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에서 받은 수혜, 국민과 새싹들에게 환원할 것”

정용환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 단장  [사진=이재희 기자]
정용환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 단장  [사진=이재희 기자]

[일요서울 ㅣ 대전 이재희 기자]  0...인생 이모작을 앞둔 퇴직인들은 누구나 제2 인생 설계로 분주한 세밑이다.

그동안 연구실에서 주야로 연구에만 매진해 왔던 정용환(66)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은 최근 과학자의 삶에서 물러나 제2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정 박사는 퇴임 후 자신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일반 시민과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전수하는 새 삶을 시작했다. 본인이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하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에 가치를 두게 되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퇴직에 앞서 그는 2013년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한장’이라는 재능기부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당시 10여 명의 과학자가 모여 시작한 이 모임은 이제 150명의 회원에 육박하는 큰 성장을 이뤄냈다.

정 박사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 어렵기만 했던 과학을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 과학과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현재까지 해오고 있다. <편집자 주>

질)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삶으로 진로를 정한 계기가 있다면.

답) 나는 연구 외엔 다른 것에 무관심했던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연구소와 집 외엔 두문불출할 만큼 연구에만 매진했다. 그랬던 내게 하나(HANA) 피복관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게 한 계기가 됐다. 하나 연구에 성공하자 언론이나 다른 연구자와의 조우 등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연구소를 벗어날 시점에 둘러보니 기초과학이 매우 중요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이공계 기피 현상과 과학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이 여실히 느껴졌다. 연구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음 세대 과학자를 키워내는 것이 시급하단 걸 깨달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일본이 25명, 중국이 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동안 우리나라는 아무도 없다. 이제 과학 강국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개발한 '하나 HANA'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정용환 박사  [사진=이재희 기자]
개발한 '하나 HANA'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정용환 박사  [사진=이재희 기자]

질) ‘하나 HANA ( High performance Alloy for Nuclear Application)’ 신소재 개발 후, 프랑스 아레바(Areva)의 특허권 소송으로 7년 반 동안 투쟁한 걸로 아는데, 중도 포기 생각은 없었는지.

답) 처음 소송을 걸어왔단 소식을 들었을 때 황당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너무나 큰 회사와의 싸움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 같았다. 특허청이나 다른 기관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선 싸움터였다.
난 연구자이지, 법률가가 아니었기에 연구보다 이 투쟁이 더 힘들었다. 하지만 잘못이 없는데 포기하면 잘못이라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것 같아 결국 끝까지 외로운 투쟁을 해나갔고, 실력을 인정받아 승소했다.
최고의 과학자는 7전 8기가 아니라 11전 12기라고 생각한다.

질) ‘하나(HANA)’ 신소재로 인해 더 이상 외국산 핵연료 피복관을 수입하지 않고 국내산 이용이 가능하게 되는 쾌거를 이뤄 2015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는데 이에 대한 소감은?

답) 가족의 내조가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내겐 내가 묵묵히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지지해 준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 아내는 내가 연구에 미쳐 아무것도 신경 써주지 못했지만, 불평 없이 아이들을 홀로 키워냈다. 그것도 훌륭히...
아내가 딱 한 가지 내게 부탁 한 일이 있는데, 일주일간 아들과 둘만의 여행으로 전국 일주를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학예회든 졸업식이든 아이들 학교 방문도 제대로 못 했지만, 아내의 제안대로 아들이 6학년이 되면 그렇게 차례대로 둘만의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도 아내의 지혜로운 그 제안에 감사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질)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위한 방안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답) 과학을 우리 생활 모든 것에 연계시키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나는 세계 과학문화포럼 추진위원장으로 지난번 과학과 예술(성악)을 접목시켜 봤다.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시행해 볼 생각이다.
과학이 과학으로만 끝나면 안 된다. 앞으로 과학은 문화·예술과도 어울려 일반인들에게 관심을 얻고 대중화되어야 발전을 이뤄내리라 생각한다.
일반인에게 인기를 얻으면 정치가도 관심을 두게 되고 예산도 늘어 과학이 점점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과학 꿈나무들을 위해 스타 과학자, 과학자 영웅을 많이 만들어 대중매체를 통한 홍보 활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 제 2 인생을 펼치고 있는 정용환 박사 [사진=이재희 기자]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 제 2 인생을 펼치고 있는 정용환 박사 [사진=이재희 기자]

질) ‘벽돌한장’의 뜻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답) 나는 누구나 자신만이 가진 한 장의 벽돌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그 벽돌을 내놓아 한 장, 두 장 쌓으면 커다랗고 튼튼한 집을 세울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그 집에서 우리 아이들이 더 든든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명칭을 지었다.
그동안 ‘벽돌한장’은 매월 과학마을이야기와 간헐적으로 찾아가는 과학강연, 과학여행 동행을 운영해 왔다. 올해 86차가 넘는 강연을 했다.
​대표 프로그램의 하나인 '찾아가는 과학강연'은 10여 명의 강연자가 학교를 직접 방문해 강연과 진로상담을 진행했는데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산간 지역이나 섬으로도 과학강연을 하러 가곤 하는데 2시간의 강연을 위해 3시간이 넘는 거리의 학교까지 달려가 작은 학교 소수의 아이를 만나고 온다.
대도시의 아이들은 여러 가지 체험학습과 다양한 과학 활동을 수시로 접할 수 있지만, 산간 지역과 섬 지역의 아이들은 그런 혜택을 원활하게 제공받지 못한다.
내겐 그런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희망을 주는 것이 너무 중요한 일이다.

질) ‘벽돌한장’을 운영하면서 애로사항이 있다면?

답) 과학자들은 문과 출신이 아니다 보니 언어적 소통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아이들이 졸기도 했다.
'벽돌한장'은 순전히 재능기부로 시작됐고, 취지 역시 순수하고 좋았지만, 실제 운영해 보니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갭이 많았다.
예산이라는 문제가 따라왔고 바쁜 과학 재능기부자들도 시간을 만들어 내는 데 문제가 있었다.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 로테이션으로 휴일이나 주말 등 시간을 내어 강의를 진행했는데, 처음 몇 년은 재능기부 인원으로 충당이 됐다. 하지만 점차 외부 강사도 필요해졌고, 먼 지역에서 초빙한 강사의 교통비와 식사비 등 꼭 필요한 예산이 불가피해졌다. 부족한 예산으로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감사하게도 커피, 김밥 제공 등 여러 후원자의 손길로 응원받고 있다.

<정용환 박사에 대한 작은 설명>

한국은 민간 원자력 산업 강국으로 국제무대에서 활약 중이며 원전 최대 강국인 프랑스의 주요 경쟁국이기도 하다.

이렇게 원자력 산업 강국으로 떠오른 이유 중 하나는 지르코늄을 사용한 피복관의 국산화 생산에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 자립을 가능케 한 ‘하나 신소재 피복관’ 개발로 값비싼 외국 피복관을 수입하지 않게 됐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는 핵연료와 관련된 소재와 부품인데 정 박사는 핵연료를 둘러싼 특수합금인 ‘핵연료 피복관을 개발하고 시제품을 제작, 안정성 평가를 거쳐 상용화하기까지 험난한 길을 통과해 마침내 기술 독립을 이뤄냈다.

성공의 열매가 맺히기까지도 매우 힘들었지만, 연구에 성공하고 난 후 경쟁상대인 프랑스의 아레바 회사가 특허권 침해 소송을 걸어와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면서 하나의 안정성을 입증하기까지 첩첩산중의 고비를 넘어 마침내 아레바의 기술력보다 우월함을 인정받았다.

이로써 명실공히 원자력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 한국 원자력의 그 중심에는 주요 역할을 한 정용환 박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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