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은 정치가 에너지정책에 개입한 것… 검은돈 목적의 무분별한 재생에너지 보급”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일요서울ㅣ장휘경 기자] 10·20대 청소년들은 장래 직업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지만, 자신의 진로 설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확신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일요서울이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를 만나 그 직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알아봄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주고 진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에는 ‘원자력공학자’를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로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범진 원자력공학자는 현재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로서 2023년 9월1일부터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만29세에 학위를 받았으니 20대 박사인 셈이다.

정 교수는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엔 연구직이 아닌 당시 과학기술처(현재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무관으로 특별채용돼 공무원직을 역임했다. 5년 반 정도 근무하면서 그는 공무원직이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영국 만체스터대학에서 2년간 포스트닥으로서 연구에 임한 후 제주대학교에서 11년 근무하다가 경희대로 옮겨 올해로 11년째 근무하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 원자력공학자가 되신 동기와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려서부터 공대로 진학하겠다는 마음을 가져 자연스럽게 공대를 가게 됐지만, 학과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약사인 아버지가 원자력공학 명칭이 좋다며 한번 해보라고 권유해서 원자력공학과에 지원했어요.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의 큰 갈래가 그렇게 우습게 결정됐나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진로가 결정돼도 하나의 인생이 펼쳐지기도 한다는 생각입니다.

- 여러 과학 분야에서 원자력공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국내 원자력 분야 최고 권위자로서 우리나라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리콴유 총리는 오늘의 싱가폴을 만든 것은 ‘에어컨디셔너’였다고 했습니다. 냉방기가 없다면 싱가폴은 학문을 발전시키고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었을 거예요. 정말 덥고 습하죠.

저는 에어컨을 가동할 수 있는 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늘날 모든 활동이 전기화되어있죠. 문서수발, TV, 통신, 컴퓨터, 카드, 은행의 전산업무 등 전기가 없으면 마비되는 사회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전기가 워낙 잘 공급되다가 보니까 전기에 대한 감사함이 없는 것 같아요. 원자력공학자는 다른 일도 하지만 가장 큰 것이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식량, 공기만큼 중요한 것이 에너지 공급이죠. 그리고 기후온난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탄소전원(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발전원)이 필요한데 태양광과 풍력발전은 비싸고, 용량도 크지 않은 데다가, 많은 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맞지 않아요. 그래서 원자력이 필요한 것이고, 저는 그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른 나라에도 원자력을 공급해야겠지요.

- 지난해 12월2일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원자력이 탄소중립을 위한 중요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의견에 함께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때 거론한 견해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재생에너지 자원이 많은 나라에게는 재생에너지가 답이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서 원자력발전을 공급해야 하는데요. 공급도 중요하고 안전하게 건설과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죠. 이에 우리가 기여하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SMR(소형모듈형 원자로)이 개발돼서 대형원전이 보급되기 어려운 지역에 원자력을 공급하고 수소생산, 열공급 등을 감당하게 되면 원자력의 활용범위가 더 넓어질 거예요. 또한 선박의 추진체로 원자력을 사용하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 ‘재생에너지 맹목적 확대’를 반대하시며 RE100 대신 원전 포함 CF100 공급을 강추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요.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어 있지요. 그런데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만 인정하겠다는 것이 RE100이죠. 이건 목적과 수단이 바뀐 거예요. 목적은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는 것이고 수단 가운데 하나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CF100은 원자력발전을 포함해 무탄소 전원을 100% 사용하자는 것이죠. 재생에너지도 물론 인정합니다.

RE100은 재생에너지 장사꾼이 하는 얘기일 뿐입니다. RE100은 The Climate Group이라는 비정부기구(NGO)의 자율적 활동이에요. 그러나 CF100(CFE)은 UN 활동입니다.

전력망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어서면 안정적 전압과 주파수를 담보하기 어려워요. 그러니까 RE100이 불가능한 것이죠. 결국 돈을 많이 내면 재생에너지를 100%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인정제도’로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 에너지 정책이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과도하게 휘둘리는 ‘에너지의 정치화’로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미래와 후손을 위한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에너지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죠. 그게 결국 가격문제입니다. 가격이 감당할만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미래를 위해서 현재세대가 감당할 수 없는 전기요금을 치러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또한 불필요한 전기를 아끼는 것은 필요하지만 춥고 더운 것을 참아야 하고 문명의 발전을 통해 누리게 된 것을 못 누리게 되는 것은 문명역행이죠.

환경이라는 말은 (둘러칠 환 + 지경 경)입니다. 무언가를 감싸고 있다는 뜻이죠. 영어의 Environment도 마찬가지 뜻입니다. 즉 환경은 주체인 인간을 감싸는 객체로서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인간을 미워하고 죄악시하는 것은 환경의 바람직한 이해가 아닙니다.

탈원전 정책은 정치가 에너지정책에 개입한 것이 맞아요. 그 뒤에는 재생에너지 보급이 숨어있죠.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정치가 개입한 것이에요. 이게 왜 문제냐 하면 합리적인 보급이 아니었던 것이니까요. 그 결과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팔아주고, 국내업체는 도산하고, 숲을 훼손해 태양광을 보급하고… 그런 것 등 때문에 한전이 적자가 나는 상황이 생긴 거죠. 재생에너지는 좋은 것인데 연구개발이나 산업화 쪽으로 정책이 전개된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보급으로 이어진 거예요. 결국 정치의 뒤에는 돈이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생태계가 붕괴를 일으켰다고 주장하시는데요. 원자력공학자로서 타당성 있는 설명 부탁드립니다.

▲원자력발전소는 100년 사업입니다. 계획하는 데 10년, 건설에 10년, 운전에 60년, 해체 및 폐로에 20-30년. 그래서 그 균형을 흐트러뜨리면 안 돼요. 예컨대 운전기간을 줄이면 해체 및 폐로에 충당해야 하는 비용을 더 많이 걷어야 하는 식이죠.

원전건설을 하다가 보면 거기 소요되는 많은 부품이 있어요. 결국 우리나라는 매년 1기 정도의 원전을 건설하도록 중소기업, 건설업 등이 균형을 맞춰서 운영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수년 동안 건설이 없으니까 부품업체 등이 폐업을 하거나 생산라인을 다른 것으로 바꾼 거예요.

또 원자력부품은 높은 정밀도를 가지고 라이센스 하에서 생산되는데 납품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라이센스를 유지(돈이 들어요)하지 못하고 반납해 버린 업체들이 생긴 거죠.

신한울3·4호기 건설이 재개되었는데 이전에 건설했던 것보다 가격도 높아지고 부품조달에도 애로사항이 발생할 거예요. 국내업체가 폐업했기 때문이죠.

- 원자력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통해 많은 사회 쟁점에 현명한 해법을 제시하시는 것으로 유명하신데, 앞으로 원자력공학이 국내외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이바지할 전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원자력산업은 기로에 있어요. 국내적으로도 많은 원전을 새로 건설해야 하고 SMR도 지어야 합니다. 또 원자력발전을 통해 수소를 생산하고 열도 공급해야만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을 할 수 있게 돼요. 따라서 전력생산도 늘려야 하지만 전력생산 이외의 용도로 원전이 변신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또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다른 나라에 우리가 원전을 공급해야 합니다. 흔히 수출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건 돈 버는 느낌이 강해서 저는 그 표현을 잘 쓰고 싶지 않아요. 다른 나라가 탄소중립을 하는 데 도와줘야 한다는 거죠. 우리나라가 이산화탄소를 줄인다고 해서 온난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나라를 돕는 것도 중요한 일이거든요.

특히 우리나라 원전이 가장 싸잖아요. 2010년경에는 원전수출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 프랑스, 일본, 우리나라, 러시아, 중국 이렇게 6개국이었는데 그 가운데 우리나라 원전이 제일 싸고 빨리 건설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할이 더 중요해요.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 원자력공학자로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시며 젊은 새싹들에게 밝은 사회를 물려주시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데, 원자력공학에 대한 특별한 가치관과 철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리이스 신화에서 보면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죠. 본인은 결국 매일 심장을 쪼이는 고통을 당하지만 인류는 불을 쓰게 된 것이죠. 저는 원자력의 역할이 그런 것 같습니다.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보다 열량이 100만 배 더 나와요. 1그람의 우라늄-235는 석유 9드럼, 석탄 3톤과 같은 열량이 나오거든요. 이제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죠.

맬더스라는 분이 인구증가는 기하급수적이고 땅은 유한하기 때문에 언젠간 굶게 된다고 했지만 지금 우리는 더 잘 먹고 살고 있어요. 기술개발을 통해서 단위면적당 소출이 100배로 늘었기 때문이죠.

에너지도 기하급수적으로 필요해요. 그래서 전통적인 에너지원에 매여있거나 햇볕과 바람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100만 배의 에너지 밀도를 가지는 에너지원이 원자력입니다.

- 마지막으로 원자력공학자를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나는 공학자입니다. 공학을 통해서 저도 먹고살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제주대학교에 근무하는 동안에, 제주대병원에 싸이클로트론(입자가속기)을 도입했는데요. 그 결과 방사선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게 했고 양전자단층촬영(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을 하기 위해 암환자들이 비행기 타고 서울의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게 했어요. 제주도에는 도시가스(천연가스)가 보급되지 않았고 프로판가스만 공급되어서 가스요금이 4-5배 비쌌는데 도시가스가 공급되도록 하는 데도 기여했습니다. 또 이어도에 방사선 측정소를 설치해서 혹시 중국에서 방사선 사고가 나면 빨리 감지할 수 있도록 했어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저는 제가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되어서 병을 고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공급해서 삶을 윤택하게 하고 또 다른 나라 사람들도 같이 살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난 2년간에 이어 올해 아프리카 4개국을 다니면서 원자력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이들 국가는 전기보급률이 20%밖에 안 되는 가난한 나라예요. 우리나라도 50년 전에 똑같았어요. 이들이 우리와 같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해주는 것도 여러분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