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박지양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박지양 변호사

“...자니?”새벽 2시쯤 술 한 잔 마신 상태에서 전 연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유명하다. 발신인으로서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와 용기 낸 것일 수도 있지만, 수신인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연락이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원치 않는 연락이 잦아지고 그 내용 또한 과격해진다면 이는 더 이상 로맨스의 범주에 들지 못할 것이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2021. 10. 21. 시행된 이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글 등을 도달하게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경우 스토킹범죄가 성립하게 되었다. 상대방에 대한 자신만의 애절함은 어엿한 범죄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위 법률의 내용과 범위가 다소 추상적인 관계로 수사기관과 법조계에서는 혼란이 있는 편이고, 처벌의 취지가 전 연인에게 미련이 남은 자를 벌하기 위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범죄 목적이 명백하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까지 수사가 진행되는 등 아직은 명확하게 정립이 안 된 상황이기는 하다.

그러나 신설된 특별법이 으레 그러하듯 초기에 어느 정도 법률적 컨센서스가 확립될 필요성이 있을 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수없이 발생한 스토킹 범죄의 참상을 고려하면 곧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별 후 일방이 타방에 대해 ‘수신차단’ 기능을 설정해 놓는다면, 타방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메시지를 전송했다고 하여 스토킹 범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 문제 되는 경우들이 있다. 실무에서 사건을 수행하다 보면 10건 중 약 3~4건 정도는 일방이 이별 직후 수신차단을 함께 해놓는다. 교제는 상호 합의 하에 성사되지만, 이별은 통상 일방이 통보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피해자에게 닿지도 못한 연락이 범죄가 된다고 하니 억울하다.

법률상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 범죄 구성요건인 관계로 더더욱 그렇다. 한편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수신 여부와 상관없이 어쨌든 피고인은 스토킹 행위를 지속한 것이라고 여긴다. IOS 기반의 스마트폰의 경우 수신차단을 설정하면 아예 타방이 스마트폰 상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일이 없지만, 안드로이드 기반의 휴대폰인 경우에는 차단된 번호로 연락이 왔었다는 기록 자체는 통화목록 등에 남는다는 점도 근거가 된다.

관련하여 최근 하급심 판결례들의 경향은 수신차단한 상대방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한 경우 스토킹범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있다. 스토킹처벌법 제2조 제1항 다목에서 ‘전화 등을 이용하여 글·말·부호·음향 등을 도달하게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일반인에게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마음,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한 느낌을 일으킬 수 있는 글·말·부호·음향 등을 되풀이하여 전송하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하는데, 휴대전화에서 상대방에 대한 수신을 차단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그 상대방이 전화를 걸더라도 차단처리되어 벨소리 등이 울리지 않은 채 휴대폰에 ‘차단된 전화' 표시와 함께 전화가 걸려온 일자 등만이 기록되어 표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락을 하더라도 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피해자에게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고, 위 ‘차단된 전화' 표시 등은 피고인이 전달한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여 피고인이 ‘글', ‘부호' 등을 피해자 등에게 전송하여 도달하게 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는 취지이다.

대법원이 지난 2005년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5조 제1항 제3호 위반이 문제된 사안에서 ‘전화기의 벨소리’를 음향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아 동호 위반을 무죄로 판시한 바 있었는데, 같은 논리의 현대적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물론 ‘차단된 전화가 표시된 것’만으로도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들 수도 있다. 최근 판결례들의 경향은 그러한 불안감을 경시하거나 차단된 전화가 표시되는 것 정도는 참으라는 취지가 아니라,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와 형사법규의 명확성의 원칙 및 엄격해석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법정에서 개개의 피해자의 사정이 이해된다고 하더라도, 입법자의 의사와 대의민주주의에 반하면서까지 피고인을 처벌 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도 보인다.

즉, 수신차단된 경우에 원치 않는 연락을 지속하는 것을 처벌의 범주에 넣는 것은 법률의 개정을 통하여 해결될 문제인 것이고, 법원의 판단은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논리일관적이다. 여담이지만, 그렇게 보지 않으면 피해자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기종에 따라 범죄의 성부가 결정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법원의 판단은 타당해 보인다. 이별 후 스토킹 범죄로 처벌될 위험을 줄이기 위하여 연인 간에 미리 IOS 기반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권장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대개의 스토킹 범죄의 개념은 전화연락 외에 이메일, 각종 SNS를 통한 접근 및 물리적인 방문까지 모두 포함한다는 점에서 최근 판결례의 경향과 같이 판단하여도 처벌의 공백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실무상 수신차단 당했다고 하여 상대방에게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피고인에게 다소 유리한 판결례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스토킹 범죄를 성립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고소로부터 수 개월 가량이 경과한 후 수사나 재판을 받게 되는데,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크게 후회하곤 한다. 몇 달 전 자신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상실감보다는, 항상 상대에게 전달되었던 본인의 뜻이 갑자기 거절되었을 때 오는 인지부조화가 비정상적인 집착을 불러 일으킨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작정한 스토킹 범죄가 아닌, 사귀던 사이에서 이별 후에 발생하는 다소 안타까운 경우들에 한정한 평가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은 서운한 일이다. 그것이 한때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별의 과정이 다소 일방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연인 간의 ‘원치 않는 연락’이라는 것은 사실 꽤 잠재력이 높은 행위이다. 그러나 연락하고자 하는 마음만큼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연락받지 않고 싶은 마음이다. 본인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사람이, 상대방의 마음 속 이야기는 묵살한다면 불합리할 것이다. 결국 상대방이 원치 않는 연락은 대체로 ‘아니 보냈어야 좋았을 것이다’로 귀결되는 구조이다. 사람 인연과 관련한 피천득 님의 유명한 수필은 스마트폰과 카카오톡의 시대에도 여전한 울림이 있다. 신설 특별법의 혼란 속에서 사랑의 시작과 끝 모두 건강하게 이루어지길 소원한다.

< 박지양 변호사 ▲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변호사시험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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