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한동훈 비대위’에 명운 걸었다...韓 대권 직행? 조기 강판? 중대 기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된 한동훈 전 법무장관 [뉴시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된 한동훈 전 법무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국민의힘이 김기현 체제의 퇴진과 동시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며 총선 대오를 갖추고 있다. 비대위원장 추대 안건을 놓고 당내 난상토론이 이어졌으나, 현 정권 들어 두 번째 리더십 부재에 처한 여당은 내년 총선 지휘관으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지목했다. 이는 총선을 불과 4개월 남겨둔 시점에 ‘정치 초년생’ 장관에게 당권을 맡길 수밖에 없는 여당의 인물난과 급박함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결국 한 전 장관은 여당의 긴급콜에 응하며 총선 승리라는 중대 과업을 짊어졌다. 차기 대권주자로 지목되는 한 전 장관에겐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다. 이번 정계 진출이 총선 결과에 따라 정치인으로서 급속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정치권 조기 강판이라는 독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의도 사정에 밝지 않은 그가 거대야당의 집중 포화, 당정관계 재편, 당 이미지 혁신, 보수진영 결집 등의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도 관건이다. ‘정치인 한동훈’이 운명의 갈림길에 선 모습이다.

집권여당이 비정치권 출신인 한동훈 전 법무장관에게 미래를 맡겼다. 국민의힘 윤재옥 임시지도부는 지난 21일 한 전 장관을 총선 사령탑인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했다. 지명 당일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한 전 장관을 두고 “가장 젊고 참신한 비대위원장이 될 것”이라며 추켜세웠다. 당 원로들도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을 명량해전을 앞둔 조선 수군에 비유하며 한 전 장관이 남은 12척을 잘 이끌어 총선대첩을 이뤄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 전 장관도 이날 오후 법무부 청사에서 이임식을 갖고 공직을 내려놓으며 여당으로 향할 채비를 마쳤다. 한 장관은 이임식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비대위원장 수락 배경에 대해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며 “용기와 헌신으로 해내겠다. 국민의힘을 이기는 정당으로 이끌어가겠다”고 공언했다. 총선 패배 여파 등 뒷일을 걱정하는 대신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성공과 총선승리에 전념하겠다는 말로 풀이된다.

윤재옥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 관련 기자회견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을 비대위원장 추천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윤재옥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 관련 기자회견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을 비대위원장 추천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국힘, 韓 비대위 ‘희망회로’ 돌리며 총선 채비 돌입

한 전 장관은 법무부를 이끌며 평소 반듯한 행실과 합리적 행정으로 참신한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아가 정쟁과 진영논리로 점철된 혼탁한 정세 속 정치권과 고위 공직에 대한 불신이 드높은 와중에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는 점을 높게 사는 시각들도 많다.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다”는 짧은 퇴임사도 그의 확고한 정치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국민의힘도 이를 ‘한동훈 비대위’ 출범의 핵심 명분으로 삼고 있다. 특정 연령이나 성별에 치우치지 않은 광범위한 인지도가 ‘영남당’과 같은 보수정당의 고질적 프레임을 탈피시킬 원동력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한 전 장관이 야당과의 대치 국면마다 보여준 화력을 근거로 진영 결집과 야당 견제를 병행할 수 있는 총선용 전천후 카드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여당 주류는 윤 대통령과 접점이 뚜렷한 한 전 장관을 ‘당정 원팀’의 가교가 돼 흩트러진 내부 전열을 빠르게 수습할 적임자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 친윤 의원은 “일부 인사들은 당정 수직화를 지적하는데, 총선에서 이기려면 당정이 긴밀하게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지 무작정 선을 긋는 게 혁신이 아니”라고 비대위 역할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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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여의도 조기 등판’에 따른 위기론도     

국민의힘은 최근 내부 총선전망 보고서를 통해 ‘서울 49개 지역구 중 6석’이라는 위기 시그널을 접했다. 이렇듯 여당에 내재된 수도권 위기설 등 총선 리스크는 총선 강남권‧비례대표 출마 등 ‘한동훈 활용법’에 대한 여권의 보수적 관점을 뒤로 물리며 한 전 장관의 여의도 진출을 앞당겼다. 그러나 ‘집권여당 총선 간판’이라는 타이틀까지 얹어 그를 최전선으로 불러들인 당정의 판단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국민의힘 비윤(비윤석열)계 등은 앞서 비대위원장 추대 안건을 놓고 내부 난상토론이 이어졌을 때도 ‘정권 2인자’ 이미지가 강한 그를 총선 사령탑으로 선임하는 것은 패착이라며 반발했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김웅 의원은 지난 15일 긴급 의총에서 한동훈 비대위에 힘이 실리자 “‘대통령 아바타’로 총선 치를 수 없다”며 극구 반발한 바 있다. 이렇듯 ‘용산 부속실’이라는 불명예 수식어를 털어내야 할 시점에 대통령 복심에게 당권을 맡기면 되려 당정관계의 종속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무감각이 검증된 바 없는 정치 신예가 보수 정체성 확립과 외연 확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부호도 달린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여의도 정치판은 극한의 교섭력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곳이다. 그간 한 장관이 내각 소임을 잘 수행했고, 촌철살인으로 민주당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는 해도 비대위원장은 확실히 다른 성질의 자리”라며 “보수 결집과 중도 진출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얼마나 잘 잡아나가느냐도 관건”이라고 짚었다. 

나아가 한 장관이 정계 데뷔와 동시에 집권당 총선을 지휘하는 것은 자칫 ‘황족 코스’를 밟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국민 정서와 괴리가 생길 수 있음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서울지검‧대검 특수통 검사→윤 정부 초대 법무장관→여당 비대위원장→차기 대권으로 이어지는 기성 정치문법에 탑승한다면 그간 한 전 장관이 쌓아올린 ‘정치적 새로움’이라는 브랜드가 크게 실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저조한 국정지지율도 한 전 장관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상 정권 심판론이 안정론을 앞지른 가운데, 한동훈 비대위가 당정을 위기의 늪에서 견인하려면 당정관계에서부터 전임 지도체제와 비교해 확실한 차별성을 가져가는 등 파격 행보에 나서야 반등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검찰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오랜 친분을 쌓아 온 그가 용산과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검사 시절부터 조직 내 ‘줄서기’ 등 구태에 염증을 느꼈던 그의 기질이 비대위에서 어떻게 발현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엄존한다.  

한 전 장관은 어느덧 여권 최대의 유력 인사로 몸집이 불었다. 실제로 지난 22일 발표된 한국여론평판연구소의 차기 여야 대권주자 선호도 양자대결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 전 장관은 지지율 45%를 얻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4%포인트 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민심 기댓값이 그 만큼 높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렇듯 한 전 장관은 폭발적인 관심 속에 집권당 구원투수로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러나 당장 김건희 특검을 앞세운 야당의 집중포화 등 넘어야 할 허들도 겹겹이다. 한 전 장관이 내년 총선을 계기로 당정의 메시아로 등극하며 여권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할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21대 총선을 집도했지만 참패하고 정치권에서 반은퇴한 황교안 전 대표의 궤적을 답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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