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여의도 하이패스’ 자진반납, 與 영남 공천 물갈이 서곡?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韓 총선 불출마 취임 일성에 국힘 ‘공천 칼바람’ 전망 파다 
당내 계파논리 소멸에 ‘영남 기득권 정리’ 혁신 0순위 등극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검사 시절 ‘서초동 명검(名劍)’으로 불렸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의 미래를 짊어지게 됐다. ‘한동훈 비대위’ 출범은 여야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 위원장이 법률‧행정가로서 보여줬던 매서운 일처리와 언변, 진취적 성향 등 범상찮은 면모가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 한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운동권‧이재명 퇴진’ 슬로건을 내걸며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강력한 선전포고를 날렸다. 아울러 내년 총선 불출마를 공식화하며 그간 자신을 둘러쌌던 다양한 여의도 입성 시나리오를 무색케 했다. 이는 총선 대척점에 선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주류까지 ‘경계모드’로 전환시킨 모양새다. 여의도와 이해관계가 없는 한 위원장이 여당 공천권을 쥐게 된 만큼, 당내 기득권으로 분류되는 영남권 중진 의원들이 인적쇄신의 일환으로 공천 수술대에 대거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준석 전 대표 등 당 비주류의 연이은 탈당과 개혁신당 행보로 사실상 당내 계파논리가 자연소멸한 상황에서, 한동훈표 혁신 칼날이 당 주류를 정조준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우리는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을 대신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우겠다.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서울에서 싸우겠다. 그리고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기겠다. 저부터 선민후사를 실천하겠다.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 비례(대표)로도 출마하지 않겠다. 승리를 위해 뭐든 다 할 것이지만 제가 그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는 않겠다.” 

지난해 12월 26일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 사령탑으로 지명된 후 남긴 취임사 주요 구절이다. 민주진영 성골로 자리매김한 586 운동권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정치혁파 대상으로 지목한 한 위원장의 직설화법도 주목할 만 하지만, 여당의 총선 보증수표로 불렸던 그가 내년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여의도행 티켓을 자진 반납한 대목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정치권에선 한 위원장의 총선 불출마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불체포특권 포기 압박용이라는 관측부터 차기 대권 직행을 염두에 둔 일보 후퇴라는 관측까지 다양한 말들이 나온다.  

수도권 위기론 심화에 고개 드는 與 ‘영남 탈피’   

그 중 한 위원장의 불출마는 영남권 공천 물갈이 등 고강도 내부 인적쇄신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에 더욱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한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대야 투쟁의 거점으로 호남‧영남‧충청‧강원‧제주‧경기‧서울을 낱낱이 열거했다. 국민의힘이 기존 영남당을 넘어 ‘전국구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강조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최근 ‘수도권 6석’이라는 비관적 자체 데이터를 접한 뒤 121석 수도권에 당 총선 전략을 집중해야 한다는 내부 기류가 거센 상황이다. 이를 위해선 기존의 ‘영남당’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두터워지는 흐름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의석 현황은 총 112석 중 정확히 절반인 56석이 TK(대구‧경북)‧PK(부산‧울산‧경남)에 포진해 있다. 지역구도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지만 영남에 대한 보수정당의 의존도는 여전히 압도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울산 4선’ 김기현 당대표 체제에서는 수도권 진출론과 같은 진취적 담론이 적극 반영되기 힘든 여건이었다. 당시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영남 중진 2선후퇴 혁신안이 끝내 공전하며 여당의 형식적 구호에 그친 배경이기도 하다. 

여의도에 빚 없는 韓, 파격공천 유력...영남 의원들 ‘긴장’

이런 가운데 ‘국민바라기’를 자처한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총선 지휘권을 갖게 되면서, 영남 물갈이 공천 등 대대적인 ‘기성정당 탈피’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나아가 당 내부에서는 한 위원장의 총선 불출마 선언이 앞서 퇴진 요구가 들끓었던 영남 중진 등에 대한 선제적 불출마 압박으로도 해석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29일 출범한 비대위의 인적구성 면면이 그 시작점이라는 분석이다. 비대위 임명직 상당수가 그간 보수진영에 몸담았던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비정치인 중심으로 지역‧연령‧전문분야를 고루 안배해 외형 밸런스는 갖췄다는 게 중평이다. 이는 한 위원장이 여권 결집과 중도 확장성을 두루 의식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동훈 비대위 출항과 동시에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도 꾸려질 예정인 만큼, 당 내부에선 한 위원장의 인적쇄신 1호 행보는 TK‧PK 물갈이 공천이 될 것이란 전망이 급부상했다. 이에 그간 보수정당의 주류 명맥을 이어 온 영남권 의원들 사이에선 술렁임이 감지된다. 

복수의 여당 관계자에 따르면 그에 앞서 한 위원장 선임 여부를 놓고 당내 찬반 격론이 일었을 시점에 영남권 의원들 중 일부 인사가 비공식 자리에서 한동훈 비대위를 탐탁치 않아 했다는 후문도 있다.   

우선 영남 의원들은 한 위원장의 불출마는 확대 해석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여당의 한 TK 지역구 의원은 “(한 위원장의) 불출마는 영남 중진을 향한 모종의 메시지라고 충분히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당 중추 기반이 된 지역구 의원들을 매몰차게 불출마 코너로 몰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합리적인 분이니 적정선을 찾을 것”이라고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또 같은당 PK 의원은 “한동훈 위원장이 불출마하겠다고 한 건 불체포특권 포기의 연장 선상이라고 봐야지, 공천 물갈이 의도로 보는 건 과하다”라며 “꼭 영남이 아니더라도 어느 지역구든 객관적 평이 좋지 않은 인사들을 대상으로 불출마 압박이 있을 수는 있다”고 했다.    

반면 이와 상반된 당내 시각도 있다. 한 수도권 의원은 “비대위가 들어서면서부터 TK‧PK 현역들의 불출마 타이머도 돌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며 “아무래도 공천혁신 타깃이 그쪽(영남)으로 집중될 공산이 크다. 영남당 이미지를 털어내지 못하면 반전 요소가 없지 않나”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비정치권 출신인 한 위원장은 여의도와 이해관계가 없는 데다, 국회 입성 기회를 자진 반납하며 배수의 진을 친 만큼 영남권 현역에 대한 대규모 공천 물갈이는 사실상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당내 비윤계 탈당에 이은 ‘이준석 신당’ 창당이 가시화하며 당 통합이라는 여당 인적쇄신 과업의 한 축이 사라진 것도 영남 물갈이론에 힘을 보태는 요소다. 한 위원장으로선 당에 쓴소리를 냈던 비윤계와의 재화합으로 대외적 파급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사실상 이 전 대표의 개혁신당(가칭) 창당으로 보수진영 대화합 시나리오는 물건너 갔다. 이 전 대표 역시 최근 탈당‧창당 기자회견을 통해 총선 전 국민의힘과 연대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한동훈 비대위에게 남은 인적쇄신 카드는 권력 고착화가 깊은 영남에서 대대적 인사 물갈이를 단행하는 것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여의도에 빚진 것이 없는 인사”라며 “이준석계가 신당으로 완전히 갈라선 마당에 남은 카드는 영남 공천 물갈이밖에 더 있나. 공관위가 뜨면 영남권 (현역) 최소 절반 이상이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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