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익편취·상속세·주식양도세·횡재세, 연말 재계 화두로

 

정부는 '2023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내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총 4719억원(순액법 기준)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에 자녀장려금 지급 대상과 지급액 확대로 조세 지출이 5300억원 늘어날 전망이어서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감소는 대부분 자녀장려금 확대분에 기인한다.  [뉴시스]
정부는 '2023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내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총 4719억원(순액법 기준)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에 자녀장려금 지급 대상과 지급액 확대로 조세 지출이 5300억원 늘어날 전망이어서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감소는 대부분 자녀장려금 확대분에 기인한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올 한해 재계는 유난히 다사다난한 모습이다. 경제 위기론이 자주 거론됐고 오너 가족 간 다툼으로 경영권을 위협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사익편취 규제와 상속세, 주식양도세, 횡재세 등이 연말 재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거나 재계의 반대로 표류 중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재계 숙원인 상속세 폐지 논의가 한창이다.

-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 176->226개로 급증
- 59조 구멍 난 곳간마저 탈탈 터는 정부…내년 총선 때문?


세수 부족과 소득의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세금 논쟁이 치열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의 위반행위의 고발에 관한 공정위의 지침' 개정안이 답보 상태다.

이 개정안에는 사익편취 행위가 중대해 해당 기업을 고발할 때 이에 관여한 특수관계인도 원칙적으로 함께 고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공정위는 "그동안 중대한 사익편취 행위를 한 사업자를 고발하더라도 공정위의 (임의) 조사만으로는 특수관계인의 관여 정도를 명백히 입증하기 곤란해 특수관계인을 고발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중대한 사익편취 행위에 특수관계인이 관여했다면 그 관여 정도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함이 마땅하므로 이를 원칙 고발 대상으로 규정해 검찰 수사를 통해 특수관계인의 관여 정도를 명백히 밝힐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개정안에 대해 재계의 반발은 거셌다. 경제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이번 고발 지침 행정예고 안은 경제형벌을 완화하고 경제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진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면서 "우리 법체계를 관통하는 기본 원칙에 맞지 않는 공정위의 고발 지침 행정예고 안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단체들은 개정안 고발 사유가 추상적이고 불분명해 상위법인 공정거래법과 충돌한다는 취지로 부연했다. 그러자 결국 공정위도 고발 지침 개정안을 수정 보완해 다시 마련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민단체는 재계의 반대 근거가 빈약하다며 공정위가 다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4일 논평에서 "고발 지침이 특수관계인으로서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한 자로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보수적으로 해석해 특수관계인의 지시나 관여가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해 고발하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이는 공정거래법 집행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따라서 고발 지침 개정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도 공정위가 지난 17일 발표한 ‘2023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주회사 체제의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가 ‘지주 체제 밖’에서 지배하는 계열사가 353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19개는 그룹 지주회사의 지분을 보유해 사익편취 행위 발생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주회사 체계 밖 계열사 중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가 가장 많은 대기업집단은 GS(35개)였다. 이어 농심(15개), 에코프로(14개), 효성·고려HC(13개), LS·부영(11개), 한국타이어(10개)가 뒤를 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지난해와 비교해 체제 밖 계열사 중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가 가장 많이 증가한 전환 집단은 에코프로로, 14개가 늘었다. 이어 고려에이치씨(13개), 중흥건설(9개), 지에스(5개) 순으로 나타났다.

- 최상목,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 시사

양도소득세 완화도 연말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대주주 대상 주식 양도소득세를 완화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재자 주목받고 있다.

최 후보자는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부가 곧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50억 원으로 상향하는 정책을 발표한다는 보도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일반 근로소득세는 과세형평이 중요한데, 이 부분(주식 양도세)은 자산·국가 간 자본 이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있다”며 “대내외 경제 여건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현행 세법은 투자자가 주식을 종목당 10억 원 이상 보유하거나 특정 종목 지분율이 일정 수준을 넘기면 대주주로 간주하고 양도차익에 20%의 세금을 매기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연말 주주 지정에 따른 세금을 피하려는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해 국내 증시가 불안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대주주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날 최 후보자의 발언으로 그동안 신중론을 고수했던 기재부 기류에서 일부 변화가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은행 등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법안 통과 전망은 밝지 않다.

지난 10일 금융연구원이 펴낸 ‘횡재세 주요 쟁점과 시사점’ 금융브리프에 따르면  “최근 국회에서는 유럽 사례를 참고해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횡재세 도입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며 “개정안이 제시하는 상생 금융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유럽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준전시 상황, 더욱 완화적인 통화정책 등에서 국내와 여건이 다르고, 국내은행의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한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 일부 국가에서 횡재세가 에너지 기업 이외에 금융회사에까지 확대·적용된 것은 최근 금리 인상 시기에 양적완화 정책을 병행하였던 유럽 중앙은행 통화정책에도 일부 원인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이에 따라 유로 지역 은행은 유럽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던 시기에도 예금금리 인상을 통한 자금조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출금리가 상승해 이자 이익이 많이 증가하자 스페인 및 이탈리아 등에서 정치권 주도로 은행에 대한 횡재세가 도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21대 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해당 상임위 논의도 힘을 받기 힘들어진 분위기여서 회기 종료와 함께 법안 폐기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 재계와 경제단체 한치의 양보 없이 대립 중 

상속세 인하 문제도 재계와 경제단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한상의와 한경협(구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상속세 인하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징벌적 상속세로 기업경영권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며 기업을 하려는 의욕을 살리기 위해서는 상속세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시스]
[뉴시스]

대한상의는 지난 6월 정부와 국회에 제출한 '조세제도 개선 과제 건의서'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벗어난 높은 상속세율과 유산세 방식으로 인해 우리 기업들은 세대교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기업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업 세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상속세율 인하 및 과세체계 개편을 주장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도 같은 시기 진행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세정책 방향' 토론회에 참석해 "경쟁국보다 불리한 조세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반대 입장이다. 빈부격차와 소득 불평등 심화 상황에서 적정한 상속세율 유지는 부의 집중을 막고 기회의 평등을 도모해 근로의욕 제고와 경제 역동성을 증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실련은 최근 성명을 내고 "경제단체의 상속세율 인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실제 상속세를 납부하는 비율은 전체 상속 건수의 3%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상위 3%만 내는 세금의 세율을 맞춘다고 해서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빈부격차와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적정한 상속세율을 유지하는 것이 소득의 양극화를 막고 기회의 평등을 도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법인세 부동산 보유세 인하에 이어 상속세 인하까지 거론되면서 부자 감세 논란이 한층 달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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