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 몇 해련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나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1934년. 고복수(高福壽) 선생이 불렀던 우리 민족의 노래 ‘타향살이’의 가사이다.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에 복속되거나 만주 지방에 흩어져 살다 대조영이 세운 발해로 흡수되었다. 당나라는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고 2만 명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또 유민들의 부흥운동을 막기 위해 20만 명에 달하는 고구려 유민들을 중국 변방으로 강제 이주시켜 황무지를 개척하게 만들고, 변방을 지키는 군졸로 삼았다.

고구려 유민들 가운데 고사계(高舍鷄)는 포로의 신분에서 당나라 변장(邊將)의 지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 아들 고선지(高仙芝 ?~755)는 20살 때 군인이 되었다. <신당서(新唐書)>에는 고선지의 용모가 수려하여 무장답지 않았다고 적혀있지만, 고선지는 영민하고 도량이 넓고 용감하여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였다.

741년, 톈산산맥 서쪽에 위치한 달해부(達奚部, 돌궐의 한 갈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고선지는 2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여 단숨에 안서부도호(安西副都護)가 되었다가, 곧 사진도지병마사(四鎭都知兵馬使)에 올랐다.

747년, 고선지는 행영절도사(行營節度使)로 임명되어 기병 1만을 이끌고 토번 정벌을 위해 출정했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넘어 힌두쿠시산맥의 동쪽까지 이르렀으며, 토번 서북단의 군사기지 연운보(連雲堡·와칸 계곡)와 파키스탄 북부의 소발률국(小勃律國)을 점령했다. 이 원정에서 서역 72개 나라의 항복을 받아냈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고도호총마행(高都護驄馬行)’에서 “안서도호 고선지 장군의 푸른 호마 이름을 날리고 홀연 장안으로 오도다. 싸움터에서는 오랫동안 당할 자 없으니 주인과 한마음이 되어 큰 공을 이루었도다.”라고 고선지와 그의 총마(驄馬, 흑백잡색의 얼룩말)를 찬양하고 있다.

750년, 고선지는 ‘제2차 원정’에 나섰다. 한반도보다 더 넓은 사마르칸트 사막을 넘어 대식국(이슬람제국)과 동맹을 맺으려는 석국(石國, 우즈베키스탄 타시켄트)을 토벌하고 국왕을 잡아 장안으로 호송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서역 각국과 이슬람 세력은 이듬해 연합군을 편성하여 비단길이 지나는 탈라스(Talas)의 대평원으로 쳐들어왔다.

751년, 고선지는 7만의 병사를 이끌고 이슬람 군대에 맞섰으나(‘제3차 원정’), 동맹으로 위장한 카를루크(Karluks·돌궐·투르크계)가 배후에서 협공하자 패배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탈라스 전투’이다.

이때부터 당나라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상실했고, 몽골군의 등장 전까지 이 땅을 밟지 못했다. 이후 고선지는 755년 현종(玄宗) 재위시에 일어난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는 부사령관으로 있다가 변영성(邊令誠)의 무고로 처형당하고 말았다. 2007년 중국 인민일보가 뽑은 ‘10대 원통한 장수’ 중 원숭환, 악비, 팽월, 단도제에 이어 고선지가 5위를 기록했다.

1937년 소련 스탈린의 강제 이주 명령에 따라 17만 명 이상의 사할린 동포들이 우즈베키스탄 지역으로 이주당해, 지금 15만 명 이상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바로 그곳에 고선지 장군의 위대한 ‘발자취’가 남아있다. 프랑스의 학자 샤반느와 영국의 탐험가 슈타인은 고선지를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과 알렉산더를 뛰어넘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천재적인 전략가”로 평가하였다.

유럽에 화약과 제지 기술, 나침반을 전파한 ‘유럽 문명의 아버지’. 실크로드의 영웅 고선지 장군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安西都護出群雄(안서도호출군웅) 안서도호 고선지는 출중한 영웅으로

亡國遺民就大功(망국유민취대공) 망한 나라 고구려의 유민으로 큰 공을 세웠네

白日操兵奇陣疊(백일조병기진첩) 한낮에는 군사를 조련해 기묘한 진법 거듭했고

黃昏飮馬遠謀窮(황혼음마원모궁) 해가 지면 말을 먹이며 깊은 병법 궁리했네

堅氷按劍誰無敵(견빙안검수무적) 굳은 빙하 칼자루에 손을 대니 아무 상대가 없고

廣漠橫戈忽疾風(광막횡과홀질풍) 넓은 사막 창 비껴들고 홀연히 질풍처럼 달렸네

常勝將軍遭難去(상승장군조난거) (서역 정복의) 상승장군 재난을 만나 죽었으나

千秋武烈不歸空(천추무열불귀공) 오랜세월 군사상의 공적 헛됨이 될 수 없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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