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북한 주요 통계지표가 발표됐다. 하루 식량 섭취량 2000Kcal 아래로 떨어진 것이 1987년 이후 처음이란다. 우리는 짐승도 배곯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 빈곤층도 밥은 굶지 않는다. 영양부족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다. 과잉섭취로 비만을 자랑하는 자가 인민의 지도자 행세를 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그가 쏘아 올리는 미사일 위협은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안녕만을 위한 것이다. 인민의 고혈을 빨아 자신만의 궁전을 짓는 나라. 그에게 예속된 주민들의 몸부림은 처참하고 가엾다.

가난한 부모가 낳는 아이, 비극의 대물림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인민의 배고픔에 눈감은 자, 그는 참수(斬首)당해야 할 악이다. 2021년기준 북한주민 1인당 단백질 공급량 55.1g. 우리나라 국민의 48% 정도란다. 지난해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143만원. 한 달에 10만 원 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김정은 정권은 날마다 미사일을 쏘아대고 핵 개발에 미쳐있다. 도둑질한 가상화폐만으로 그 많은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까?

궁핍이 심해지고 오래가면 포기의 순간에 이른다. 자포자기(自暴自棄)로 공멸을 용인하는 순간이 온다. 거기까지 가면 희망의 빛은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도 인민의 어버이라 자처하는 자는 자신과 패거리들만 배불리 먹는다. 그렇다고 우리까지 북한 주민의 굶주림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족은 양식을 나누어야 동족이다. 급할 때 나눌수록 좋다. 배고플 때의 한 그릇 밥은 배부를 때의 백 그릇 밥보다 낫다. 미루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진짜 배고픔은 공포다. 며칠 굶어 본 사람만 안다. 방탄용 가짜 단식은 예외다. 배고픔에 추위까지 더해지면 삶 자체가 혹독한 고통이다. 영혼이 강탈당하는 느낌, 그것이 배고픔이다. 가족을 굶기는 가장(家長)은 쓸모가 없다.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권(政權) 역시 존재 이유가 없다. 그런 정권을 방치하면 사실상 공범이다. 가족, 민족은 결국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스탈린 때도, 모택동 때도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단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해 수백만이 굶어 죽을 수 있는 악마의 체제. 의도된 대량학살극, 지옥도가 따로 없다. 독재자가 한순간도 용인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인류의 지혜로 만들어야 한다. 그 전에는 굶주리는 주민부터 일단 살려야 한다. 그게 한 민족이라는 우리에게 맡겨진 숙명이다. 남아돌아 창고에 쌓아둔다는 쌀을 풀어라. ‘위대(胃大)지도자가 싫다고 버텨도 주민들에게 쌀을 주고 싶다.”고 날마다 소리쳐야 한다. 그게 평화통일을 위한 희망을 파종(播種)하는 일이다.

많은 국민은 걱정한다. 북에 식량을 주면 주민들에게 가지 않는다고. 도리어 북한 군대만 살찌우는 이적(利敵)행위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모든 군인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식이다. 북한 군인들을 먹이는 것은, 결국 그 어머니 아버지의 자식을 먹이는 일이다. 못 먹고 굶주려 키가 자라지 않고 몸이 수수깡처럼 말라붙은 자기 자식을 먹이는 이에게 싫은 마음을 품을 부모는 없다. 우리가 보내 주는 밥을 먹는 군인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가 준 쌀로 밥을 해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먹이고 입히면 적개심도 무뎌진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악다구니만 남은 인간은 거칠다.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이 들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에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된다. 군에 간 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북한의 자식들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의 인질이다. 화를 피하려 칼을 든 강도도 구슬리듯, 주민들의 마음에 다가가야 평화도 온다. 문은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한다. 사람이 무서워 동굴에 숨어 으르렁거리던 짐승도, 배가 고프면 결국 다가오기 마련이다.

석공(石工)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있습니까? 석공은 큰 돌을 깨기 위해 똑같은 자리를 백 번 정도 두드릴 것입니다. 전혀 돌이 갈라질 징조가 보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백한 번째 내리치면 돌은 갑자기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맙니다. 이처럼 큰 돌을 두 조각낼 수 있었던 것은 한 번의 두들김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마지막 한 번이 있기 전까지 내리쳤던 백 번의 망치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말이다. 백번의 망치질을 우리 정부는 해봤는가. 주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핵으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듯, 최신무기로도 안보와 평화를 담보할 수 없다. 강력한 군대로 적의 위협에 대응하되, 공존을 위한 생명의 파이프라인은 열어두어야 한다. 어설픈 평화 쇼가 아니라, 진심으로 북한 주민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칼로만 싸울 수는 없다. 죽고 죽이는 전장(戰場)에서도 갈증은 달래야 한다. 생존 투쟁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기 전에, 하루속히 북한 주민이 우리를 진정한 형제요 동포로 여기도록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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