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길이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하면 길이 된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여당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 가능성이 높아지자 밝힌 속내다. 사실상 수락을 전제로 한 발언이다. 실제로 한 전 장관은 당에서 추대하자 바로 비대위원장직을 받았다. 그런데 첫 번째 문장은 차치하고 두 번째 문장은 눈에 걸린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하면...”이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누가 봐도 윤심이 작용하면 길이 된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준석 전 대표를 내치고 김기현 대표를 세운 것도 그렇고 대통령의 뜻이 당내 한동훈 비대위원장 여론몰이에 결정적 영향을 줬을 것이다.

대통령도 정치경험이 전무하지만 한 전 장관 역시 매한가지다. 장관으로서 여야 정치인을 대하는 것과 비대위원장으로 대하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만큼 크다. 정치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국회의원 한명씩 따져보면 대한민국에서 한 가닥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선출직과 공직의 차이만큼 클 수밖에 없다.

앞으로 조기강판을 당하지 않으려면 주의해야 할 사항은 단연 말실수다. 그동안 말싸움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젠 설화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비대위원장직을 그만둘 수가 있다. 정치는 한번 삐끗하면 추락에 끝이 없다. 비대위원장으로서 초기 언론의 주목을 받겠지만 정치경험이 한 전 장관보다 많은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의 끝을 보면 알 수 있다. 공관위원장을 달라는 것으로 혁신에 대한 진심이 퇴색됐다. 오죽하면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나무에서 떨어지면 정치인이 아니라는 말이 정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두 번째는 윤 대통령과 관계설정이다. 상명하복식 공직생활과 만인의 투쟁의 장인 여의도 생활은 다르다. 그럴려면 윤 대통령과의 차별성이 요구된다. 김건희 특검법은 첫 시험무대다. 게다가 본인이 잘해도 윤 대통령이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으면 운신의 폭이 적고 영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기현 전 대표의 당선부터 낙마까지 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권 차기대권 레이스에서 1위를 달리는 한 전 장관의 선택이 윤 정권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었느냐에 대한 지지자층의 의문에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조기등판=조기강판시 여권내 유력한 대권주자가 상처를 입고 차기 대권 무대에서 사라질 수 있다. 과거 공직자 출신 대통령 후보들 다수가 비운을 겪었다. ‘총선참패->조기레임덕->정권교체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이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한동훈 비대위 카드가 공천권 때문이 아닌 당과 국민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줘야 한다. 단순히 비대위원장->총선승리->당권.대전 도전으로 가는 권력의 사유화 수단으로 비쳐지는 것도 경계해야 할 사안이다.

마지막으로 정치는 치고 빠지는 스킬이 중요하다. 이른바 타이밍의 정치다. 한 전 장관이 스스로 권력의지가 강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비대위원장이라는 직책을 수락했으면 그나마 집권여당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총선 승리라는 것은 한 개인이 가져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총선과 대선은 질적으로 다르다. 선수는 지역에 출마하는 여야 국회의원 후보자다. 심판은 유권자이고 그 외에는 바람이다.

세상에 바람처럼 믿을 수 없는 게 있을까. 그것이 자연풍이든 민심이든 종잡을 수 없고 어떻게 흐를지 예측하기 힘든 영역이다. 그 민심의 바다에 몸을 맡긴 이상 한 전 장관은 우선적으로 공직자 코드에서 여의도 코드로 전환할 것이 요구된다. 공부하면서 천천히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이제 22대 총선은 100일 조금 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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