한 외면을 낳는다. 정치가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관심 둬봐야 얻는 것도 없으니, 표 찍으러 갈 일도 없다. 최근의 높아진 정치혐오 정서는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 참여가 최악 수준으로 떨어질 것을 예감하게 한다. 주권자의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 선거 결과, 주권자의 의지가 실리지 않은 정치가 출현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런 양상은 최근의 정치환경 변화를 좇아가는 데 급급한 정치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유튜브나 SNS가 정치와 유권자의 소통 플랫폼으로 떠오르면서 정치는 가벼워지고, 짧아지고, 격해졌다. 유튜브 시대의 정치는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 일부 강성 지지층에게 아부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 정치혐오 강도가 강해지는 악순환에 빠져 든다.

정치혐오를 낳는 혐오 정치는 우리말고는 모두 적이라고 상정한다.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지지하는 정치인에 반기를 들었다고 적으로 모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 시대의 정치는 장애인과 여성을 끊임없이 공격해 특정계층의 지지로 정치적 기반을 쌓는다. 같은 당 사람들을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으로 몰아가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노무현 시대가 낳은 팬덤 정치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혐오 정치로 전락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노사모의 열정과 눈물, 감동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오늘날 강성 지지층, 팬덤은 상대를 공격하고, 혐오를 유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한 애정보다 싫어하는 정치인에 대한 혐오에서 더 큰 즐거움을 얻는다.

최근에는 이런 혐오정치가 밖에서보다 안에서 더 강하게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이재명 대표의 극성 지지층인 개딸은 국민의힘 정치인들보다 민주당 내의 일명 수박 정치인들을 더 싫어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층도 국민의힘 내 반윤세력인 이준석같은 정치인에 대한 혐오를 더 강하게 표현한다. 혐오는 정당 정치를 작동시키는 유력한 수단이 되었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한 맹신, 다름을 적대시하는 혐오정치는 직접 민주주의라는 탈을 쓰고 더 강화되는 추세다. 정치는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명제도 낡은 것으로 치부된다. 정치의 탈을 쓴 독단과 독선 앞에서 비가 와도 내 탓, 비가 안 와도 내 탓이라는 애민사상과 책임감을 가진 정치인이 나타난대도 수박이나 되고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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